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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Nov 13. 2020

여행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10. 런던 2014 (3)

 마무리는 어떤 일에서든 항상 중요하다. 긴 여행이 끝나면 어떤 기분일까? 여행 다니는 내내 가졌던 궁금증이었다. 이 긴 여행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어디 있을 것이며, 어떤 표정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긴 유럽 여행 중 내 마지막 순간은 상당히 인상적인 축에 속했던 것 같다. 세상의 끝에 도달한 기분으로 마무리한 이 하루가, 어찌 보면 6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이 여행에 미련을 가지는 이유가 아닐까?




긴 여행의 끝


 마지막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전날 밤에 꽤 긴 시간을 들여 고민했었다. 선택지는 세 가지 정도 있었다. 옥스퍼드 투어를 가는 것, 해리포터 투어를 가는 것, 그리고 남부 브라이튼에 있는 세븐 시스터즈에 가는 것이었다. 해리포터는 제일 먼저 후보에서 탈락됐다. 여행 막바지에 와서야 내가 그동안 쓴 돈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무려 입장권만 십만 원 단위를 호가하는 곳에 가기 갑자기 망설여진 것이다. 여태까지 잘 다녀놓고 겨우 마지막 날에 신경 쓰는 것도 웃기지만 그냥 그때는 그랬다.


 옥스포트와 세븐 시스터즈 중, 결국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런던에서 나흘을 도시 내에서만 보내다 보니 오래간만에 대자연이 보고 싶어 진 것이다. 애초에 내 여행지 선정 성향이 도시보다는 대자연에 가까운 것 같다. 실제로 그 이후의 여행에서도 그런 경향이 많이 보이기도 했고.


 기차를 타기 전에 시간이 조금 남아서 노팅 힐을 방문했다. 딱히 영화 자체가 내게 의미가 큰 건 아니었지만, 그냥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고 남는 시간에 할만한 게 딱히 없어서 방문한 곳이었다. 원래는 영화 중 주인공이 운영하던 서점에도 들를 예정이었지만, 그 실제 서점이 망해버리는 바람에 그냥 거리 곳곳을 거닐면서 시간을 때웠다.


버스킹 중인 사람들, 이스탄불의 버스킹이 떠올랐다


 런던 다리 역에서 대락 한 시간을 달려서 브라이튼에 도착했다. 역에서 또 버스를 한 번 타고 세븐 시스터즈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이동에도 시간이 꽤 걸리는 여정이었다. 확실히 비수기에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없었다. 꽤 유명한 관광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화창한 날씨와 시작된 세븐 시스터즈 관광


 세븐 시스터즈는 해안가에 있는 새하얀 백악질의 절벽이다. 굴곡진 일곱 개의 절벽이었기에 '세븐' 시스터즈라고 불린다 한다. 그 절벽을 보려면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세븐 시스터즈 공원에 들어가 몇십 분을 걸어야만 했다. 사진 상으로 보면 날씨가 상당히 화창한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생각보다 매서운 추위를 동반한 강렬한 바람 때문에 귀가 매우 시렸다.


공원이 상당히 넓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사진


 이 넓은 공간에 사람이 나밖에 안 보인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나의 이번 유럽 여행 자체가 그런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성수기보다는 비수기 여행을 선호한다. 물론 사회인이 되고 나니 왜 사람들이 성수기에 몰리는지 알만했다. 갈 시간이 없다는 슬픈 현실이 직장인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저 비수기가 너무 좋다라며 신나서 걸었던 기억밖에 없다.


바람에 기분 좋게 흔들리는 갈대들


 춥긴 추웠지만 주변을 감싸는 아름다운 광경들 때문에 추위는 금세 잊어버렸다.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깨끗한 하늘에 적당한 구름이 푸른 초원과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만약 사전에 단어에 대한 설명을 그림으로 첨부할 수 있다면, '목가적'이라는 단어에는 이 광경을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흔들리는 갈대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댄 기억이 있다. 마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첫 장면을 재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살랑이는 갈대가 내 손을 부드럽게 간질였다. 바람이 느껴지는 것 같은 그 신비하고 포근한 느낌을 간직한 채로 계속 길을 걸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그냥 예술이다


 걷다 보니 희멀건 것들이 초원 곳곳에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특이한 나무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방목된 양들이었다. 순간 인터라켄이 겹쳐 보이며 난생처음 보는 양들이 반갑게 느껴졌다. 아쉬운 건 사람이 가면 안 되는 건지, 울타리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까이서 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멀리 서라도...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끝나면서 슬슬 호숫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리상으로는 이 공원 자체가 해안가의 거대한 언덕 위라 도대체 저 호수가 어디서 생겨난 걸까 궁금했지만, 그냥 그 아름다운 모습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했다.


맑고 깊은 색을 지닌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
컴퓨터를 키고 제일 많이 봤던 것 같은 어딘가 익숙한 배경


 그렇게 맹추위 속에서 몇십 분을 걸었을까. 드디어 세븐 시스터즈의 언덕에 도착했다. 눈앞에 보이는 장엄한 풍경에 넋을 잃었다. 유럽 여행 도중 광활한 대자연을 많이 봐왔지만, 이런 류의 풍경은 전혀 감동이 무뎌지지 않는다. 


