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런던 2014 (2)
이 글은 런던에서 보낸 두 번째 날에서 네 번째 날까지의 기록이다. 앞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여행에 매너리즘이 찾아와서 그런지 이 당시는 내가 주도적으로 여행을 한 느낌이 아니다. 그냥 투어에 이끌려 나 자신을 급류에 밀어 넣은 그런 나날들이었다. 궁금한 것도 별로 없고, 그저 편하게 쉬고 싶었던 날들. 그래서인지 기억이 정말 뒤죽박죽이고 사진을 봐도 어떤 곳인지 기억 안 나는 곳이 태반이다. 굳이 그런 곳들로 일기를 채우기는 싫었기에 확실하게 기억나는 공간만을 글에 담았다. 아마 써온 일기 중에 가장 알맹이 없는 글이 될지도 모른다.
첫째 날, 화창한 런던의 날씨에 감동했었다. 내가 알던 런던이 아닌 것 같아서 괜스레 미안해지기까지 한 하루였다. 그러나 그 마음은 둘째 날이 되자마자 다시 사그라들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안 오는 것도 아니고, 며칠 내내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된 것이다. 내가 날을 잘못 잡았나 싶었지만, 가이드분의 말로는 이것이 런던의 아주 일상적인 날씨라고 하신다. 그냥 첫날 내가 운이 좋았던 거였다.
파리 역시 이렇게 수시로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런던과 파리의 분위기는 그 결이 달랐다. 파리는 분무기가 상큼한 물방울을 조금씩 흩뿌리는 느낌이었다면, 런던은 칙칙한 물방울들이 가스처럼 뭉쳐서 허공을 맴도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떤 게 더 우울한 날씨인지는 굳이 안 말해도 될 것 같다.
날씨가 안 좋은 와중에도 기억에 남는 건 그리니치 천문대였다. 사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춥고 축축한 날씨다. 그 때문인지 사진기를 꺼내기도 귀찮았나 보다. 남아있는 사진이 정말 없다. 그나마 있는 사진이라고 해봐야 관광지에 대한 예의로 찍은 것처럼 보이는 것들뿐이었다.
그리니치 천문대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바로 그 상징성 때문이다.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이곳에서 현재 우리가 쓰는 시간의 기준선이 있다. 본초자오선이라 불리는 그것이다. 사실 시간이라는 것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불연속적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추상적인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개념에 처음으로 기준이라는 것을 정했고, 우리의 삶은 그 기준을 토대로 흘러간다. 기상하는 시간, 아침 먹는 시간, 등하교하는 시간, 등등 우리의 삶의 큰 틀을 구성하는 그 모든 것들이 이곳을 기준으로 결정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구 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장소라고 해도 절대로 과하지 않을 곳이다.
본초자오선도 직접 발로 밟아보고, 남들이 안 볼 때 자오선으로부터 몇 걸음 걸어가며 '난 지금 지구의 몇 분의 일을 걸었어!'라고 혼자 되뇌던 게 잠깐 기억난다. 그만큼 기준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냥 집 앞을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매우 인상적인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언제 어느 맥락에서 찍었는지 모르겠는 런던 시청. 아니나 다를까, 배경을 보면 당시의 내가 얼마나 대충대충 일을 끝내고 싶어 했는지 볼 수 있다. 날씨가 저러니 흥이 생기려야 생길 수 없었다. 악재에 악재였다. 여행의 매너리즘, 우중충한 날씨, 극에 다른 여독. 여행 중에 여독이 오는 게 웃기긴 하지만, 그만큼 여행이 길어지고 여행자 행세가 삶에 녹아들었다는 징조 아녔을까.
그나마 기억에 남는 건, 같이 투어를 다닌 신혼여행을 오신 부부분께서 동생 보는 것 같다면서 나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주셨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인복이 참 많은 편이다. 특히 여행지에서 더더욱.
어린 시절 방문했던 런던이 안 좋게 기억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억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투어를 따라서 이동할 때마다, 간혹 익숙한 공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유명한 곳들을 위주로 돌다 보니 그 당시에도 방문했던 곳인가 보다. 잊었던 기억들을 회상하게 만든 장소 중 하나는 버킹엄 궁전 열병식이었다.
가이드분의 안내에 따라 열병식이 진행되는 시간에 맞춰 버킹엄 궁전으로 향했다. 저 모습을 보자니,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냥 대단하다며 봤겠지만, 군대를 다녀온 뒤로는 저렇게 오와 열을 맞추어 긴 거리를 멋지게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알게 모르게 타국의 근위병들과 동질감마저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걸 여행 와서 더 강하게 느낀다.
버킹엄 근위대들의 부동자세는 익히 들을 정도로 유명할 것이다. 이젠 하나의 상징이자 특징이 되어버린 것. 누군가에게 특정한 모습으로 인정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학교에서든, 군대에서든, 회사에서든, 그 어느 곳에서든 '어떤 어떤 사람이다'라고 인정받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다들 살아가면서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그것이 좋은 인식일 때 더더욱 말이다. 한 번의 실수로도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린다.
