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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Nov 11. 2019

사랑하고 마음껏 좋아할 수 없는, 가족

<벌새>와 <82년생 김지영>으로 전하는 매몰찬 딸의 마음

<벌새> 리뷰는 읽을 때마다 마음이 따끔거린다. 혼자 자리에서 흐응~의 표정이 되곤 한다. 유진님 리뷰 잘 읽었어요.

강남도 서울도 아닌 곳에서 외동으로 쭉 자라온 나는 은희의 숨 막힘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벌새>의 매력은 각자의 숨 막힘을 떠오르게 하는 것. 마는 어릴 때부터 나랑 친하고 싶어 했다. 뜬금없이 이렇게 묻곤 했다. "우리는 친하지?" 아마도 살갑지 못한 딸의 거리감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근데 그게... 엄마가 독립적이고, 무엇이든지 척척 해내도록 길렀잖아. 그러면서 동시에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재잘거리며 일상을 나누었으면 하는 소망을 지니고 계시다니. 엄마 근데, 제발 하나만. 너는 아들 같다는 소리를 지금도 많이 하신다. 아직도 가끔 학창 시절을 얘기할 때면 너는 내가 학교에 가도(그 시절엔 학부모가 학교에 와야 되는 일이 왜 이렇게 많았는지. 시험감독도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왔던 거 같다.) 모른 척했다고 그렇게 매몰찼던 딸을 섭섭해하신다. 그랬던 딸은 자라서 훌쩍 서울로 가버리고는 이제 드디어 명절에도 돌아오질 않게 되고 전화보다는 카톡으로 연락하기를, 아무 일도 없는 일상보다는 사건을, 취향을 공유하기를 원하며 대화를 답답해하게 되었지.

여전히 엄마는 나와 친하고 싶어 하고 또 그것을 확인받기를 원하지만 나는 마냥 그럴 수가 없다. 엄마는 내 삶이 궁금하고 응원하고 싶다기보다는 어떻게든 걱정하려 하잖아. '무슨 말을 못 해.' 하는 기분으로 일상의 무슨 이야기도 쉽게 나누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나누고 싶은 나의 취향은 엄마 관심사가 아니며... 걱정거리만이 엄마의 관심사인데 부러 걱정을 불러일으키느니 차라리 얘길 안 하고 말지, 그렇게 1n년동안 대화의 폭이 줄어들어버렸고 이제 와서 "너는 자주 전화 좀 해라"만으로 그게 풀릴 리가 없다. 전화해봤자 "응 뭐 그래 어 밥 먹었어 응 바쁘지."의 반복인 걸. 그거라도 자주 하고 싶으시겠지만. 전통의 관습을 따르는 엄마의 이야기는 가끔 너무 숨이 막혀.


있지 엄마, <82년생 김지영>의 지영이 할머니의 목소리로 말한 것처럼 단단하게 키웠잖아. 나는 단단하게 또 욕심도 많이 부리며 잘 지내고 있어. 일도, 생활도. 나는 가족여행을 가거나 본가에 갈 때면 전략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나의 건강한 일상을 나누려고 하는데 나의 음모를 알랑가 모르겠다. 친구 Y는 10년 전부터 전략적으로 본가에 친구를 데리고 갔다고 하는데 글쎄 우리 엄마는 어릴 때부터 집에 누군가를 들이는 걸 극도로 꺼려했으니까. 친구를 집에 데려와서 재운 게 아마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 그런 엄마에게 요즘 나누고 싶은 마음은 이거다. 나는 노후대비를 친구들로 잘 하고 있다. "그러다 나중에 외롭다"라고 즐겨 말하지만 엄마, 서울깍쟁이였던 시절이 있었으면서 왜 그렇게도 낡은 얘기를 하는 거야. 나의 건강한 친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꾸리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고 그래서 지금의 나도 잘 살고 있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알려주고 싶다. 매몰차고 마음껏 좋아하지 못해서 그렇지 사랑합니다. 요즘은 엄마가 일도 나가고 친구도 만나서 좋다. 엄마의 풍부해진 일상을 듣는 게 훨씬 마음이 좋아. 엄마 우리 가족은 구성원 전부가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뿌듯해하고 있는 거 다 알아. 그냥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

 편해.


Photo by 五玄土 ORIENTO on Unsplash

이런 매몰찬 딸은 올해가 다 지나가는 마당에 처음으로 본가에 내려가서 다기세트를 훔쳐올 궁리를 하고 있다. <벌새> 보니까 우롱차를 우려먹고 싶어 지더라고 엄마. 그거, 세트 말이야 요즘도 잘 안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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