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몽상가 #Level 5
살아오면서 상상하고 구상해왔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매우 긴 글을 계획적으로 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학업이라는 주변 환경 때문에 마음 놓고 글만 쓰지 못했던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드디어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다. 바로 군대에서의 2년이라는 시간이었다.
통역병이라는 보직 덕분에 매우 쾌적한 환경에서 군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두들기는 일을 했으며, 근무가 끝난 뒤에는 자기 전까지 아주 넓은 범위의 자유가 주어졌다. 심지어 근무 시간 중에도 일이 없을 때면 컴퓨터를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부를 할까 고민도 했지만, 천성이 그렇게 긴 시간을 잡고 성실하게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예전부터 해보고 싶던 소설 집필을 시작한 것이다.
근무 시간마다 짬짬이 글을 쓰고, 퇴근 뒤에는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에 와서 하루 평균 3시간 동안 글을 썼다. 남들이 생활관에서 웹서핑을 하고, 운동하고, TV를 보면서 놀 시간에 나는 묵묵히 사무실에서 타자를 두들겼다. 출근이 없는 주말에도 생활관에서 사무실까지 가서 거기서 햇반으로 밥을 해결하며 오로지 글을 쓰는 데에만 몰두했다.
이때가 내 인생 최고로 성실할 때였다. 진짜 말 그대로 밥 먹고 글만 썼다. 자투리 시간까지 쪼개가며 한 글자라도 더 쓰기 위해 노력했고, 내가 스스로 설정한 마감에 일정을 맞추기 위해 새벽까지 글을 쓴 적도 있다. 곁에 있는 동기 및 선후임들은 소설 쓰는 게 그렇게 재밌냐면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거의 광인(狂人)에 가까웠던 것 같다. 청소년기에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 창작의 욕구를 한 번에 모두 풀어내려는 듯, 광기에 가까운 내 집필은 장장 1000페이지가 넘어가는 장편 소설을 완성시키는 1등 공신이었다.
중간중간 내 소설을 읽으시며 재밌다고 말씀하신 아버지의 격려 역시 큰 몫을 했다. 공부를 해야 할 때는 이런 나를 못마땅해하셨지만, 이제 와서야 이런 내 재능과 적성을 인정해주셔서 그런지 더욱 느낌이 남달랐다. 부모님한테 인정받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데, 부분적으로나마 인정을 받으니 창작욕구가 더 불타올랐던 것 같다.
이때 완결 혹은 집필했던 이야기들은 지금에서도 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소재가 됐다. 다만 아쉬운 건 보안 문제로 집필했던 내용들을 파일로 반출 못하고 죄다 종이에 프린트해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긴 내용들을 다시 컴퓨터 타자로 칠 생각을 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아서 벌써 7년째 방치한 상태다. 언제쯤에야 이 글들이 세상에 공개되게 될까?
어떤 것을 '완결'짓는다는 건 생각보다 귀중한 경험이다. 아무리 휘황찬란하고 잘 쓰인 글이라고 해도, 완결되지 않은 것은 제대로 된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다. 작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마무리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 억울한 일도 아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완결 내본 사람은, 그다음에도 다른 것을 완결시키는 끈기와 인내를 보유하게 된다. 완결의 가치를 알게 된다.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는 긴 인고의 시간이 걸리는 법. 군대에서 소설 집필에 힘쓴 2년은 내가 앞으로도 많은 역경을 마주칠 때, 그것들을 끝낼 때까지 버틸 수 있게 하는 귀중한 경험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