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유후인 ~ 벳부 2017 (1)
가족과 함께 떠난 두 번째 해외여행은 내게 일본의 감성을 일깨워줬다. 우선 이 여행에서 일본의 음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맛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전에 오키나와를 갔지만, 오키나와는 사실상 행정 구역상으로만 일본이지 고유의 섬나라나 다름없었다. 본토 유후인과 벳부에서 먹은 가이세키 요리야 말로 일본식 요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여덟 끼를 가이세키 요리로 먹은 나는 일본의 음식 문화에 깊이 매료되어 버렸다.
또 하나, 산을 바라보며 노천욕을 즐기는 것이 운치 중에 운치라는 것도 알게 됐다. 료칸에서 노천을 즐기며 저 멀리 보이는 안개 쌓인 산맥을 구경하는 건 신선놀음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노천을 즐기는 건 대만에서 이미 겪은 것이지만, 일본의 료칸에서 즐기는 건 대만의 천탕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 여행은 나의 후쿠오카 당일치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거나 다름없는 여행이었다.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해서 렌터카를 받은 뒤, 우리 가족은 모모치 해변에서 한 시간 정도를 보내다가 바로 유후인으로 넘어갔다. 오키나와에서 일본의 운전 방식에 익숙해지신 아버지는 전보다 더 능숙하게 능선을 타고 차를 몰았다.
산 중턱에 있는 휴게소에서 잠시 쉰 후, 몇 시간을 더 달려 드디어 유후인에 있는 료칸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 역시 전적으로 어머니가 처음부터 끝까지 구성해놓으신 여행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이 료칸이 어느 료칸인지, 유후인 어디에 있는지 단 하나도 몰랐다. 생각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건 나름대로 가족 여행의 묘미 중 하나다. 부모님이 정해놓으신 코스를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물론 내가 점점 여행 베테랑이 되어가자, 최근 2~3년간의 가족 여행은 다 내가 짰던 것 같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할 건 바로 밥을 먹는 것이었다. 뉘앙스가 꼭 해야 할 일정처럼 느껴졌다면 그게 맞다. 료칸에서는 보통 가이세키 요리를 인원에 맞게 예약한다. 꽤 고가의 코스 요리기 때문에 거의 예약제만 받으며, 그래서 시간 엄수가 매우 중요하다. 처음에는 뭐 별 거 있겠나 싶은 생각이었다. 일본 음식 중 대다수는 서울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며, 서울에서 나름 이름 있는 곳은 일본보다도 맛있을 거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 앞에 대령된 가이세키 요리를 마주한 순간,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딱 봐도 식재료 단계에서부터 고르고 골랐다는 느낌들의 음식들이 상에 올라와있었다. 가끔 그런 음식들이 있다. 밑반찬 같아 보이는데 그 하나하나의 질이 수준급으로 보이는 음식들이다. 가이세키 요리에 올라온 구성품들이 전부 그러했다. 이미 익숙한 사사미, 계란말이, 튀김, 초밥 등등도 있었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요리들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먹어보지 않아도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였다. 어떻게 모든 음식들이 입에서 살살 녹을 수가 있는지, 가히 환상적이라는 말밖에 나오질 않았다. 간은 수 천 번의 연습 끝에 맞춘 것처럼 완벽했다. 호불호가 있을 수 없는 맛이었다. 적어도 내 상식 선에서는 그렇게 장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먹은 뒤에 거북함이 전혀 없었다. 보통 음식을 먹고 나면 아주 조금이라도 음식이 위에 얹혀있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가이세키 요리에는 그런 게 없었다. 깔끔했다. 맨날 이런 음식만 먹는다면 식곤증 따위는 저 세상 이야기일 것 같았다.
요리를 다 먹고 나니 시간이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사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걸으러 료칸 밖으로 향했다. 산속 마을이라 그런지 벌써부터 해가 져서 하늘이 깜깜했다. 간혹 건물 속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이 아니면 앞을 제대로 못 볼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사실 어머니가 하도 보채서 가족이 다 같이 나온 거라,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걸을 뿐이었다.
누가 그랬는가.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중간은 간다고. 어두운 밤에 깊이 잠긴 긴린코 호수는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야밤에 수 십 명은 되어 보이는 관광객들이 긴린코 호수 근처에 모여서 밤의 호수를 감상하고 있었다. 이미 유명한 관광 포인 트였나 보다. 가장 예뻤던 건, 밤인데도 불구하고 호수 아래 비친 건물이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있는 모습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 광경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아직도 의문이지만, 이때 내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른 정체불명의 3~40명들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그 시간에 그 자리에서 나와 같은 광경을 보던 사람들이었을까?
