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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Feb 27. 2019

여행을 하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게 이런 거였군요?

미국 4개 주를 넘나들어보니 이제야 보이는

도시를 넘나드는 정도로는 느끼지 못했던 걸 많이 느낀 여행이었다. 보통 미국을 지칭할 때 쓰는 "The States" 여행은 이번이 처음. 큰 차를 타고 큰 하늘을 가진 큰 도로를 통해 4개의 주를 넘나드는 여행. 한 번 이동했다 하면 최소 자동차로 5시간.

사람은 많지만 땅은 더 크고 자원도 훨씬 많은 동네. 한두 번 먹어볼까 말까 했던 아티초크를 쌓아서(!)  팔 질 않나 마스카포네와 모차렐라를 넘치듯 넣은 동네 식당의 깔쪼네까지. 새삼 뭔 나라가 재료가 얼마나 풍부하면.

Photo by Anwaar Ali on Unsplash

한국에는 잘 보이지 않는 있어도 존재감 없는 STOP sign과 여유로운 매너를 가진 운전자들. 고작 그 정도의 이슈에 안달복달하거나 신경 쓸 이유가 없는 사람들. 흔히들 얘기하는 외국에서 생활하면 심심하다에서 "심심"이 어쩌면 "여유"와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여유"를 불편하게 느끼게 된 건 쪼이는 환경에 내몰려왔어서 아닐까. 좁은 땅, 한정된 자원, 따내지 않으면 한없이 밑으로 추락하는... 그러다 문득, '아 이런 겁니까 제1세계라는 건?'

밤의 국도는 아무것도 없어서 저 멀리 불빛이 행성처럼 느껴진다. 내가 우주의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느낌. 2차선 쭉 뻗은 도로만이 덩그러니. 별이 우수수. 여기가 화성인지 우주인지 북극인지 어딘지 모르겠는 감. 그래 이런 땅덩어리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게 뭐 대수야'라고 생각하면서 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유타주와 애리조나주의 끝없이 펼쳐지는 황무지. 내가 디디고 있는 땅이 정말로 대륙이며 행성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5년 전쯤 미국 도시만 혼자 여행한 적이 있었다. 맘이 황량했다. 주를 넘나들며 대자연을 훑고 마지막으로 한 도시를 여행하며 되돌아보니 당연했다. 그때 내가 여행한 곳이 작은 도시였으니까. 뉴욕도 아니고. 큰 개를 산책시키고 조깅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아웃도어에 환장하고 큰 개 키우고 커뮤니티에 파티하는 건 매우 당연히 도시는 황량하니까 그래서 루틴을 채우고 밖에서 모험을 찾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삶이 단조롭지만은 않다. 하고자 한다면 차 타고 닿을 수 있는 국립공원만 해도 수두룩. 그게 하나하나 캐릭터가 또 다 달라 상상에만 존재했던 스위스였다가 고비사막이었다가 북극이었다가. 아마 그래서 풍경 장인 밥 아저씨도 나오고 영화 장인도 나오고. 새삼 속았다 싶은 게 미국 베이스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창조할 때 추상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주변에 있는 걸 풍경화 느낌으로 찍어내는 거 아닐까 싶어 졌다. 그게 우리가 말하는 창의성이고.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대학과 회사였는데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괜히 언젠간 가졌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1 세계의 삶이 그려지는 것 같아서 서글퍼졌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강렬하게 살아보고 싶어 졌다. 물론 많이 심심하겠지만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섬에서의 내가 그랬듯. 소심하게 나에게만 자꾸 파고들었던 학창 시절이 사실은 환경 때문이었던 거 아니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볼까.


이제와서(2023) 다시 보니 storm덕에 어사장3에 나오는 동네를 갔었네

여행을 끝내고 조그만 비탈길에 최대로 많은 사람을 집어넣을 수 있는 내 방으로 돌아오니 역시 제1세계였구나 싶어 졌다. 후유증이 만만찮다. 아직도 그 풍경들이 눈에 아른아른. 어느 방향으로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실로 오랜만의 기분이다. 다시는 쪼잔하거나 쪼그라들고 싶지 않다. 늘 대륙을 그리고 행성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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