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몽상가 #Level 9
경영학도가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한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얼마나 힘들었냐면, 이 시기가 내 인생 중 가장 힘든 시기 5위 안에 들 정도였다. 그리고 힘듦이 생각보다 너무 거대해서, 인생을 살아낼 힘조차 낼 수 없었던 시기로는 거의 1위 아닐까 싶다.
일단 육체적인 어려움이 제일 컸다. 집은 강남, 본전공 경영은 회기, 복수전공 컴퓨터공학과는 수원. 두 학과는 집에서 정반대의 방향에 위치해있었다. 대학생들은 공감하겠지만, 시간표란 내 뜻대로 짜이지 않는다. 어떤 날은 강남에서 회기를 갔다가, 수원에 갔다가, 다시 회기로 돌아왔다가 집에 귀가하기도 했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는지, 마침 아버지 직장이 용인이라 수원으로 등교하는 날에는 아버지가 직장 가시는 길에 나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셨다. 나중에 또 언급하겠지만, 아버지의 이런 지원조차 나에게는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다음으로는 심리적인 어려움이었다. 넓디넓은 수원의 캠퍼스에서 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었으며, 당시만 해도 복수전공이 흔한 일이 아니라 같은 처지의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회기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항상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공강이든 수업이든 단 한순간도 혼자 있어본 기억이 없다. 그런 내게 학교를 홀로 다니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심한 날에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출석을 제외하고는 입을 단 한 번도 연적이 없다. 식사 역시 캠퍼스가 넓어서 버스를 타고 나가서 먹어야 했다. 그 귀찮음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종종 밥을 굶고는 했다. 심리적 외로움 때문에 몸마저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건 전공기초였다. 사실 코딩하는 것은 재밌었다. 다만 이 과를 졸업하려면 전공 기초인 '미분 적분학', '물리학 1', '이산수학' 등등을 수강해야 했다. 문과였던 내게 저 과목들을 선행 없이 듣는다는 건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결국 중요한 건 코딩이니까 애써 무시하고 다녔다. 그렇게 시작한 첫 학기의 학점은 처참했다.
가장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었던 건 물리학 1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공식들을 달달 암기해야 했기에 중간고사 전날에 밤을 새웠고, 피로가 지나쳤는지 시험 시간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1시간 중 50분이 지나있었다. 결과는 당연히 100점 만점에 10점이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점수였고, 이는 나머지 수업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결국 사상 최악의 학점을 기록했다. 이때부터 심신이 지쳐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좋아하지 않는 일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건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 같이 느껴졌다.
친구 없는 학교 생활, 처참해진 학점, 그리고 여전히 이런 나를 아침마다 데려다주시는 아버지. 이 모든 것들이 마음에 짐이 되어 수업 들을 의욕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어버렸다. 몸이 더 힘들어도 굳이 아침에 혼자 버스를 타고 수원에 갔고, 흥미롭던 코딩 수업마저 대충 듣기 시작했다. 학점은 더더욱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가끔씩 있는 교양과 본전공인 경영 수업이 나의 안식처가 되어줬다. 이런 나날들이 지속되면서 마음속에 불신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나?
나름 선견지명을 가지고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좋았던 원래 학점까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도 저도 안 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결국 내 꿈에 대한 확신마저 희미한 촛불이 되어 꺼지기 직전이었다. 한 마디로 삶에 낙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렇게 내 꿈은 좌절되고, 내 삶마저 좌절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유니티(Unity)'를 만나기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