니가 알던 나는 이젠 나도 몰라
이수역이었던가, 사당역이었던가
그와 세 번째 만났던 날, 고깃집에서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일어섰다.
소주 두 잔에 만취하는 나로서는 맥줏집 2차는 무리였고, 그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겨울이었고, 어디로든 들어가야 했다.
그러다 역 근처 아무 데나 보이는 데로 들어간 곳이 뜬금없게도 도넛집이었다.
커피 두 잔에 도넛 두 개를 주문해 와서 앉았다.
아주 늦은 밤은 아니었기에 여고생들도 꽤 보였고, 20대 커플들도 좀 있었던 것 같다.
몇 년 전이지만 그때도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던 나, 그런 나와 제법 나이 차가 지는 그.
어쩌면 우리 둘은 그 공간에 썩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것쯤이야 아랑곳없었던 우리, 였다.
커피는 뜨거웠고, 도넛은 달콤했다.
입안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버리는 달콤함.
그보다 더 다디단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그때의 우리.
그와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갈 길이 다른 사람들이었고, 그게 그만 하자는 이유였다.
내 생각에 갈 길이 같은 사람은 연인이 아니라 동지가 되는 거지,
나는 그와 동지가 되려 마음먹은 적은 없었는데, 어찌 됐든 비겁한 변명이었고, 시시하게 끝났다.
다 지난 일이니 아름다웠다고 퉁 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지난 일들도 있다.
가끔 그때 먹은 도넛의 맛이 생각날 때가 있었다.
이 동네 저 동네 어디에도 있는 흔한 체인점이라 다행이었다 말해야 할까.
오가다가 그 가게가 보이면 6개들이 한 상자를 사서 집에 가곤 했다.
그 맛은 변하지 않았더라. 한입 베어 물자 확 번지는 달콤함도 여전했고..여전했다.
달라질 이유가 뭐 있을까. 한 데서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어지는 도넛일 텐데.
그렇게 종종 생각나면 사다 먹던 도넛이 언제부턴가 생각나지 않았고,
그 언제가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지냈는데...얼마 전 언니가 그 도넛을 사다 줬다.
"이거 잘 먹잖아. 1+1 하길래 사 왔지."
"오! 오랜만이네. 맛있겠다."
반갑기도 했고, 달콤함이 그립기도 했던 때라 커피를 내려 덥석 베어 물었는데.
'아....왜 이렇게 달지? 윽...너무 느끼해. 안 넘어가는데..?'
한 입 베어 물고는 더 손이 가지 않았다. 커피만 홀짝일 뿐.
그렇게 남은 도넛을 보고 있자니 그와 만났던 기억이 스르륵 겹치며 씁쓸해졌다.
아..잊었구나. 다 지나갔구나..
그랬다.
어느 한때가 다 지나갔고,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니가 알던 나는 이젠 나도 모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