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후쿠오카 2019
직장인에게 해외여행이란 그림 속의 떡과 같은 존재다. 업종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속한 게임 업계는 신혼여행이 아닌 이상 휴가를 길게 쓰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기에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 것이 매우 힘든 환경에 속한다. 항상 계획만 세우고, 입맛을 쩝쩝 다시는 게 일상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해외로 떠나고 싶어서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이 있다. 2019년 3월의 내가 그랬다.
어떻게든 해외에 가고 싶어서 스카이스캐너를 탐색하던 와중, 아는 형이 후쿠오카에 당일치기로 다녀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듣는 순간 나도 그 행각에 동참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다. 사실 해외를 당일치기로 다녀온다는 발생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후쿠오카라는 곳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니, 충분히 가능했다. 단순히 그 발상 때문에 생각 자체를 못 했던 것이지, 후쿠오카는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매우 합리적인 곳이었다.
우선 비용이 그렇게 많이 안 든다. 보통 해외여행을 떠올리면 고액의 비용이 수반되는 걸로 생각한다. 이건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 그게 당일치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용 중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숙박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항공권 역시 후쿠오카 및 일본 한정으로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비수기에 시간만 잘 맞추면 왕복 10만원 언저리에 항공권 구매가 가능하다. 즉, 3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해외여행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물론 30만원이라는 돈 자체는 당일치기 치고는 높은 금액이지만, 해외에 나가서 놀다 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또한 후쿠오카는 길어봤자 1박 2일이 최대다. 물론 이건 내 무지에서 나오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생각보다 할 게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기에 조금만 일정을 압축하고 버릴 걸 버리면 하루 만에 도시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위 근거들을 나열하고 나니, 후쿠오카 당일치기를 안 다녀올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길로 바로 항공권을 예매했고 그 날에 연차 계획을 올렸다. 그리고 내 선택은 절대로 잘못되지 않았다. 내 인생 최고의 당일치기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래도 식사 시간 아닐까? 여행지마다 호불호는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지만, 음식에 있어서는 나는 일본 음식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장인정신, 훌륭한 맛, 거북하지 않은 마무리, 등등 음식 먹을 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렇기에 이번 후쿠오카 당일치기에서 내 목표는 최대한 많이 먹는 것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후쿠오카에서 최대한 많이 먹기 위해 1주일 전부터 준비를 했다. 위를 늘리기 위해서 하루에 네 끼씩 먹었고, 운동 역시 기존보다 2배로 양을 늘려서 신진대사량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1주일 정도 이렇게 적응시키면 위가 충분히 커져서 후쿠오카에서도 많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살이 찌는 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어차피 찔 살도 없다. 아무튼 내 가상한 노력 끝에, 위의 크기가 어느 정도 커진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제는 후쿠오카에 가서 먹부림만 하면 모든 것이 완벽했다.
첫 번째 목표인 아침 식사는 원래 멘타이쥬였다. 명란 덮밥으로 유명하고, 아마 후쿠오카 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맛집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 곳이다. 하지만 주변에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해주는 말은 한결같았다. 다들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고 가라고 했다. 그만큼 유명해서 대기 시간이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플랜 B가 필요했다. 아침 6시 비행기를 타서 7시 조금 넘어 후쿠오카에 도착한 뒤, 바로 멘타이쥬로 향했다. 하지만 식당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바로 플랜 B로 전환했다. 대기 시간이 자그마치 한 시간 반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줄을 선 사람들의 수를 세어봤더니 대략 150명이 아침부터 멘타이쥬를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만약 1박 2일짜리였으면 다른 곳에 들렸다가 천천히 다시 왔겠지만, 이건 시간이 매우 중요한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고작 아침 하나 먹자고 한 시간 반을 여기에 투자할 순 없었다. 나는 근처에 있는 '야요이켄'이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로컬 맛집은 아니고 체인점인데, 그래도 신뢰도 높고 일본 사람들이 자주 찾는 가정식 식당이다. 뭐니 뭐니 해도 아침은 집에서 먹고 가는 게 당연한 내게, 가정식 식당에서 일본식 아침을 먹는 건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일본 음식은 최고다!'라는 인식이 박혀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야요이켄에서 먹은 계란말이와 가정식 백반은 일품이었다. 체인점 치고는 완벽한 간에 적당한 양, 그리고 일본의 정취가 맞물려 아침부터 벌써 기분이 너무 좋았다. 먹으면서 속으로 '이거지, 이거지'를 거짓말 안 치고 수십 번을 외쳤던 것 같다. 그제야 내가 해외로 여행을 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난 것도 있다. 원래 해외여행은 가기 직전이랑 도착한 직후가 가장 들뜨는 법이다.
