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몽상가 #Level 10
내가 유니티를 만난 건 아주 사소한 계기였다. 방학 때 조금이라도 게임 제작에 관련된 것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짧게 게임 엔진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초급반이었기에 때문에 퀄리티 높은 게임을 만드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이때의 경험이 죽어있던 내 삶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줬다.
유니티에 대해 쉽게 설명하자면, 코딩으로만 만들던 게임을 보다 쉽게 2d 및 3d로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엔진이며 지금은 언리얼 엔진에 살짝 밀리고 있지만, 한때는 모바일 게임 중 절반 이상이 유니티로 만든 게임일 정도로 유용한 엔진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에 숙달되면 코딩에 관련된 지식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기능이나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다. 이건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건 매우 쉬운 수준의 게임 구현이었다. 2d로 된 이미지를 활용해 슈퍼마리오처럼 단순한 게임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정신은 이미 아득한 곳까지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 중, 이렇게 유니티로 구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취사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학원에서 배우는 지식들을 토대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작은 것부터 구현시키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학원은 고작 하루에 2시간이었지만, 집에 와서 거의 6시간 가까이,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유튜브를 보면서 홀로 유니티를 독학했다. 학원에서 내주는 과제는 물론, 내가 만들고 싶은 것 역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며 유니티 파악하기에 매진했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부모님들은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내가 이 분야에 기필코 진입하여 성공할 것이라고. 내가 필요에 의해서 스스로 시작한 공부가 이것이 최초였기 때문에, 내가 쏟아붓는 열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20년 넘게 단 한 번도 '공부'라는 것에 열정을 쏟은 적이 없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쓰지 않았던 모든 열정을 여기에 쏟아붓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유니티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이제 내 삶 가장 큰 낙이 됐다. 이건 방학이 끝나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감당하기 벅찼던 하루하루 속에서도, 유니티를 켜고 내 이야기를 쓰며 그걸 코딩을 통해 구현할 때면 세상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이미 4년이나 지난 나날들이지만, 지금도 그때의 결과물들을 켜보면 '내가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싶을 정도로 정성을 쏟은 티가 강하게 난다.
다만 이 열정은 내 본업마저 잠식시켜버리게 했다. 내가 그렇다. 하나에 진지하게 빠지면 다른 건 전혀 돌아보지도 않고 그 하나에만 미친 듯이 매진한다. 분명 전공만 일곱 개인, 21학점이라는 무시무시한 시간표였다. 심지어 모두 컴퓨터 공학과 관련된 과목들이었다. 인생을 갈아 넣어야 최소한의 학점을 얻을까 말까 한 그런 학기였는데, 이 학기가 내가 유니티에 가장 매진한 시기일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시간을 냈냐고? 간단했다. 학교를 안 갔다. 집에서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집을 나간 뒤, 바로 동네 카페로 가서 유니트를 켜고 밤 11시까지 게임만 만들었다. 한 번 게임 제작의 재미를 알아버리니, 더 이상 고리타분한 학교 공부는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물론 학교 공부가 쓸모없다는 소리는 절대로 안다. 뭐든지 기초가 중요한 법이니 결국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학교 공부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어차피 난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기획자가 될 것이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
사실 그래도 학기 초반에는 열심히 하는 척은 했다. 하지만 유니티로 게임 만드느라 학교를 안 간 날에 중간고사가 3개나 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이미 망한 거 게임이나 만들자! 라며 학교를 아예 안 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너무 대책 없는 처신이었다. 취업에 가장 힘써야 할 4학년 1학기에, 전공 21학점이 걸린 학기에 학교를 가지 않는다니. 나는 이 방법으로 결국 성공했지만, 절대로 누구에게 추천할 수 없고 추천하지도 않을 방법이다.
아무튼 이렇게 한 학기가 지나갔고, 경이로운 결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점 1.1. 학사 경고였다. 노는 걸 좋아하는 대학 동기들이 새내기 때나 가끔 받는 그런 학사 경고를 내가 받은 것이다. 무려 4학년 1학기에. 다행인 건 미리 성적표 발송 주소를 친구 집으로 해놔서 부모님은 이걸 2년 뒤에나 알게 되셨다. 하나 나는 이런 결과를 보고서도 담담했다. 왜냐하면 4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여태까지 만든 유니티 게임과 자기소개서를 통합한 포트폴리오로 게임 회사에 합격한 것이다. '게임 업계는 경력이 최고다.'라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이제 내 인생에는 장밋빛 미래만이 가득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무기한 휴학을 신청하고, 대학생 생활과 작별을 고했다. 2018년 12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