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파리 2014 (4)
모든 글에는 결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보통 결론은 서론과 본론에서 썼던 말들을 아우르는 역할을 한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독자는 결론을 읽으면서 그 글의 전체적인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오늘 파리에서의 일정 역시 나에게는 결론 같은 날이었다. 바토무슈를 타고 3일 동안 돌아본 파리를 한눈에 담는 것은 매우 아련하고도 귀중한 경험이었다.
전날의 감기 기운 때문에 잠을 푹 자서였을까. 일어났을 땐 벌써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오늘은 파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이제 파리에서 유명하다 싶은 곳은 다 들렀고, 마지막으로 몽마르트르 언덕 하나를 남겨두고 있었다. 다행히 몽마르트르 언덕은 숙소에서 30분도 걸리지 않는, 대중교통을 타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숙소에서 조식을 가볍게 먹고 바로 길을 나섰다.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몽마르트르 언덕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사크레쾨르 대성당 밑으로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은 징그러울 정도로 가득 차있었다. 저 인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언짢았지만, 어차피 가야 할 곳이었기에 사람들의 뒤를 따라 성당으로 향했다.
사실 속으로 사람 많은 이 상황을 욕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를 알게 되자 무턱대고 욕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지금은 정규 미사가 있는 시간이었기에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원래 이 성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기에 붐비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원래 이곳을 다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나 같은 관광객들이야말로 불청객일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불편한 내색을 한 적이 없다. 적어도 내가 그렇게 느낀 적은 없다.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여태까지 유럽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문화적 차이를 느꼈지만, 가장 크다고 생각했던 건 과거의 산물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였다. 물론 우리나라는 한국 전쟁으로 인해 남아있는 것 자체가 별로 없지만, 유럽은 과거의 산물을 그 용도 그대로 사용한다. 몇 백 년이 된 건물이라고 그저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이 지어진 용도 그대로 쓰이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다루기에 문화유산들을 더욱 귀중히 여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미사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그대로 다시 언덕을 내려오며 언덕에 위치한 곳곳 장소들을 둘러봤다.
언덕 근처를 한 번 다 돌고 나니까, 아직 가시지 않은 감기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시간은 오후 2시. 낮을 이대로 보낸다는 게 매우 아쉬웠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다행히 숙소에 계시던 사장님이 내 얘기를 듣고는 근처 약국에서 약을 사다 주셔서 조금 더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시간은 벌써 저녁 7시쯤이었다. 너무 오래 잤나 싶었지만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었다. 미약하게 남아있던 감기 기운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다시 파리를 마음껏 누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밤에 가까워졌고, 오늘이 파리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상기시키자 생각보다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그때 이틀 전 투어에서 들었던 '바토무슈'라는 것이 떠올랐다.
파리를 에워싼 센 강을 일정 코스로 한 바퀴 도는 유람선이다. 가이드분의 말에 다르면 밤중에 파리를 바토무슈를 타고 한 바퀴 도는 것이 그렇게 낭만적이라고 한다. 심지어 그분께 할인된 티켓 구매권을 산 게 이제야 기억이 났다. 생각보다 감기 기운이 심하긴 했나 보다.
나는 바로 바토무슈를 타기 위해 알마 광장 역으로 향했다. 광장으로 올라와 바로 옆에 있는 알마 다리로 향하니 다리 밑에 있는 선착장이 보였다. 미리 예매를 한 건 아니었지만, 설마 자리가 하나도 없겠냐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향했다. (현재 일기를 쓰다가 느낀 건데 당시에는 무작정 했던 것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다행히 자리는 넘쳐났고, 외부가 잘 보이는 내부보다는 외부가 낫겠다는 생각에 2층에 있는 선미 조용한 곳에 자리 잡았다. 미리 챙겨둔 이어폰으로 음악을 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감성적인 밤에는 음악은 무조건이다.
아련한 음악을 들으며 밤의 파리를 둘러보는 것은 황홀한 경험이었다. 파리의 아름다운 이야기들, 멋들어진 건물들이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면 반가움과 그리움이 교차했다. 며칠 전에 마주했던 곳이기도 했지만, 하루 뒤면 기약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볼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벌써부터 그리움이 몰려오는 것이다. 지우의 돌아볼까라는 노래를 들으며 하염없이 강가를 바라보는 사이, 시야에 익숙한 건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20대 중반에 너무 귀한 기회를 얻어 유럽에 오게 됐다. 연관성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이 낯선 공간에서 수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다. 지구 거의 반대편인 이곳에서 얻은 귀한 경험들은, 어쩌면 다시는 맛보지 못할 경험일지도 모른다. 분명 이곳에서의 모든 것들은 나를 한층 더 성장시킬 동력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그런 꿈같은 존재들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우면서도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눈을 감고 뜨면, 익숙한 한국의 내 방 침대 위에서 눈을 뜰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그게 진짜 내가 직접 겪은 일인지 모호할 정도로 꿈같은 순간들이다.
에펠탑을 마지막으로 바토무슈는 막을 내렸다. 수미상관은 아름다운 구조다. 시에서도 그렇지만 여행에서도 그러하다. 첫날 나를 황홀하게 사로잡았던 에펠 탑. 그 앞에서 썼던 시. 다시 이곳에 돌아오니 그때 썼던 시가 이어폰을 너머 들려오는 음악과 맞물려 노래처럼 흘러나왔다. 기억이 흐릿해져 가는 그때의 순간들 중에서도, 그 시와 노래만큼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순간이 어떻게 보면 유럽 여행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 끝났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뒤의 여행 역시 즐거웠다. 깨달은 게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더 이상 여행에 미련이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후의 일정은 '여행'보다는 그저 돌아다니기에 그치지 않았나 싶다. 그것도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만, 파리는 나를 찾는 내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