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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Soul Searcher 6시간전

퇴사 후의 성장통

소울서칭:나를 찾아서

소울서칭: 나를 찾아서 (번외) 


퇴사하고 4개월이 지났다.

2주 전부터 이상하게 무기력하고 기운이 없다. 해야 할 일은 쌓여있는데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멍하게 화면만 바라보다 랩탑을 덮었다 열었다 반복한다. 분명 퇴사를 하면 더 많아진 시간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내 시간 속에서 에너지를 이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허공에 헛발질을 하는 듯한 시간들이 점점 쌓여가는 기분이다. 


어제는 이런 내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어서 심리상담 앱을 켰다. 

오랜만에 전화 너머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였다. 퇴사 직전에 상담을 했던 선생님이다. 여느 때와 같이 밝고 미소 띤 목소리로 나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라고 여쭤보셨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저도 그냥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일단,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한국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개인 브랜딩을 위해서 많은 것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니, 시도한 것 같지만 성과가 안 나오니 자꾸 답답함이 커져가는 것 같아요. 사실 그렇게 시간은 오래되지 않아 너무 빠른 시간 내에 나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긴 하네요.

얼마 전에 혼자 인사이드아웃 2를 보러 갔거든요. 영화의 끝부분에 '불안이'가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할 것 같은 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답답함의 원인이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선생님도 인사이드아웃 2를 보셨다며 공감해 주시곤 덧붙이셨다.


"영화 인사이드아웃 2에서 불안이는 초반에 악역의 이미지로 그려져요. 부정적인 감정, 없애야 하는 감정. 그러나 사실 불안이는 라일리의 삶이 그릇되지 않도록 바로잡아 주는 역할도 하죠. 그런 측면에서 불안이 꼭 나쁜 감정은 아니에요. 영화 끝장면에도 보면 불안이를 품어줌으로써 라일리가 한 단계 성장하잖아요." 


20대 내 삶은 휘황 찬란 그 자체였다. 

전액 장학금으로 4년 학비 면제 및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해외에서 취업까지 정말 누군가는 한 번쯤 꿈꾸는 삶을 진짜로 경험했다. 10년이란 기간동안 2개국을 오가며 사는 그 삶이 나의 성공이라 여겼다. 손만 대면 모든게 다 잘됐던 시기라 여기며, 난 될놈될이구나 자만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에 나도 몰랐던 '신념'이 자라나고 있었다. 

"망하면 의지할 사람 없으니까, 계속 달려야 해!" 


망하면 = 실패에 대한 두려움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올라 인생에서 실패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 얘기를 나눴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실패 경험은 '이직'과 관련된 것이었다. 4년 전,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줄 기회가 한 번 있었다. 이력서에 그 이름이 적힌 것 만으로도 러브콜을 받을 수 있는 글로벌 기업에서 오퍼가 들어왔다. 아쉽게도 난 그 기회를 거절했고 아무도 모르는 스타트업으로 왔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두고두고 후회되는 두 번째 결정이었다.

 글로벌 기업에서의 오퍼를 거절한 이유가 무엇인지 대한 선생님은 물으셨다. 

"세계 유수의 인재들이 모인 그곳에서 잘할 수 있는 자신이 없어서 도망간 것 같아요." 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망하면 = 실패에 대한 두려움 = 도망 


내가 생각해 온 나는 도전적이고 인생에 내게 던지는 모든 장애물을 기꺼이 넘어갈 줄 아는 사람이라 여겼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난관에 부딫힐 때마다 문제를 덮어두고 다신 열어보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고 매번 어려움에 봉착할 때 마다 이직을 했고, 한 국가에서의 생활이 지겨워질 때쯤이면 또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갔다. 글로벌 기업에서 들어온 오퍼를 거절하고 내 옷에 맞는 곳이라 생각하며 스타트업으로 갔다. 그리고 최근에 또 한번 직장에서 만난 갑질상사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내가 관두고 나왔다. 


실패하는게 극도록 싫어서 실패한 나를 회피하기 위해 도전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적은 쪽을 항상 택해왔던 것이다. 충격이었다. 그저 내가 했던 과거의 모든 선택들, 그 간의 잦은 이직과 떠돌이 생활은 내가 그저 '역마살'이 강했기 때문이라 생각해 왔는데,  확실한 나의 오만이었다. 매 순간의 결정은 그때에 맞닥뜨린 실패의 가능성을 온전히 그저 회피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도전 정신이 강한 사람이야'며 스스로를 포장해 두려움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패턴을 강화해 왔던 것이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모습을 마주하고 나니 한편으론 최근에 마음속을 어지럽힌 불안의 감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워킹홀리데이에 실패하고 돌아오면 어떡하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 나이로 인해 취업이 막히면 어떡하지

-지금 이 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면 어떡하지


인지심리학에서는 '재앙화'가 있는데, 이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미래를 극단적이게 부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불안해하거나 무서워하는 것을 일컫는다. 

최근에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불안은 '실패를 마주했을 때 혼자서 자립할 수 없을 것 같은데'서 기인한 것이 분명하다. 결국 회피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생각 회로를 객관적 사실에 기반하여 다시 바라봐야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그리고 내게 '자립할 수 있는 나'에 대한 객관적 근거 3가지를 찾아보라고 말씀 주셨다. 잠시 동안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 동안의 내 신념은 긍정보단 부정의 근육을 더 키워왔다. 그래서 생각의 회로가 자꾸만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힘들게 겨우겨우 생각해 낸 두 가지는 :


-영어 뿐만아니라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언어적 강점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2년간 꾸준히 자기계발을 해온 덕택에 연차에 비해 직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요

-그리고 마지막은..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나질 않네요.


세션이 마무리되어 갈 때쯤 선생님께서 마지막 말씀을 남기셨다. 

"내담자님은 추진력이 강해요. 그런 말 들어 보셨나요?"

마지막 직장에서 퇴사하기 전에 내가 정말 존경했던 리더는 내게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다. 

'크리스티는, 일단 하고 보는 스타일이라 추진력이 정말 좋아'



불안은 종종 부정적으로 여겨지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불안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불안은 중요한 일에 집중하게 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며, 타인과의 소통을 돕는다. 불안은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를 잘 관리하면 성장의 동기가 될 수 있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결심한 후로 마음 편하게 잠에 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생각들로 일의 우선순위를 챙기지 못한 채 그저 나를 갈고 또 갈아넣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라 현재를 잘 살아갈 능력은 있어도 미래를 바꿀 전지전능함은 없다. 그저 내 앞에 주어지는 도전들을 이젠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매듭을 풀면 모든 실타래가 풀리는 것 처럼, 두려움의 매듭을 풀면 보이지 않는 미래가 와도 나는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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