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유후인 ~ 벳부 2017 (2)
사실 벳부는 유후인 편과 붙여서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쓸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던 유후인에 대해 생각보다 쓸 것이 많았다. 그리고 벳부에서 보낸 하루의 사진들을 돌아보니, 생각보다 벳부 및 근교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았다.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벳부는 할 거 없는, 그저 반찬 같은 도시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정정하겠다. 벳부는 유후인에 딸려오는 덤 같은 곳이 아니라 유후인을 보완해주는 곳이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의 즐거움 역시 매우 컸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 가족은 유후인을 떠나 벳부로 향했다. 두 도시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기에, 아버지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차를 몰아 쯔루미 산을 넘어가셨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였을까. 어머니는 시간도 넉넉한데 쯔루미 산에 올라가자고 하셨다. 차 뒤에 탄 아들들은 싫은 내색을 비쳤지만, 아버지는 운전에 지치셨는지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의 의견을 수용했다. 그렇다고 차 안에만 있는 건 말도 안 됐기에 우리 가족은 쯔루미 산을 올랐다. 사진에는 없지만 케이블카도 타고 꽤 편하게 위로 올라갔던 것 같다. 거의 산 중턱에서 직접 걷기 시작하니 해발고도 1375미터의 산을 오르는 것도 아주 쉽게 느껴졌다.
내가 왜 이때 사진을 찍을 생각을 못 했을까. 생각보다 쯔루미 산에서 남아있는 사진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혼자서 다닐 때는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대지만 가족과 다닐 때는 한 번도 나서서 사진을 찍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가족과 있을 때 마음이 가장 편해서 그런가.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무엇에 쫓기듯이 사진을 찍는다. 누군가가 내 눈앞에 있는 풍경을 뺏어서 내다 버릴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가족이랑 함께 있는 거랑, 예쁜 풍경을 담고 싶은 조급함이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니 조급함은 '결여됨'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지에 가서 예쁜 풍경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격렬한 행복을 느낀다. 물론 항상 여행을 가고 싶어 하지만, 내가 여행을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순간은 나에게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을 때였다. 그것이 우정이든, 사랑이든, 여유든, 뭐든 간에 말이다. 그 결여된 것을 채움 받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나를 채워줘야 할 것들이 사라질까 봐 조급하게 사진을 찍는 것 같다.
하지만 가족들과 있을 때는 결여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전쟁 같았던 청소년기를 제외하고는?) 그렇기에 채움 받을 필요성도 안 느껴지고, 당장 내 눈앞의 예쁜 광경 하나 못 찍는다고 해서 조급하거나 아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족들과 있을 때 사진을 안 찍는 것 같다. 나름 좋게 포장한 것 같지만, 이렇게 되돌아볼 때 사진이 없다는 건 그래도 참 아쉬운 일이다.
산 아래에는 벳부가 보인다. 언뜻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도시의 모습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때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라는 음악이 생각났다. 내가 유럽의 니스에서 떠올린 같은 음악이다. 벳부와 니스를 비교하기에는 솔직히 니스에게 참 미안하지만, 벳부에서도 비슷한 감성이 느껴진 건 왜일까. 두 도시를 모두 갔다 와본 사람들 중에서도 아무도 공감 못 할 감성일 것이다. 그래도 산 중턱에서 작은 항구 도시를 바라본다는 건 알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아니, 그건 아마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태어난 도시 진해와 닮은 모습에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쯔루미 산에서 돌아볼 걸 다 돌아본 우리는 천천히 벳부로 향했다. 유후인에서 늦게 출발해서 그런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숙소에 체크인 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벳부에 있는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였다. 벌써 두 끼나 먹어서 익숙해질 법도 한데, 가이세키 요리의 비주얼과 맛은 항상 감탄을 자아낸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작은 도시여서 그런지 몰라도 해는 빨리 저물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하늘은 벌써 어두컴컴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하루를 끝내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역할이었다. 사실 아버지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그냥 여행지를 정처 없이 돌아만 다녀도 행복해하시는 분이셨다. (내가 어머니의 정신적인 부분들을 많이 계승한 것 같다) 결국 목적지를 정해야 한다면 선택은 동생의 몫이었다. 다행히 동생은 일본 여행에 꽤 조예가 있는 사람이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Round 1'에 가자고 했다. 동생 말로는 종합 레크리에이션 센터라고 했다. 오락실도 있고, 볼링장도 있고, 각종 엔터테인먼트 시설들이 밀집된 복합 센터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케이드 게임의 본고장인 일본을 게임 기획자 지망생인 내가 마다할 리가 없었다. 부모님들 역시 찬성하셨고, 우리는 그 길로 Round 1으로 향했다.
