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몽상가 #Level 3
유학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자산은 '방대한 게임 플레이 시간'이다. 참 부모님께 죄송하면서도, 그 시절 그 경험들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라 생각하니 미묘한 추억이다. 애초에 공부가 목적이었던 유학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나는 여러 가지 사정들로 인해 아주 쉽게 게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유치원 때부터 영어 유치원을 다녔던 터라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지나치게 미국인들의 삶에 잘 녹아들어 가서 그런지 여러 가지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심한 것이 바로 인종차별이었다. 그저 이방인으로만 살았다면 체감할 수 있는 인종차별이 적었을 것이다. 기대를 하지 않고 서로 간의 영역을 잘 지키며 살아갔을 테니까. 하지만 너무나도 적응을 잘한 탓에 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게 됐고, 그럴수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느껴지는 인종차별에 넌더리가 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한국 유학생들에게는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외국인들 사이에는 더 이상 내가 들어가기 싫었다. 그렇게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찾아낸 것이 바로 PC게임이었다.
국내에서 오래전에 출시되었던 여러 게임들을 해가며 며칠 밤낮을 지새웠다. 중학교 때 읽던 장르 소설의 이야기들을 내가 직접 조작해가며 플레이해나가는 경험은, 여태 살면서 느낀 그 어떤 즐거움보다도 컸다. 심적으로 지쳐있던 나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삭막했던 내 삶에 오히려 흘러넘치는 감정들을 불어넣어준 고마운 존재들이다.
나는 이때부터 PC게임들을 미친 듯이 찾아서 구매하고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힘들었던 그 시기를 이겨내고 싶었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내 노트북은 여러 PC게임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RPG만을 유독하던 나는 결국 RPG의 본고장인 일본 JRPG의 세계까지 발을 들여놓았다. 아마 이 세 달이 내가 살면서 게임을 가장 콤팩트 하게 즐긴 시간일 것이다. 지금 와서야 조금 후회하지만, 이때 게임에 너무 열중해서 학교에서는 잠만 잤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연락을 단 한 번도 드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효자도 이런 불효자가 따로 없다. 자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마음을 졸였을 부모님은 무슨 죄인가.
결국 나는 1년 만에 한국으로 강제 소환당했다. 4점 만점에 3.8 정도의 성적을 받는 아들이 갑자기 반년만에 1점대 성적을 받으니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천국 같던 내 게임 Life는 막을 내렸다. 이 시기는 게임 기획자가 된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의의를 갖는다. 여태까지는 그저 이야기들을 보고 상상하는 것을 즐겼다면, 이번에는 이야기를 향한 내 애정이 발현되는 플랫폼을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게임을 고르는 내 기준이 '이야기'로 확정된 것 같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야기가 없는 게임은 처음부터 할 마음이 들지도 않는 것을 보니 말이다.
p.s) 사실 한국으로의 강제소환은 오히려 내 게임 생활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한국보다 인터넷도 느리고, 자료 검색에도 한계가 있던 미국에서 인터넷 강국 한국으로 들어오니, 내가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훨씬 다양하고 많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