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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코숙이 Dec 12. 2023

알코호르와 수채화

피로회복제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두운 밤길을 비춰주는 밝은 빛, 편의점.

유리문을 당기고 들어간다.


'어서오세요~'

'사장님, 안녕하세요~'


역에서 내려 걸어 올때부터

'오늘은 시원하게 한잔 해야지~'

라고 생각한 터라 별 고민 없이 술냉장고로 향한다.


소주 한 병, 홍삼 진토닉 노슈거 2+1, 그리고 플라스틱으로 레몬 모양을 하고 있는 레몬 즙 한 개.

쇼핑 끝.

1만800원.

깔~끔 하다.


현관문 카드키를 대면 '삑' 하고 나를 반겨주는 작고 소중한 나의 놀이터.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들어와 바로 냉장고 앞으로 향한다.

좀 전에 사온 소중한 음료들이 내가 씻고 환복하는 사이에라도 조금 더 시원해져야 하니까.


시원한 샤워 끝에 젖은 머리는 수건으로 말아올려 터번속에 잠시 포박해 둔 채로

와인 잔에 얼음을 가득 채운다.

1.소주 한 병의 3분의 1을 붓는다.

2.무가당 홍삼 진토닉 한 병의 3분의 1을 붓는다.

3.레몬 즙 통을 있는 힘껏 주먹이 쥐어질 때까지 한 번을 힘 있게 쭈욱~ 짠다.

압력을 품은 채 뿌려지는 레몬즙이 자연스레 잔 안에 회호리를 만들며 모든 재료를 섞어준다.

나의 소주 하이볼 레시피,

소주맛은 하나도 나지 않고 맛있는 홍차와 레몬 맛만 입안에 가득하다!


나에게는 평소 아주 소중한 친구가 있다. 여러가지 재주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친구.

글 쓰려고 노력하는 나,

사진 잘 찍고 싶어 하는 나,

그림 잘 그리고 싶은 나,

주얼리를 잘 만드는 나,

캘리그라피도 잘 하고 싶은 나,

골프를 잘 치고 싶은 나,

볼링을 잘 하고 싶은 나,

수영을 잘 하는 나,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나,

요리를 잘 하는 나,..등등

나는 '나'라는 친구와 놀면서 내 삶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오늘은

이렇게 맛있게 술을 마시면서 그 중에 몇 친구들을 만나서 놀고 싶단 말이지.

글 잘 쓰는 친구도 만나고,

사진 잘 찍는 친구도 만나고,

그림 잘 그리는 친구도 만나고,

주얼리 좋아하는 친구도 만나고,

캘리그라피 하는 친구도 만나는 거야!


아까 만들어둔 나만의 하이볼을 담은 와인잔을 손에 들고 책상으로 향한다.

앗! 와인잔 밖으로 벌써 이슬이 맺혀 주르륵 주르륵 물방울이 흐른다.

마치 샤워를 하고 나와도 땀이 흐르는 내 모습과 같다.


'후~ 덥다 더워.'


잔을 감쌀 예쁜 손수건을 하나 꺼내와 와인잔의 스템(stem)부분과 볼(bowl)부분을 감싸주어 흐르는 물방울을 막아준다.


'오늘, 그림을 그려볼까? 오늘은 물감으로 그리고 싶은데...'


난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그림을 늘 잘 그리고 싶은 취미생이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늘 동경하는.


오늘은 그림 '그리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보려 한다.


'날씨도 덥고 하니 시원해 보이는 그림을 그려보자. 심플하게 싱그러운 이파리 그림 하나 그려볼까나?'


핀터레스트에서 이파리 사진을 검색해서 어떤걸 그려볼까 스크롤하며 찾아본다.

예쁜 이미지들을 찾을 때 자주 들어가서 둘러보고 구경하는 사이트이다.

복잡한 그림은 늘 부담스럽기에

이파리 딱 하나 그릴 생각이다.


이파리가 커 가지 한 개 만으로도 플랜테리어에 사용되고 있는 몬스테리아 이파리가 눈에 들어온다.

 

'뭔가 쉽게 그릴 수 있을것 같은데? 아.. 근데 수채화로 그릴꺼라 영 자신없네...'


그래도 그림은 자신감으로 그리는 것이라고 했던가.

책장에서 꺼내온 수채와 종이, 파렛트와 붓, 그리고 물을 가득 담은 예전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플라스틱 컵을 책상으로 옮기고 종이를 앞 뒷면 뒤집으며 앞면을 확인 한 후 책상에 내려놓는다.

물기 가득 품은 붓에 초록색 물감을 척척 묻혀 종이위에 붓을 대려고 하는 순간!


'앗! 휴지! 휴지를 안챙겼네~'  


그리려는 마음만 급했다.!

수채화에서는 물조절이 가장 중요하므로 붓에 묻은 물을 덜어내는데 꼭 필요한 두툼한 휴지나 수건이 꼭 필요하다.

난 편의상 수건대신 휴지를 두툼히 뽑아 물통옆에 두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제 종이위에 초록색 물감과 물기를 가득품은 붓을 가져다 대며


'자신있게 한 선으로 그려나가 잎의 형태를 먼저 갖추자.'


그려나갔다.

형태는 잡았고 이파리를 표현해야 한다.


열심히 물과 물감을 듬뿍 묻혔다 뺐다, 색을 연하게 시작해서 진하게, 물의 마름 속도와 농도를 생각하며,

아...물이 마를까봐 급해지기도하고, 물이 많아 붓의 물을 덜어내기도 하면서 일단은 완성했다.

수채화는 과감하고 계획적이면서 결정력도 신속해야 하고, 기술도 익숙해야 해서 정말 어렵다.

그래서 늘,


'잘 그리지 않아도 돼. 연습한다는 마음으로 그리면 돼'


라며 욕심을 덜어내는 연습도 덩달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문득,

오늘이 왜 고됐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사소한 일로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다 내 욕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욕심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늘 내가 피로했던 이유도 내 욕심 때문이었어.'


욕심을 덜어내며 집중하여 그린 나의 몬스테리아 이파리 수채화 그림이 내 마음에 아주 쏙 든다.


시원하고 맛있는 하이볼 한 잔과 단촐하게 그려낸 그림 한 장이

오늘 나의 피로를 싹 풀어준다.


하이볼 한잔 하며 욕심을 덜어내고 연습하듯 그려낸 몬스테라 잎 하나. 나만 만족하면 돼.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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