밤에 올라가서 야경을 봤으면 참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벳부 타워를 지나 Round 1에 도착했다. 그다음부터는 사진이고 뭐고 없었다. 가족들끼리 오락기기, 빠칭코, 볼링을 즐기느라 정신없었다. 천국 같은 시간들이었다. 꿈에만 그리던 일본에만 존재하는 아케이드 오락기기를 즐길 수 있었다. 빠칭코 게임을 이런 식으로도 설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볼링을 매우 잘 치신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신명 나게 놀고 나니 벌써 저녁 9시가 가까워졌다.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하루의 마무리를 향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바로 온천이었다.
확실히 도심 한가운데에 있어서 그런지 유후인에서의 감성을 기대할 순 없었다. 하지만 이 온천은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다. 대만에서도 그렇고 노천탕에서는 항상 저 먼 산을 바라봤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벳부 타워와 다른 빌딩들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 셈이다. 어울리지 않는 두 조합을 보는 건 불쾌함을 유발하지 않는 이상 신선하다. 그리고 신선한 건 결국 재밌다. 유후인에서의 노천은 무릉도원에서 신선놀음을 하는 것이었다면, 벳부에서의 노천은 도심에서 신선놀음을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도시 속에서 그러니까 여유로움이 배로 느껴져서 좋았던 점도 있었던 것 같다.
항구 도시의 밤이 점점 깊어지고, 온천의 열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가족들 역시 나른해졌으며 어제보다 더욱 일찍 잠에 들 수 있었다. 벳부에서의 첫 반나절이었다.
유후인에서는 새소리가 우리를 깨웠다면, 벳부에서는 차들의 경적소리가 우리를 깨웠다. 온돌식 방에서 경적 소리를 들으며 깨어난다는 건 생각보다 희귀한 경험이었다. 깨어난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방으로 아침 가이세키 요리가 들어왔다. 아침인 만큼 단촐한 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건 이제 더 이상 안 써도 될 내용 같다.
오전에는 나름 벳부의 랜드마크인 지옥 온천을 돌기로 했다. 말만 들어서는 되게 무시무시한 장소처럼 들리는 곳이다. 물론 호기심에 검색을 해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가족 여행에서의 나는 철저하게 게으른 사람이다.
지옥 온천 근처에 도착했을 때, 매우 진귀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게 벳부를 특별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벳부 도시 곳곳에는 항상 연기가 피어오른다. 모를 때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지옥 온천 근처에 와서 이를 바라보니, 확실히 도시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불이 났나, 아니면 뭐 굴뚝에서 뭘 태우나 싶었다. 하지만 묘하게 익숙한 유황 냄새가 나자, 그때야 비로소 저 연기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흡사 재난이 벌어진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보통 이런 풍경에는 경적소리, 비명소리,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동반되어야 하는데, 벳부의 오전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어젯밤부터 시작해서 벳부는 묘하게 신선함을 주는 도시인 것 같다. 풍경 자체의 신선 함이라기보다는, 벳부가 품고 있는 수많은 것들의 조합 때문에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위치적으로도, 규모로도 특수한 강점을 지니기 힘든 벳부가 여태까지 관광지로 생존해온 방식이 아니었을까?
정확한 명칭인 가마도 지옥 온천에 들어가니, 왜 이름이 이렇게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름을 매우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온천들이 박물관처럼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 말이 온천이지 실제 여기서 온천을 즐기려고 한다면 바로 생을 마감해야 할 것이다. 들어가기만 해도 온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모습의 온천이 무시무시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특히나 붉은빛이 맴도는 곳은 진짜 지옥에나 있을법한 불탕처럼 보였다.
가마도 지옥 온천을 다 돌아보고 나니, 벳부에서는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그렇다고 이 지역에서 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면 벳부는 진작 관광지로써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벳부에서 차를 몰아 인근에 있는 아소산으로 향했다.
아소산은 침묵으로 가득한 장소였다. 시기는 분명 2월로 겨울이었는데, 아소산만 가을의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가을의 정취란 알록달록한 단풍잎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쓸쓸함이다. 마치 혼자서 고독하게 세월을 맞이하고 있는 그런 존재처럼 느껴졌다. 어딜 가나 침묵만이 가득했다. 분명 차를 타고 능선을 올라가며 수없이 많은 차들을 마주쳤다. 우리처럼 중간에 내려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쥐어짜 내도, 그곳에서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마치 사람들이 내는 모든 소리를 아소산의 고독함이 집어삼켜서 침묵 상태로 만드는 기분이다. 분위기로 치자면 안개에 덮인 아침의 긴린코 호수랑 비슷했다.
이 산이 활화산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니까 그 고요함이 납득이 됐다. 오랜 시간 전부터 존재해왔고, 여전히 그 열기를 내뿜고 있는 산이었다. 살아 숨 쉬는 와중에 산 아래 공간들은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 아마 아소산은 긴 시간 동안 인근 지역의 변화를 계속 지켜봐 왔을 것이다.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다. 모든 것들이 변해가는 와중에 홀로 그 자리에서 지켜만 보고 있는다는 건 외롭다. 그 외로움이 축적되면서 침묵으로 변한 것이다. 고작 몇십 년 살다가 사라지는 존재들의 소음 따위는 잠식시켜 버리는 그런 거대한 침묵.
