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몽상가 #Level 11
2018년 1월 25일. 첫 직장에 출근했던 그날이다. 6개월 동안 유니티에 매진하며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던 시간은, 4-1학기가 끝나고 나서 바로 취업에 성공했다는 좋은 결과를 냈다. 한창 청년 실업 문제가 대두되던 시절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들어간 스타트업은 HTML5 기술을 이용해 2D 쿼터뷰 MMORPG를 만드는 회사였다. 내가 굳이 이 회사에 지원을 했던 이유는, 이 프로젝트가 갖고 있는 방향성이 내가 만들고 싶어 하는 게임의 방향성이랑 일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긴 채용과정을 거쳐서 취직이라는 것을 하게 됐고, 그렇게 게임 기획자로써의 내 삶이 시작됐다.
첫 취직으로 인해 생겨난 여러 일들보다는 게임 기획자로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처음에 들어간 직무는 정확히 말하자면 시나리오/설정 기획자였다. MMORPG를 이루는 세계관에 대한 설정, 그리고 플레이어가 경험해나갈 시나리오를 기획하는 일이었다. 첫 2주 동안은 우리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시간 동안 내가 확장시키고 수정해나갈 설정들을 상상하느라 즐거웠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이걸 일로 시작하려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게임 만드는 것도 하나의 일이었다. 기발하고 재밌는 것을 고민하는 시간보다, 그럴듯한 것을 구동시키는 곳에 쏟아붓는 시간이 더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간은 으레 그렇듯, 야근과 주말 출근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마음속에서 작은 유혹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기 위해서는, 덜 기발하고 덜 재밌는 것을 기획해야만 했다.
사실 모든 게임 제작사가 이렇지는 않다. 지금은 게임 만드는 게 원래 쉽지 않고, 항상 어려움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조건 식상하고 재미없어야 일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재밌고 기발한 것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회사가 그리 많지 않을 뿐이다. 내가 다녔던 곳은 스타트업이었고, 스타트업에서 그런 것들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인생을 갈아 넣어야 했다. 좋게 말하면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게임 만드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 역시 너무나도 많았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즐기던 게임의 여러 부분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 동안 고뇌하며 작업한 결과였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이때부터 유달리 저작권에 관한 의식이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정말 하나의 콘텐츠를 만드는데 피나는 노력이 동반된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감수하는 것. 이 만고의 진리는 역시 게임 업계에서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엑셀의 데이터 작업에 할애하는 시간이 더 길어도, 초년생이었던 나는 뭘 해도 즐거웠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쉽게 용인할 수 있었다.
인정받는 것 역시 매우 기분 좋은 일이었다. 컴퓨터공학을 배웠던 덕분에 프로그래머분들과 매우 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었고, 나는 어느새 프로그래머가 함께 일하고 싶은 1순위 기획자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고생했던 삶들이 보상받아온 느낌이었다. 살면서 쌓아온 다양한 지식들로 인해 '아는 게 많은' 기획자란 타이틀(?)도 소유하게 됐고,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의 신임을 받게 됐다. 여기에 누구보다 열정을 많이 불태운 덕분인지, 1년이 지났을 땐 생각했던 액수 이상으로 연봉을 올릴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초년생의 티를 벗어나기 시작했고, 나는 그렇게 직장인 2년 차가 됐다. 그리고 내 삶에 중요한 변화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