밥을 먹었으니 다음에 올 건 당연히 디저트였다. 후쿠오카에 간다고 하니까 회사 동료분이 추천해준 카페가 있다. 사실 로컬 카페 같은 느낌은 아니고 체인점이긴 했지만, 오히려 체인점이기에 일본의 대중적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추천해주신 메뉴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일본식 팬케이크였다. 일본식 제과제빵이 맛있다는 건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사실이다. 고즈넉한 탁자에 앉아 따뜻하게 덥힌 우유와 팬케이크를 먹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후쿠오카의 '호시노 커피'에 들어가서 팬케이크와 따듯한 우유를 마시니 입안이 녹아버릴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각자 개인 탁자를 잡아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카페에 가면 반 이상이 무언가를 공부하고 있다. 신문 보는 것도 어떻게 보면 공부의 일종이겠지만,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았다.
아침 식사에 이어서 디저트까지 먹고 나니 배가 꽉 찬 느낌이었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사서 마신 뒤, 조금 걷기로 했다. 이미 걸을 산책 코스는 정해둔 상태였다. 바로 '오호리 공원'이었다. 유명하다고 하기에는 살짝 스케일이 작은 편이지만, 그래도 후쿠오카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 공원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나는 후쿠오카가 처음은 아니다. 가족끼리 유후인에 여행을 온 적이 있는데, 다른 여행객들에게도 그렇듯 다들 후쿠오카 공항을 거쳐서 유후인으로 가는 편이다. 우리 가족 역시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서 차를 렌트해 유후인으로 갔는데, 한 시간 정도 도시에서 머문 적이 있다. 그래서 들른 적은 있지만 그 도시를 제대로 안다고 하기에는 힘들었다. 오히려 이렇게 삶들이 많이 찾는 공원에 오니, 진짜로 이 도시를 알아간다는 느낌이 컸다. 맛집이나 카페도 좋지만, 결국 여기 사는 사람들이 함께 웃으면서 걷는 이 거리를 걸어야 그 도시와 하나가 된다고 느낀다.
내가 오호리 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12시에서 1시 사이였다. 이 시간은 국적에 상관없이 지구 상 모든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는 시간이다. 마침 근처에 회사들이 많아서 그런지, 목에 사원증을 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공원을 거닐고 있었다. 함께 점심을 먹고 가볍게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아, 사람 사는 게 역시나 다 똑같구나. 특히나 같은 동양 문화권에 생김새도 크게 안 달라서 더욱 정감 가는 모습이었다. 물론, 정감 가는 동시에 끔찍한 풍경이기도 했다. 오늘 하루가 지나면 나 역시 저들처럼 회사 생활을 하는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기 좋았다. 각자 회사 생활의 고충이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들의 얼굴에서는 휴식과 편안함이 돋보였다.
이상하게 이 공원을 거닐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장소에 대한 사랑보다는, 낯선 이들에 대한 인류애적인 사랑이랄까? 내가 지금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서, 마음이 그만큼 넓어져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날씨가 좋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공원을 걸으며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는 것이다. 아들 딸과 산책을 나온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사랑을 느꼈고, 노쇠하신 부모를 이끌고 나온 중년의 사람들을 보며 사랑을 느꼈고, 사이좋게 사원들끼리 웃으며 걷는 모습을 보며 사랑을 느꼈고, 반려동물을 산책시키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사랑을 느꼈다. 사방이 사랑이었다. 마침표를 찍었던 건 한적한 공간에서 기타를 치며 버스킹을 하는 젊은 사람이었다. 예쁜 하늘 아래 공원에서 예술을 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사람이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이날 처음 알게 됐다. 항상 이런 넓은 가슴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삶이 참 행복할 텐데.
공원을 조금 걷다 보니 아침에 먹었던 음식들이 살짝 소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원 걸어봤자 얼마나 걸었다고 그 음식들이 소화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단련된 위, 소화제, 그리고 산책은 그걸 가능하게 했다.
우엉이라는 음식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우엉, 나에게 있어서는 김밥에 들어가는 음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다. 우엉을 따로 먹는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오히려 요즘은 김밥에 우엉이 들어있으면 빼서 먹기도 한다. 그 정도로 별로 추구하지 않는 음식이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우엉을 도전하게 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후쿠오카의 우엉 튀김 우동이었다.
후쿠오카만의 명물인지, 일본에서 맛있게 잘하는 음식인지는 모른다. 다만 후쿠오카 맛집을 검색했을 때 항상 눈에 보이는 키워드였기 때문에 빼놓을 수가 없었다. 남들이 좋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비록 우엉이라는 재료가 심히 신경 쓰였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경험과 그 명성을 믿어 보기로 했다.
