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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Apr 21. 2020

재택근무를 떠나보내며

삼시 세 끼를 찍었다. 꿈을 꾸었나 보다.

처음으로 재택을 경험한 누구에게나 근 n개월은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루틴을 세우는 데 실패하고 답답해하던 잠깐의 시간을 지나 저마다의 루틴을 세웠다. 나는 운동(홈트)은 실패한 대신 요리에 성공한 8주였다. 요리는 나 스스로의 돌파구였다. 하고 싶은 것이 줄어들고 다 싫어 모드가 되지 않기 위해 잘해 먹고, 그러면서 호기심을 유지했다. 햇볕 쐬러 나가거나 못 나가겠으면 잠깐이라도 베란다에 나가 차를 마셨다. 그렇게 루틴을 새우고 나니 오히려 대중교통이, 출근이 어색한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사 온 따뜻하고 멀쩡한 집, 집에서 가사를 같이 할 반려, 공간 분리와 좋아하는 것으로 꾸며둔 집안의 곳곳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카페 바 스터디 멀티방 다 가능. 그중 가장 좋았던 건 어차피 도시락 싸다니는데 따뜬한 밥을 금방 해서 호록해 먹을 수 있다는 것. 아침에 밥 돌려두고 간단한 반찬으로 때우면 걱정보다 그리 귀찮지도 않다. 첫 주에 냉동고 재고 파악을 끝내고 커피도 내려먹었는데 25분이라 좋아서 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원래 사무실에서도 1/11쯤은 정신이 부엌에 가있는데(토마토 있나? 가는 길에 사야 되나? 오늘 뭐 먹지? 재료 다 있나? 쓱 배송시켜놔야겠네 뭐 그런 것들) 점심시간에 바로 실행할 수 있다니 효율 장난 아니다. 저녁 재료도 손질했지 않나! 레시피 백과사전 태그에 "점심"도 추가했다. 뭐 먹지 고민 안 하고 해 먹으려고.

재료 버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냉장고 다 파먹기 프로젝트는 결국엔 파스타로 귀결돼서 세상의 모든 파스타 다해먹게 생겼다. 가지 파스타, 후무스 파스타, 명란 파스타...

제철음식도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가끔은 평생 안 해 먹을 것도 해 먹어 보고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이 외에도 참 많이도 해 먹었는데. 차곡차곡 정리해서 유튜브에 올려야겠다.

그렇게 8주 만에 다시 돌아온 일상에서는 하루의 끝에 남는 시간이 극히 적어서 밥을 잘해먹는다거나 그냥 어차피 딴 거 못하니 쉰다거나, 오늘은 운동을 제대로 한다거나 그러면 잘 시간. 그저 재택 때 시도했던 에너지가 오래도록 남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장점도 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그 시간을 때우는 나"에 대한 자책은 줄어드는 것 같아. 물론 그것도 무뎌질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이제 다시 출근을 해야 하기에 찾아보는 변명입니다.


출근하자마자 집밥이 제일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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