가이세키 요리를 다 소화시키고, 긴린코 호수도 다 감상하고 난 다음에는 료칸으로 돌아와서 노천욕을 즐겼다. 유카타를 입고 그 위에 가운을 걸친 뒤 노천을 하러 가는 길이, 어딘지 모르게 애니메이션 한 장면 같아서 설렜던 기억이 난다. 살이 타들어갈 것 같은 뜨거운 물 온도 때문에 그 설렘은 금방 날아갔다. 하지만 산속에서 찬 공기를 맞으며 뜨거운 물에 몸을 적시자, 몸이 그렇게 나른해질 수가 없었다. 여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에어컨을 튼 느낌과 같은 의미의 그런 편안함이었다. 우리 가족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어서 차마 물에 들어간 뒤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 멀리 보이는 산 아래 작은 불빛들도, 하늘 위에 떠 있는 달도 찍고 싶었지만 그저 눈에 담으며 노천을 즐겼다.
온천수에 녹아있는 성분들이 내 몸에 있는 수 천 개의 구멍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노천을 끝마치고 거울을 보니 피부가 아기 피부처럼 뽀송뽀송해져 있는 것 같았다. 적당히 붉은 생기 역시 양볼에 가득했다. 매일매일 이렇게 산다면 피부 미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시 유카타를 입고 방에 들어오니 졸음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비행기 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고, 찬 공기 아래 뜨거운 노천을 즐겼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벌써부터 만족스러운 반나절에 감사하며, 우리 가족은 다음 날을 위해 눈을 감았다.
새들의 지저귐과 함께 아침을 맞이한 건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온돌식 방에서 가족들과 다 함께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까 마치 어린 시절, 명절 때 할머니 댁에서 가족끼리 잠에서 깨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푹신푹신한 이불에 묻혀서 뒤척이니, 이불의 보드라운 감촉이 생살과 맞닿으며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가족들과 다 함께 이런 식으로 따스한 아침을 맞이한 게 얼마만인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도 정말 즐겁고 기쁜 일만 가득할 것 같았다.
가족들이 한창 준비를 하는 와중, 나는 서둘러 어제 온천을 즐겼던 옥상으로 올라갔다. 꼭 찍고 싶은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찍는 시간으로 아침을 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 시간에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온천을 즐기는 곳에서 함부로 사진을 찍기란 불가능했다. 나밖에 없을 때 위에 보이는 배경으로 온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자욱한 안개 너머로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 끝이 보이지 않는 능선들. 그리고 뜨거운 온천에서 미세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내가 원하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마치 RPG 게임에서 몽환적인 동양풍 온천 마을에 온 느낌이었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이 광경이 자아내는 분위기를 완벽히 표현할 수 없었다. 감히 장담컨데, 위 사진을 보면 그 누구라도 일본에 와서 료칸을 즐기고 싶을 것이다. 그런 사진을 찍고 싶었다.
사진을 찍고 내려오니 방 안에는 이미 일하시는 분들이 차려놓은 아침 가이세키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당연히 저녁보다는 조금 덜 풍성했지만, 아침잠을 깨움과 동시에 입을 즐겁게 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치는 그런 요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유달리 달면서도 고소한 일본식 쌀밥을 먹으니 잠이 싹 가셨다. 품종은 다르지만 밥은 밥이었다. 밥을 먹어야 아침잠이 깨는 한국인에게 아주 안성맞춤인 구성이었다.
아침도 먹고 준비를 마친 우리는 다시 긴린코 호수로 향했다. 어젯밤에 갔지만, 그건 사실상 호수를 봤다기보다는 호수에 비친 밤하늘을 봤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긴린코 호수의 정수는 아침에 있다고 한다. 일단 여태까지는 어머니가 짠 코스가 매우 만족스러웠으니 한껏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긴린코 호수로 향했다.
확실히, 왜 긴린코 호수가 아침에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물안개로 가득한 긴린코 호수에 오니,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하늘에 떠 있는 태양마저 희미해졌고, 사방이 안개로 둘러쌓여서 호수 반대편은 물과 숲의 경계선이 안 보일 정도였다. 나름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이렇게 몽환적인 분위기의 장소를 방문해본 기억이 없었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환상의 숲에 온 것 같았다. 마치 이 공간 자체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일종의 장막 안에 휩싸인 듯했다.