현대화된 도시에서 여행을 한다는 건 참 편한 일이다. 내가 간 우동집은 무인 키오스크가 있어서 번거롭게 말로 주문을 안 해도, 원하는 메뉴를 고르고 대기표만 뽑아놓으면 서빙하시는 분이 알아서 내가 시킨 메뉴를 내 자리에 가져다주신다. 물론 직접 주문하는 게 부끄럽다거나 불편한 건 아니다. 나름 여행 베테랑인 내가, 심지어 일어를 할 줄 아는 내가 그럴 리가 없다. 그래도 당일치기 여행에서, 그것도 힐링하기 위한 여행에서 이런 소소한 편의성은 여행의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더해준다.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 말이 있다. 신발도 맛있는데 우엉이 맛이 없을 리가 없었다. 질 좋은 밀가루로 튀긴 우엉은 식감이랑 맛 모두 잡았으며, 이 튀김을 우동 국물에 얹어서 면과 함께 먹으면 그 풍미는 더 짙어졌다. 이게 내가 알던 우엉이 맞나 싶을 정도의 맛이었다. 면발 역시 한국에서 먹던 것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기분 탓이려나? 뭔가 덜 짜고, 더 깊고, 더 감질나는 그런 국물이 미각을 자극해 계속 면을 들이켜게 만들었다. 나 말고도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많았고, 급기야 내 옆자리에는 혼자 온 걸로 보이는 한국인 여행객이 앉게 됐다. 물론 나는 내색은 안 했다. 그저 혼자 이 맛집을 찾아온 분에게 동질감을 느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싹 비운 그릇을 남긴 채 식당을 떠났다.
아까도 잠시 언급했지만, 유후인에 가기 위해 가족끼리 후쿠오카를 방문한 적이 있다. 잠시 머무는 한 시간 동안 가족끼리 간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모모치 해변이다. 마침 유후인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잠시 내렸다가 걸은 기억이 있는 곳이다. 사실 한 번 가본 곳은 절대로 여행지로 삼지 않는다는 모토가 있다. 인생은 짧고 갈 곳은 많기 때문에 결단한 신조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이 신념을 어겨보기로 했다. 가족과 함께 가는 거랑 혼자 가는 거랑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다. 더 나아가, 어차피 또다시 배를 꺼트려야 했고 이제 후쿠오카에서 산책을 할 공간이 모모치 해변 말고는 남아있지 않았다. 저녁 9시 비행기인 걸 감안하면 너무 멀리 갈 수도 없었다.
확실히 혼자 가니까, 내가 가족이랑 갔을 때 느꼈던 그 부산스러움이 전혀 없었다. 당시에는 분명 사람들도 많고 관광지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에는 쓸쓸하고 외로운 기분까지 들었다. 그때보다 사람이 없는 것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혼자 오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을 그리워하게 되고, 혼자 왔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만끽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오히려 근처에 뭐가 있는지 더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변한 건 없었다. 오히려 변한 건 나였다. 2년이라는 긴 시간, 그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뭐가 다를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변화해 왔을까. 그때 원하던 2년 뒤 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고 있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적막한 해변에 차분히 몰아치는 파도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파도가 한 여든 번 몰아쳤을 무렵,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났다. 이런 생각이 나쁜 건 아닌데, 그냥 오늘만큼은 이런 성찰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쉬러 온 여행이다. 그것도 당일치기로. 그래도 이것 하나만큼은 말할 수 있다. 이 시기로부터 2년이 지난,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저 당시 내가 원하던 내 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제 후쿠오카 일정은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캐널 시티라는 종합 몰을 쭉 둘러본 뒤, 유명한 장어 덮밥을 먹고 공항으로 가는 것이다. 사실 캐널 시티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도 안 됐지만, 나름 유명한 곳이니 한 번 찍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혹시라도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충동구매할 요량도 있었다. 그리고 장어 덮밥 집도 캐널 시티랑 그렇게 멀지는 않아서 걸어가도 될 정도 거리라는 점 역시 한몫했다.
