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에서 게임 기획자까지(3)

꿈을 이룬 몽상가 #Level 15

by 스토리텔러

퇴사자, 새 출발을 내딛다


내는 족족 모든 곳에 떨어지던 시간을 지나 어느새 2020년 9월이 됐다. 코로나 역시 점점 심해져만 갔다. 이에 더해 취업이 안 되는 것이 코로나 탓이라는 내 구차한 변명도 늘어만 갔다.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눈치 보이고 고통스러웠다. 긴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다시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단순히 게임 만드는 게 즐거웠던 그 나날들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기업의 이름값? 높은 연봉? 이런 것들 모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저 게임을 만들 수 있다면 족하던 그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게 내가 즐거워하는 일이었으니까. 이렇게 남들 다 따라가는 가치를 따르기 위해 퇴사를 결심한 게 아니었다. 나는 행복하려고 퇴사를 한 거지, 이렇게 불행하려고 퇴사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 마음먹은 순간, 정확한 날짜는 기억 안 나지만 갑자기 모든 짐이 싹 내려가듯이 마음이 시원해진 날이 있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과 낙관적인 전망으로 가득했던 하루가 있었다. 왜 그런 건지 설명할 수 없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 내 눈에 한 공고가 들어왔다.


N사 신입 공채 공고


나도 모르게 그 공고에 지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느낌이 너무 좋았다. 더군다나 자기소개서에 있는 항목들을 기입할 때, 근 몇 달간 썼던 그 어떤 문장보다도 솔직하게 썼던 것 같다. 지어내지 않은 나 자신을 그대로 나타낸 자소서였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서였을까? 하루 만에 완벽하게 모든 것들을 마무리해버렸다. 자소서 외의 모든 항목들을 기입했고, 포트폴리오도 제출했다. 참고로 이때 제출한 포트폴리오는 여태까지의 게임 기획자로써의 나를 완성해주는 재료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상반기 때만 해도 포트폴리오를 정성스레 만들어서 제출한 적이 없다. 전에 일하던 문서를 살짝 손봐서 제출한 정도가 다였다. 오히려 그런 정도였기에 떨어졌던 게 아닐까? 아무튼 N사 신입 공채에 지원한 뒤, 그 뒤로 보이는 회사들 공고에 닥치는 대로 지원했다. S사, C사, 그 외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들. 기적적으로 하루 만에 열 군데나 가까운 곳에 지원서를 넣은 날이었다. 정신적으로 피로해지지도 않았다. 신기한 날이었다.


약 2주 뒤.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지원했던 모든 곳들에 서류 합격을 한 것이다. 이때부터 한 달간 면접만 열 번 가까이 보느라 정신없었던 것 같다. 물론 시련도 존재했다. N사 필기 테스트 날이 학교 졸업 시험과 겹쳐서 졸업 시험 1차를 포기해야만 했다. 만약 2차를 떨어지면 졸업을 못해서, 기업에 합격해도 입사가 취소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묘한 자신감인지, N사 필기 테스트를 보러 갔다.


또 다른 시련, 아니 고민도 있었다. N사 말고 다른 곳에 이미 최종 합격을 해버린 것이다. 그 회사의 출근날은 기묘하게도 N사 1차 면접 바로 다음날이었다. (N사 필기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했기 때문에). N사 1차 면접을 치르고 온 날, 나는 최종 합격한 회사에 출근할 수 없다는 연락을 보냈다. 회사를 다니면서 N사 2차 면접을 준비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1차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었지만, 그날은 내 인생에서 면접을 제일 잘 봤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면접관들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걸 봤다면 믿으려나?


가장 가고 싶던 N사를 가기 위해 나머지 회사들의 면접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 결국 N사 면접 1차를 떨어지면, 설사 2차까지 가더라도 떨어지면 다시 온전한 백수가 되는 상황이었다. 생각해보면 미친 행동일지도 모른다. 취직 못해서 그렇게나 우울해했으면서, 나를 최종 합격시켜준 곳, 그것도 나름 괜찮은 곳을 단칼에 거절한 것은 정말 어떤 자신감에서 나온 건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나다웠다. 뒤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소신대로 살아가는 것. 그런 나에게는 항상 달콤한 열매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히려 세상의 눈치를 볼 때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는 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다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내 신념을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12월 초, 나는 N사의 최종 합격 통보를 받게 됐다.


netmarble.png 보자마자 감격의 눈물이 흘러나온 장면


지난 6개월의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그렇게 아등바등하더니, 그 모든 곳들 중에서 가장 가고 싶고 좋은 곳에 합격했다. 그것도 그렇게 들어가기 어렵다는 신입 공채로. 코로나 시국에 말이다. 가족과 친구들이 얘기하던 '너는 더 좋은 곳에 가기 위해 지금 다른 곳들 떨어지는 거야'가 진짜가 된 것이다.


인생이 정말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단 하나도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어질 건 얻어지는 것 같다. 솔직히 자문해본다. 내가 게임 업계 아니면 어딜 갈까. 10년이라는 시간을 넘게 이 업계만을 꿈꿔왔는데 도대체 왜 한눈 판 걸까. 그 대가로 긴 시간을 정신적으로 고통받았어야만 했다. 이제 다시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나에게 다시 주어진 이 좋은 기회, 아니 과분할 정도로 좋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볼 생각이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게임을 만들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


즐거움을 넘어서서 소명까지 느꼈던 이 일을 사랑할 것이다. 서른한 살의 나이에, 나는 또 다른 새 출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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