사실 조금 무섭기도 했다. 이렇게 규모가 작고 산속에 틀어박힌 마을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지금에야 관광지로 유명해져서 항상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그러기 전에는 꽤나 무섭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는 나였다. 그만큼 사람에게 이상한 생각을 들게 하는 몽환적인 장소였다.
안개에 휩싸인 긴린코 호수를 감상하고 난 뒤, 우리 가족은 안개가 완전히 걷히기 전까지 호수 옆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 몸을 녹였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꽤 유명한 샤갈 미술관이라고 한다). 이 카페에서 꽤 유명하다는 롤 케이크로 잠시 입을 즐겁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본에서 먹는 빵은 정말 부드럽고 맛있는 것 같다. 우유의 품질 자체가 달라서 그런지 입에 넣기만 해도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그 부드러움이 황홀할 지경이다.
사실 긴린코 호수에 온 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가족끼리 카페에서 여유를 부리며 간식을 먹는 것 자체가 좋았다. 각자 너무 바쁘고, 만날 사람도 많아서 집에 있을 때는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게 참 쉽지 않다. 오히려 여행에 가서야 이렇게 단란하게 모여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거 나름대로 또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그렇게 살기에 가족 여행 때 이런 시간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너무 멀리 떨어져 지내서, 여행에서 가지는 이런 시간이 어색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선을 지킬 수 있으면 됐다. 함께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선을 넘어버린다면, 그땐 정말 하염없이 슬플 것 같다.
카페에서 나오자 안개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마치 신기루를 본 듯했다. 드디어 긴린코 호수를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일말의 배신감마저 들었다. 생각보다 수심이 얕았다. 얕아도 너무 얕았다. 어젯밤에 호숫가에 비친 그 밤하늘은 무엇이며, 오늘 아침에 본 거대한 안개는 무엇이었던가. 호수의 수심은 보잘것없을 정도로 얕았다. 안개와 밤하늘보다 더 거대할 것만 같았던 호수는 민둥민둥한 밑바닥을 수치스럽게 내보이고 있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라고나 할까. 아니, 어쩌면 너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겉으로 보이는 웅장함에 속아, 그 안에 가려진 옹졸함과 보잘것없음을 못 보기도 한다. 자연도 사람도.
긴린코 호수를 떠나서 유노추보 거리로 향했다. 유노추보 거리는 유후인을 가로지르는 일종의 가로수길이다. 강남대로가 더 어울리는 단어려나? 사실상 유후인 시내에서 관광객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모여있는 종합 놀이동산 같은 공간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도 너무나도 그리워하는 햇살 가득한 거리다.
플로랄 빌리지가 유노추보 거리의 시작을 알리는 건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저 문을 본 뒤부터 유노추보 거리에서 모험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점심을 먹을 필요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길거리에서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던 것 같다. 거리 옆으로는 강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고, 사람들이 가득히 들어서서 유쾌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거리에는 행복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속을 가족들과 걸으니, 세상에 이 이상 행복한 공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쁨에 휩싸였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유노추보 같은 거리들을 수없이 걸었다. 하지만 지금 글을 쓰는 시점에 다시 생각해봐도, 이토록 행복에 겨워서 걸었던 거리는 유노추보만한 곳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 향수 아닐까 싶다. 사람은 완전히 새로운 것에서 오는 환희보다는 기억 속에 저장된 향수를 느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유노추보는 나에게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킨 걸까?
우리 가족이 대전에 살 때, 주말마다 계룡산에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 당시의 계룡산에는 어떤 행사 하나가 벌어졌다 하면, 산 초입부가 상인들과 축제 분위기로 어우러져있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디딜 때마다 번데기, 호떡, 소라, 떡볶이 등등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수 십 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유치원생인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 거리를 걸으며 군것질을 하고는 했다. 산에 놀러 온 다른 가족들 사이사이를 나의 가족들과 걸으며 그 즐거움을 만끽했다.
유노추보 거리에서의 산책은 그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걸을 당시에는 계룡산을 떠올리지 못했다. 아마 머리로는 기억 못 해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지나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도, 함께 있던 내 동생도 그 날의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나와 같은 행복에 젖어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