캐널 시티를 거닐며 들었던 생각은 딱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건물 내부 구조가 많이 예쁘다는 것이다. 마치 이천이나 하남에 있는 프리미엄 아웃렛을 방문한 느낌이다. 단순히 백화점이나 종합 몰을 넘어서서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제공하고 싶어 한다는 의도가 확연히 느껴졌다. 두 번째는 여기 오기만 해도 하루짜리 데이트 코스가 완성되겠다는 생각이다. 매번 특별한 데이트를 하느라 지칠 때, 하루 정도는 캐널 시티에서 만난다면 훌륭한 코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쇼핑할 곳도 많고, 맛있는 식당들도 많고, 카페도 많고, 구경할 거리도 많았다. 힘들 땐 건물 중앙에 비치된 분수를 보며 잠시 쉼을 가질 수도 있었다. 이 지역 젊은 사람들에게 많이 사랑받는 곳이라는 걸 확신했고, 캐널 시티에 있는 사람들의 연령대 분포를 보니 이는 실제 그런 걸로 드러났다.
캐널 시티를 걷고 나서, 근처에 있는 '요시즈카 우나기야'라는 장어 덮밥 집으로 향했다. 후쿠오카 장어 덮밥 맛집을 치면 단연 5위 안에 항상 언급되는 곳이다. 원래는 예약도 해야 하고 사람도 붐비는 곳이라 들었는데, 내가 간 시기가 워낙 비수기라 그런지 들어가자마자 웨이팅 없이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식사였다.
생각보다 화려한 플레이팅은 아니었다. 솔직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장어 덮밥처럼 보였다. 아마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은 조금 실망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맛은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맛보다는 그 식감과 부드러움에 감탄했다. 아무래도 장어 덮밥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면, 간간히 씹히는 뼈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한 입 씹고 뼈를 발라내고, 한 입 씹고 또 뼈를 발라내는 과정이 종종 있다. 설령 뼈가 없다 하더라도 생생한 장어가 아니라 그저 상품용으로 만들어진 장어와 밥과 간장을 비벼서 먹는다는 느낌이 대다수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갓 구운 듯한 장어, 간장, 그리고 뽀송뽀송한 밥이 하나가 되어 씹는 순간부터 목 넘김까지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뼈 따위는 없었으며, 장어에서 흘러나온 육즙 역시 밥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서 간장밥 이상의 맛을 냈다. 역시 본토는 다르긴 다르다. 너무 맛있게 먹었던 걸까? 기분 탓이겠지만 벌써부터 장어의 활력이 몸 안에 감도는 기분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식사였지만, 오늘 하루 먹었던 것들 중에서 가장 맛있고 활기를 돋아나게 해주는 그런 식사였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한 숟갈을 내려놓는 순간 '아 배부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간의 특훈이 꽃을 피웠고, 마지막 식사를 마치자마자 배가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기분 좋은 마무리였다.
밥을 먹고 나오니 슬슬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노을을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비행기를 못 타고 일본에 남겨질 게 뻔했다. 일본을 다녀와본 친구들 말로는, 후쿠오카의 도시 노을이 그렇게 예쁘다는데 그걸 못 보는 게 통탄스러울 뿐이었다. (내 글을 자주 본 사람들은 이제 알겠지만, 여행지에서 노을 보는 건 나의 필수 코스다). 평화로운 후쿠오카의 저녁길을 걸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안에서 흑당 커피를 마시는 것 역시 빼먹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일본에서 먹어야 할 음식을 놓치지 않는 나였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시원한 흑당 커피를 마시니, 오늘 하루 종일 걸어 다닌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조금 우울할 수도 있는 시간을 이 커피가 달달하게 만들어줬다. 이제 12시간 뒤면 회사로 출근하고 있을 나 자신을 떠올리니 참 신기했다. 난 이렇게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에 있는데, 12시간 뒤에는 회사로 향하는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있을 거라 상상하니 뭔가 재밌으면서도 이상했다. 그래도 이렇게 재밌다는 생각을 했던 걸로 봐서는, 이날 하루를 정말 알차고 즐겁게 보낸 것 같아서 매우 흡족스러웠다.
남들은 일본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고 하면 한결같은 반응을 보인다. 돈이 썩어 넘쳐나냐. 그게 재밌냐. 썩어 넘쳐나지는 않지만 막상 그렇게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재밌다. 미칠 듯이 재밌다. 더 나아가, 당일치기로 해외여행을 왔다는 사실 자체가 흔히 말하는 'FLEX' 했다는 느낌을 줘서 여행을 더 운치 있게 만들어준다. 지치고 고된 일상 속에 이런 특별한 이벤트가 들어가면 그 전후의 삶이 조금이나마 윤택해진다. 후쿠오카는 내게 있어 그런 추억을 선사해준 감사한 여행지다. 아마 이제 다시는 갈 일이 없겠지만, 갈 일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후쿠오카는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당일치기 해외여행으로 그 입지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것이다.
하루 정도 일탈하며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한다. 코로나가 끝나고, 바쁜 시간 속에 하루정도 힐링을 원한다면 당장 후쿠오카 왕복 비행기표를 예매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