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파리 2014 (2)
"아름다운 도시 파리, 전능한 신의시대, 때는 1482년,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
위 가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컬 '파리의 노트르담'의 오프닝을 여는 첫 소절이다. 내게 있어 파리라는 도시는 화려한 에펠탑이 서 있는 도시이기 이전에,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멋지고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기보다는, 뮤지컬의 가사를 들으며 이 도시를 상상했다. 직접 그 장소에 가서 노래들을 들어보면 얼마나 짜릿할지 기대하고는 했다. 그런 나였기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포함된 오늘의 일정은 아침부터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2018년에 참담한 소식을 들었다. 큰 화재 때문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인 것이다. 눈에 담겼던 그 아름다운 광경이 폐허가 된 모습을 뉴스로 접하고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한 순간이었다. 2014년 파리에서 노트르담 대성당과 약속을 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누구와 함께일지, 혼자 일지 모르지만 다시 돌아와서 제대로 인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도 전에 불미스러운 일을 당한 그곳이 너무 마음 아팠다.
사실 노트르담 대성당과 그렇게 오랜 시간 연을 쌓은 건 아니었다. 투어로 진행되는 일정이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코스대로 그 일대를 돌았을 뿐이다. 성당 안을 둘러보긴 했지만 관광객들이 워낙 많아서 기차놀이하듯 일행들의 발걸음을 뒤따른 게 다였다. 하지만 성당 내외에서 파리의 노트르담의 장면들을 상상했고, 그 안에서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나도 모르게 그곳에 정을 붙이게 된 것 같다. 성당을 나와서 바라본 하늘과 태양이 너무 아름다워서 더욱 인상 깊게 기억하는 걸지도 모른다.
일행들이 사진을 모두 찍은 뒤, 가이드분이 우리를 한 장소로 데리고 갔다. 성당에서 몇 걸음만 걸어가면 있는 곳이었다. 바로 '제로 포인트'였다. 이곳을 밟으면 파리로 다시 돌아온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있다고 한다. 가이드분은 학생 시절에 이곳에서 제로 포인트를 밟았다고 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여러 일들을 거쳐 이곳에서 가이드를 하게 됐다고. 나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이곳에 돌아오고 싶었다. 사실 파리가 내 인생 여행지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당시의 분위기 때문에였을까? 이런 동화적인 이야기에 동참하고픈 마음이 컸다.
조금 이른 감이 있었지만 우리는 식사 장소로 향했다. 가이드가 안내해 준 레스토랑에 들어가 네 명씩 테이블을 잡아 함께 식사를 했다. 여행을 다니며 숫기가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랑 꽤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했던 것 같다. 아마 여행 초반이었다면 말없이 침묵 속에서 혼자 밥을 먹었겠지만, 여행지에 와서 모르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 역시 여행의 즐거움에 속한다는 걸 깨달아서 그런 것 같다.
내가 먹은 음식은 스테이크 타르타르라는 음식이었다. 프랑스판 육회라 이해하면 편하다. 솔직히 외관상으로는 썩 먹음직스러운 음식은 아니다. 맛 역시 조금 느끼한 육회를 먹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다시 먹고 싶은 음식은 아니다. 대화를 나누며 조금 분위기가 편안해졌는지, 나는 일행들에게 먼저 음식을 권하기도 하고 남들의 음식을 조금 맛보는 넉살도 갖추게 됐다. 역시 사람끼리 밥을 먹어야 친해진다는 말이 있듯, 식사 후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속에서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노트르담 이후에 들른 곳들에 대한 기억은 지금 와서 매우 희미한 상태다. 이렇게까지 기억이 안 날까 싶을 정도로 공백으로 가득 찬 하루였다.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녀서 정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음에 들른 곳에서 너무 사람들한테 치이며 이동해서 정신적으로 많이 소모되어 있던 것 같다. 바로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보통 다른 여행지들은 성수기 비수기에 따라 한산함이 차원을 달리 했지만, 루브르 박물관에는 그런 게 무의미했던 것 같다.
루브르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길은 초입부터 산만했다. 어딜 가나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내 의지로 발걸음을 옮길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앞에 있는 무리들의 공백을 채우고, 뒤따라오는 무리들의 등쌀에 떠밀려 흘러가는 대로 이동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더더욱 기억에 공백이 생긴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없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잠시 잊었던 군대 훈련소 시절까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 날 이후로 박물관 같은 곳은 투어를 끼지 않고 자유여행으로 가는 게 좋겠다는 다짐을 했다.
루브르를 나오니까 온몸이 녹초가 됐다. 지친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같은 투어의 일행들 모두 혼이 나간 표정으로 근처 벤치에 가서 주저앉았다. 가이드분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5분에서 10분 정도 휴식 시간을 주셨다. 사실 이미 일정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콩코드 광장에 가서 사진 한 번 찍으면 끝이었다. 휴식은 관성 같아서, 한 번 쉬니까 그 자리에 눌러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런 우리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가이드분은 사람들을 독려하며 얼른 콩코드 광장에 가서 편히 쉬자고 하셨다. 여기 있는 사람들 역시 최소 20대에서 40대까지 계신 분들이라, 조금 불편해도 빨리 끝내고 쉬는 게 좋다는 걸 알아서 가이드분의 말에 토 달지 않고 순순히 그분의 안내에 따랐다.
사실 콩코드 광장에서 뭘 특별히 했던 건 아니다. 그저 광장에서 길거리에 걸터앉아 가이드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길거리에 앉는 것에 대해 쭈뼛쭈뼛하던 일행들도 주변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더니 하나둘씩 광장에 편하게 앉아 가이드분이 해주는 얘기를 들었다. 그분이 그때 해주신 빅토르 위고의 일화는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 시의 예산 부족으로 철거될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걸 안타깝게 여긴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키기 위해 하나의 소설을 집필했다. 그게 바로 파리의 노트르담이다. 이 소설로 인해 성당을 향한 시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대폭 늘어났고 결국 철거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한다. 한 사람이 쓴 글이 위대한 문화유산을 지켜냈고, 그 문화유산은 지금까지도 파리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남아있다. 슬프게도 지금은 불타버렸지만, 그만큼 빅토르 위고의 책이 세상에 끼친 영향력이 컸다는 것을 뜻하리라.
세상에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가 가진 재주와 능력 혹은 의지로 세상을 이롭게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빅토르 위고의 이야기는 최소 수백만 명에게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며 감명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야기가 담긴 컨텐츠를 업으로 목표 삼았고, 글을 쓰는 지금 역시도 그 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단순히 내 성공과 명예를 위해 달려왔다면 중간에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빅토르 위고처럼 세상에 내 이야기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이날의 다짐이 있었기에, 힘든 시기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파리에서의 둘째 날은 이렇게 끝났다. 다른 날에 비해 눈을 호강시켜 주는 것들을 많이 본 건 아니었지만, 내적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 이래서 이 여행을 잊을 수 없다. 눈이 즐거운 날은 한없이 즐겁고, 그렇지 못한 날은 다른 방향에서 나를 가득 채워준다. 지금도 여전히 눈이 호강하는 곳들을 위주로 찾아다니기는 하지만, 가끔씩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여행지를 고르는 게 이 날의 영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