인정받는 대상이 전 세계 사람들일 때는 오죽할까. 지금이야 우리는 '버킹엄 근위대? 부동자세가 유명하지'라고 쉽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쉽고 자연스러운 인식이 될 때까지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까. 만약 근위대들이 시도 때도 없이 실수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지금처럼 '버킹엄 근위대 = 부동자세'라는 공식이 성립했을까? 타인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은 그 이면을 살펴보면 그만큼 엄청난 노력과 수고가 들어간 것이다. 당연한 것이 제일 어렵다. 그걸 조금이나마 깨달아가고 있던 시기였기에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여러 가지 성취감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박물관 정복이다. 정복이라는 표현이 가소로울 정도로 짧은 시간만 보냈지만 방문한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흔히 세계 3대 혹은 4대 박물관이라 불리는 곳들이 있다. 주관적 견해 때문에 사람마다 그 명단에 차이는 있지만, 논란의 여지가 없는 곳이 두 군데 있다.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박물관이다. 대영박물관에 감으로써 그 두 곳을 모두 방문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박물관 안에서 졸면서 걸었다. 군대 행군 때도 졸면서 걸어본 적이 없는데, 여행지에 와서, 그것도 세계적인 박물관 안에서 졸면서 관람한 것이다. 소장품들이 질려서가 아니었다. 유난히 그날 체력의 한계에 봉착해서 그런 것이었다. 이 글에서 질리도록 언급하는 우중충한 날씨와 더불어 갑자기 몰려온 한파 때문에 몸이 엄청난 열을 발하면서 피곤에 찌들어버린 것이다.
생각보다 장단점이 각각 존재했다. 단점은 당연히 소장품들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 장점은 상투적인 고민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영박물관 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논란. 약탈품으로 만들어진 박물관.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 논란이다. 이와 관련해 여러 공방이 존재한다. 약탈품들로 박물관을 구성한 것에 대한 비난, 그와 동시에 오히려 약탈하고 무료로 개방한 덕분에 보존하지 못할 뻔한 것들을 후대에 남길 수 있다는 칭찬. 맨 정신에 이곳에 왔다면 나 역시 이 주제로 혼자 고찰을 했을 것이다. 내 성격상 분명하다. 하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이런 상투적인 고찰을 하지 않았고, 소장품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마저도 제대로 본 건 없지만 말이다.
깊은 생각에 잠겨 드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어쩔 때는 그냥 생각 없는 것이 편하고 좋을 때도 있다.
삼일 내내 비가 왔다고 했지만, 그 틈새에서도 화창한 순간이 있었다. 엄연히 말하면 런던 시내, 그리고 낮 시간에 찍은 사진 중에 유일하게 화창하게 나온 날씨는 국회의사당이 담긴 사진이다. 며칠째인지는 이제 기억도 안 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국회의사당은 항상 멋있어야 한다는 룰이 있는 걸까. 우리나라의 여의도 국회의사당도 그렇고 런던의 국회의사당도 그렇고, 모두 하나같이 웅장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이 있다.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고, 밑에서 그 큰 건물을 올려다보니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건물 위로 펼쳐진 청명한 하늘과 구름 때문이었을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일컬어진 그 옛날 대영제국의 영광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야 이방인이기에 감상은 딱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어쩌면, 이곳에 사는 몇몇 젊은 청년들은 나와 같이 이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국회의원의 꿈을 키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인생에서 런던이라는 곳이 처음으로 인지된 건 디즈니 만화영화 피터팬을 통해서였다. 웬디와 이이들이 피터팬과 팅커벨의 도움을 받아 빅벤 근처를 날아다니는 모습이 아직도 아련하다. 그 장면은 내 동심의 근원 중에 하나이자, 아직 사라지지 않은 꿈같은 순수함을 유지시켜주는 동아줄이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있어 밤에 바라본 빅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조금 유치할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저 시계 주변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심지어 가장 최근에 했던 어떤 게임에서도 밤하늘의 빅벤 주변을 날아다니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두 팔을 활짝 벌려 팅커벨과 함께 날아다니는 피터팬이 되고 싶었다. 이미 어린아이라고 할만한 나이는 아니었지만, 아직 이런 상상을 할 줄 알고 꿈꾼다는 걸 보면 나는 네버랜드에 갈 자격을 박탈당한 어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수함과 상상력이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에 매우 감사한 순간이다.
런던을 방문한 사람들은 한 번쯤은 런던 아이를 타봤다고 한다. 대 관람 열차로, 런던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대표적인 야경 명소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런던 아이에 타지 않았다. 이미 다른 도시에서 야경이란 야경은 많이 봐와서 더 이상 야경에 대한 낭만이 없었다. 지금은 조금 후회된다. 해볼 것을 다 해보고 후회하는 것과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은 천지차이인데 말이다. 언젠가 다시 런던에 갈 일이 생긴다면 꼭 타서 2014년 당시 내 무관심을 사과하고 싶다.
이미 이 당시의 나는 런던의 음식보다 숙소에서 제공해주는 신라면을 더 많이 먹던 상태였다. 이미 여행의 매너리즘이 갈 데까지 간 상태로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만 이렇게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솔직히 유럽 여행에서 좋았던 순대로 나열하라고 할 때 런던은 절대로 상위권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유럽에서 런던이 제일 좋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아리송해지곤 한다. 여러모로 런던은 나한테 억울할 게 많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안 좋은 기억들 때문에 평가절하당하고, 지금은 마지막 여행지라는 점 덕분에 매너리즘이 찾아와 버렸으니 말이다. 사실 '나에게 런던이라는 도시란?' 같은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했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문득 그 답이 생각났다. 런던은 나에게 '내가 많이 미안한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