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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May 14. 2021

퇴사하고 3일 뒤, 나는 호주에 있었다

#0. 호주를 향해


금요일에 퇴사, 월요일에 호주


 2019년 11월 22일. 나는 아마 이 날을 평생 기억할 것이다. 내 인생 첫 퇴사 날인 것도 있지만, 금요일에 퇴사하고 월요일에 바로 여행을 떠난 조금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언뜻 들으면 즉흥적인 떠남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여행은 오히려 여태까지의 그 어떤 여행보다 계획적인 여행이었다. 퇴사를 마음먹은 9월쯤에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대충 열흘 정도로 다녀올 곳을 물색하던 중, 호주를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사실 열흘이면 호주보다는 동유럽을 가는 게 가성비 측면에서는 더 현명한 선택이다. 하지만 동유럽을 11월보다는 색채 가득한 여름이나 가을에 즐기고 싶었다. 호주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호주는 11월이 오히려 여름 날씨라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호주는 이번 기회에 가지 않는다면 거리나 가격 측면에서 쉽게 선택하기 힘든 여행지라는 점이었다. 그랬기에 11월 24일에 호주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했고, 이에 맞춰서 내 퇴사 날짜를 11월 22일로 정했다. 


 대망의 퇴사 후 여행이라 그랬던 걸까? 그 어떤 여행보다 신나고 열정적으로 계획을 짰다. 아니, 나뿐만이 아니라 내 상황에 처한 그 누구라도 나처럼 했을 것이다. 2년 가까이 몸과 영혼을 갈아 넣은 회사를 드디어 탈출하게 됐다. 그 직후에 떠나는 여행인데 그 누가 대충 준비할까. 진짜 '목숨 걸고' 즐기고 오겠다는 각오로 가득한 준비 과정이었다.


 준비하면서 큰 고민에 직면하게 됐다. 두 번 다시는 호주에 못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흘이라는 시간 안에 지나치게 많은 일정을 집어넣었다. 호주 초행길인데 시드니와 멜버른은 당연히 필수 코스였고, 거기에 골드코스트나 브리즈번을 넣으려는 이상한 발상을 했었다. 사실 못 할 건 없지만, 그렇게 된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이동 시간으로 소비될 것이 뻔했다. 무엇보다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잦은 공항 이용으로 피로도 상당할 것이 눈에 선했다. 결국 시드니와 멜버른 두 도시만 다녀오는 걸로 결론이 났다. 깔끔하게 멜버른 5일 그리고 시드니 5일로 일정을 짰다. 


 내가 이 여행에 조금 더 특별한 감정을 두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내가 그리워하는 여러 개의 도시 중 상위권을 차지하는 두 도시가 있다. 바로 타이베이와 쿠알라룸푸르다. 신기하게도 내가 예약한 항공편이 환승하러 들르는 두 공항이 모두 타이베이와 쿠알라룸푸르였다. 퇴사 후 떠나는 여행의 환승지에서 옛 여행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운명적인 여행인가. 덕분에 그 도시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공항도 엄연히 도시의 일부다)


 2019년 11월 24일 이른 새벽, 지금까지 내 인생 마지막 해외여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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