너무 거대해서 카메라 하나에 일곱 언덕을 다 담기가 어려웠다


 바로 해안 가고 고도가 꽤 되는 곳이라 추위가 극심했다. 손은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것처럼 부르트며 빨개지고 단단해졌다. 고통스러울 정도였으나, 이 공간이 주는 감동이 너무 컸던 것일까. 이 고통쯤은 사소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햇빛을 받아 백악질의 언덕이 새하얗게 빛났다. 안 그래도 하얀 언덕은 이제 금빛을 내고 있었다. 그 밑으로 들려오는 맹렬한 파도의 찰싹거리는 소리, 그리고 폭풍 칠 때나 들리는 거센 바람소리가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었다. 근처에 채 열명도 안 되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의 존재는 이 거대한 자연 속에서 그저 티끌만 한 존재로 인식될 뿐이었다.


 뒤로는 드넓은 초원, 앞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그 중간에 내가 서 있었다. 이때 살면서 처음으로 '타나토스'라는 것을 떠올렸다. 쉽게 말하면 죽음의 본능이라는 뜻이다. 진짜 죽고 싶었다는 뜻은 아니고, 이 공간에서 내가 느낀 분위기가 죽음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흔히 시를 공부할 때 시상이라는 것을 배우는데, 그중 자주 등장하는 말이 '추락하는 이미지'다. 교과서로 배울 땐 전혀 감흥도 없던 그 시상이 지금 떠올랐다. 이곳은 어딘지 모르게 사람으로 하여금 추락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너무나도 거대한 대자연 속에서 티끌 같이 인식되는 나 자신, 몸을 던지면 저 거대한 파도에 삼켜질 것 같은 상황.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서 사람으로 하여금 뛰어들고 싶게 만드는 욕구를 이끌어내는 것 같다. 어쩌면 이 죽음은 내 여행에 선고하는 마지막 순간이었을까. 


 조금 이상한 비유지만, 땅의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긴 여정을 마치고, 그 끝이 보이는 언덕에서 지난날의 여정을 돌아보는 느낌이었다. 이곳은 진짜 '끝'이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시절의 사람들은 분명 이곳에 온다면 이곳이 세상의 끝이라 말하리라.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독백이 튀어나왔다. "이제 이 여행이 진짜 끝이구나". 그때였다. 눈을 들어 지평선을 보니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절묘한 상황에 열린 하늘


 하늘이 열린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절경이었다. 티끌 한 점 없는 하늘에서 태양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 군데를 중심으로 뭉쳐있던 구름이 걷히면서 찬란한 햇살이 세상을 밝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노을은 처음이었다. 보통 노을은 소멸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어딘가 아련하면서도 불그스름한 분위기가 노을을 대표하는 감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 노을은 달랐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한 모습. 이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태양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거대한 신화 속의 한 장면에 포함된 이 기분은 짜릿함을 넘어 경건함을 자아냈다. 이때부터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믿게 된 것 같다. 이 성스러운 장소와 장면들이 도저히 우연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이치에 맞지 않았다.


 어느새 추위로 인한 고통은 이 모든 감상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심해졌다. 정말 앓아누울 수도 있다고 생각될 정도의 고통이었다. 심지어 군대에 있을 때도 이런 추위로 인한 고통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제야 발걸음을 돌려 버스 타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 한 가지 터득한 건, 아쉬운 순간에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다. 그것이 여행지에서든, 인생의 어떤 순간이든.


떠나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세상의 끝


 가는 길에 언덕 위에 흰 조약돌이 많은 걸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조약돌로 자기들만의 단어를 만들고 떠났다. 신기한 건 그중 절반 이상이 한글이었다. 역시 자신의 족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민족다웠다. 여행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흰 조약돌로 만들어진 한글을 보는 게 이상하게 더 반가웠다. 평소에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지만, 나 역시 그 조약돌로 내 이름을 만들었다. 보통 남들이 다 하는 걸 따라는 게 성미에 맞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올 날을 기약하기 위해. 파리의 제로 포인트에서 한 약속처럼.


내 이름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웠던 순간. 여행의 그 끝에서.


 그렇게 나는 세븐 시스터즈를 떠났다. 그리고 내 여행은 끝이 났다. 이제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었다.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듯, 내 이번 여행은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세븐 시스터즈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그걸 확신시켜줬다. 끝이라는 건 없다. 새로운 시작이 있을 뿐이다. 나는 지금 영원한 여행의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 깨달음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하나의 지침이 됐고, 나를 끊임없이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세상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보았다. 여행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 이 여행에서 과거의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고, 현재의 나를 성찰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미래의 내 모습까지 그려볼 수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첫 여행을 서른 즈음에 와서야 기록으로 남기게 됐다. 지금 그 여행기를 마무리하면서 현시점의 나에게 자문한다. 


 '나는 지금 어떤 여행을 떠나는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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