사진으로는 많이 남겨놓지 못했지만, 우리는 아소산 활화산 박물관에 가서 아소산의 역사를 쭉 훑어보고 나왔다. 그러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아소산에 올라온 뒤로는 시간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세상과는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기이하고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이 여행에 기여를 한 순간이 찾아왔다. 바로 아소팜 빌리지다. 사실 기여라기보다는 사진 찍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아소산 인근에는 아소팜 빌리지라는 곳이 있다. 어떻게 보면 호텔이다. 다만 이게 생긴 것이 스머프 마을을 연상시켜서 꽤 예쁘기로 소문난 곳이다. 마치 스머프 마을의 주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런 장소라고 알려져 있다. 다만 조금 슬픈 소식 역시 존재한다.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만 해도 거의 망해가는 곳이라고 했다. 이렇게나 예쁘고 아름다운 곳이 왜 망해갈까? 답은 아소팜 빌리지에 도착한 뒤 자연스레 알게 됐다.
역시나 아소팜 빌리지의 모습은 듣던 대로 매우 아름다웠다. 이글루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아기자기함을 선사했고, 지붕마다 색도 달라서 그런지 멀리서 보면 알록달록했다. 하지만 너무 명확한 단점이 있었다. 접근성이었다. 자가용이 없으면 도저히 찾아올 수 없을 정도로 접근성이 안 좋았다. 대중교통을 타면 필시 한 번 정도는 환승이 필요할 수준이었고, 그 마저도 길을 뺑뺑 돌아서 시간이 엄청나게 소요될 것 같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근처에 딱히 매력적인 관광지가 없었다. 범위를 조금 넓힌다면 당연히 유후인도 있고, 구마모토도 있고, 벳부도 있다. 다만 그 범위가 너무 넓었다. 다시 말하면 어중간했다. 어느 한 곳에도 치우치지 않으려다가 어느 한 곳에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정리하자면 접근성도 안 좋고, 주변 관광지 역시 부족했다. 그에 비해 건설에 들인 부지와 시설의 규모는 너무 컸다. 쉽게 말해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넓은 곳에 사람이 우리 가족밖에 없다는 것부터가 이미 말 다했다. 거짓말 안 치고 수천수만 평은 될 거 같은 이곳에서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마을 사이를 걸으면서 창을 통해 방 안을 봤더니 또 한 가지 단점이 발견됐다. 화장실 역시 매우 좁았다. 그리고 마을에서 외곽에 떨어진 투숙객은 편의 시설에 가기 위해 무려 15분이 넘는 시간을 걸어야만 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여전히 투숙객은 받고 있었지만, 나라면 절대로 이곳에서 잠들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나라면 고민을 조금 해볼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넓은 공간에서 홀로 밤을 보내는 것을 달가워할 사람이 많을까. 조금은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지금 검색을 해보니 아소팜 빌리지 관련 최신 인기글은 2018년에 머물러있다...)
물론, 여태까지는 숙소로써 아소팜 빌리지를 얘기한 것이다. 관광지로 생각해 봤을 때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아주 매력적이었던 장소다. 이건 아소팜 빌리지가 풍기는 분위기가 맥락에 잘 맞아떨어져서 그랬던 것도 있다. 안개에 뒤덮인 산, 아직 살아 숨 쉬는 화산, 다른 공간에 있는 것만 같은 신비로움, 그리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대한 집터. 완벽한 스토리가 짜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과거 모종의 화산 활동으로 인해 수 천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실종된 마을. 어디서 많이 본 뻔한 클리셰지만, 직접 그 공간에서 클리셰를 맛보면 느낌이 다르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 혹은 라라 크로프트처럼 탐험가가 되어 유적지를 탐사하러 온 기분이었다.
아소팜 빌리지를 다 돌고 나니 벌써 오후 5~6시 사이가 됐다. 이제 다시 벳부로 돌아가서 마지막 가이세키 요리를 먹고 한국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다시 벳부로 돌아오는 길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했다. 마치 이곳을 지금 떠나 안개로 뒤덮인 산을 빠져나가면,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다시는 못 돌아오는 장소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산을 빠져나 갈 때쯤, 나는 차 뒤에서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이 여행이 우리 가족의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로 떠나고 싶다. 이제는 내가 그럴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됐으니까. 다만 코로나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다. 혼자 가는 여행을 못 가는 것도 아쉽지만, 이제야 나도 부모님을 해외여행 보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됐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아쉽다. 우리 가족들이 더더욱 바빠져서 시간도 내기 힘들어지기 전에, 얼른 코로나가 끝나서 그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그때는 내가 차를 몰고 부모님이 뒤에서 경치를 즐기는 그런 여행이 되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