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사러 가는 길

만 원의 행복 혹은 희망고문, 당신은 어느 쪽?

by 오평

나는 행운과는 거리가 멀다.

그걸 일찌감치 알아서일까, 요행을 바라고 하는 일은 잘 없었다.


그런 내가 3주째 로또를 사고 있다.

아마도 그건, 올해 내 집 마련의 꿈이 물거품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주변에서 그랬다.

영끌을 해도 결국 1,2천만 원이 모자라서 포기하는 일이 많다고.

나는 영끌까지 가 볼 생각도 못한 채, 그냥 내 마음 깊은 곳의 목소리를 들어주기로 했다.

'너의 때를 기다려'


그렇담 다음 스텝은 성실하고 지독한 N잡러가 된다거나

요즘 안 하는 게 바보 같은 주식 투자를 한다거나..여야 할 텐데,

지금껏 살면서 처음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내 생에는 없을 것 같은 행운을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로또.


처음에는 5줄을 샀다. 물론 다 꽝이었다.

기다리는 걸 잘 못해서 (그럼 즉석복권도 있을 텐데 말야) 토요일 오후에 사서, 저녁에 확인했다.


두 번째는 (많이 사야 확률이 높아지나 해서) 10줄을 샀다. 물론 다 꽝이었다.

역시 토요일 오후에 사서, 저녁에 확인했는데 어쩐지...

만 원이 너무 짧은 시간에 훅,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담 전략을 바꾸자.


세 번째인 오늘, 퇴근 후 산책길에 3줄을 샀다.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누구는 기다리는 시간을 행복 혹은 설렘이라 말하던데,

글쎄...희망고문이라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구두를 사야지 마음먹었을 때는 남이 신은 구두만 보이고,

집을 사야지 마음먹었을 때는 동네 아파트들만 보이더니

로또를 사야지 생각하니 동네 복권방이 눈에 너무 잘 들어왔다.


오늘 산책길에 본 복권방만 3곳, 구석구석을 돌다 보면 5곳까지 조합을 맞춰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담, 전략을 다시 짜자.


한 복권방에서 2줄씩, 5일 동안 5곳을 돌면서 사들이면(?) 딱 만 원이 채워진다.

5곳 중엔 '1등 4번'이라고 팻말을 건 곳도 있으니...

(그러나 이게 확률로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다. 그냥 요행을 바라는 일일뿐)

그렇게 딱 100일만 해 볼까? 1년은 너무 길고.

그 100일의 로또가 다 꽝이어도, 매일 걷게 될 테니까 아주 안 남는 장사는 아닐 것 같은데.

2,000X 100 = 200,000원

100일이면 석 달이라고 치고, 요즘 동네 헬스장 할인가가 대충 얼마더라?

이런 치밀한(?) 계산을 하며 1시간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다.


다분히 목적지향형 인간이라 목적 없이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세상 이해할 수 없는 게 아이쇼핑이다. 안 살 건데, 살 것도 없는데 왜 다리 아프고 힘 빠지게 돌아다녀?)

아무리 하찮다 해도 목적이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산책도 하루 8,000보 채우기라든지(feat.카카오뱅크)

오늘의 운동량을 채웠을 때 터지는 폭죽(feat. 갤럭시워치)이라도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나 근사한(?) 목적을 생각해 내다니!!!


목적지향형 인간이기도 하지만 셈이 약한 인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모든 셈이 다 엉터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반백년쯤 살아보니 손해 보듯 살아야 한다는 먼저 산 어른들 말이 맞다는 걸 알겠기에.


*그나저나 주말의 로또, 기대된다.

나는 희망고문 아니고, 행복에 줄을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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