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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Feb 15. 2017

두 번째

적응해야 산다

첫 번째 스타트업을 떠나보내고 규모가 좀 더 큰 조직으로 왔다. 사람, 업무 파악에 생활 동선까지 꼬여 날이 서있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날 증명해야 하기도 하고. 인턴까지 치면 이게 벌써 네 번째 조직이다. 갈수록 적응하는데 드는 시간은 짧아지나 싶지만 어째 에너지의 총량은 똑같은 거 같고... 잠시 쉬다 다시 일하려니 긴장해서 그런가 집중 좀 하려면 얼마나 졸리든지. 요즘은 하루하루 신기하지만 불안하고 또 자기반성하기도 하며 지내고 있다.

컨펌이 있긴 있지만 건건이 있는 건 아니고 가져간 일감은 결론까지 알아서 하길 바라는 듯.

하루라도 빨리 서비스 구조를 파악하길 원한다. 실무에 얼른 투입되어야 되니까.. 앞으로도 신입을 뽑을 일은 없을 거라 그러고.

여기 인재상은 "급한" 사람들인가 템포가 빨라. 뭔 말을 하면 반응이 0.01초 만에 리엑션들이.... 말도 빠르고....

경력 기획자들이 에이전시 출신이 많음. 사용성 평가도 많이 수행해보신 것 같고 배울 게 많아 보이고 동시에 난 참 보잘것없어 보인다. 음.. 나는 운영 경험은 많다는 장점이 있으려나. 히스토리 파악이나 커뮤니케이션 같은 거.

그런가 하면 스타트업답게 엉성한 부분들도 많은데 예를 들어 테섭이 있긴 있나 본데 정말 필요할 때만 한시적으로 운영되나 봄.

규모가 좀 되는데 작은 데서 출발해서 그런가 조직도와 연동된 메신저나 피드의 필요성을 못 느끼더라. 뉴비로서는 사람 파악하기가 좀...

작년엔 한창 열심히 사는 게 뭘까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 뭐 강제로 열심히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실 나는 전력을 다했던 적이 없었던 건가. 배우길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현타가 오는데.. 이런 기분 대학 새내기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저전력 모드로 2n년을 살아왔던 거 같은데 그렇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게 생겼다.

동시에 안 지칠 정도로 페이스를 맞추는 것도 중요한 게 아닐까 고민. 운동하고 집에 간 다음날은 깼다 다시자는 바람에 택시 출근을 해버렸다. 적정 수준을 찾기 위해 노력 중. 자연스레 그리 되겠지만.

나는 늘 조직에 적응하고 문법을 파악하고 무리 없이 일을 해내는데 급급했지 뭘 적용해보고 배우고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여기오니 신입부터 누구나 막 찾아다니고 스터디를 조직(!)하고 듣고 배우고 듣고싶은 미팅이 있으면 스윽 보다가 "저도 들어도 될까요" 들어가고 그걸 근거로 결정을 내리고 우와...대단...

안 그래도 뭘 좀 배우고 싶었는데 해야 되는 게 명확히 보여서 스터디도 착착 진행된다. 이다음에 배워야 될 것도 보이고. 좋음. 예전엔 뭘 배워야 될지도 모르겠고 배워와도 못써먹고 재미없었는데.

사람들이 새 멤버에 관심을 많이 보임. 채용이 결정 나면 어떤 사람이냐고 꼬치꼬치. 사람이 중요한 스타트업이라서 그런가.

전반적으로 다이내믹해서 심심할 틈이 없긴 한데 정신없다. 템포가 빠른 반면 어느 방향으로 템포가 빨라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도.

회사에선 그동안은 쭉 막내라인 언저리였는데 훌쩍 중간 나이가 돼버렸다. 하루아침에. 잘해야 될텐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일단은 급한 대로, 이제껏 갖춰진데서 따라가느라 몰랐던 스킬들을 습득해야겠다. 책도 읽고 동영상도 보고.

여기, 아직은 한창 개척할 길이 있어 보이는데 당분간 잘 지내고 싶다. 많이들 안 나가고 나도 안짤리고(!) 그랬으면 좋겠네.



걱정보다는 잘 지내고 있지만 그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당황 포인트. 어린 친구들 특유의 필터링 없는 감정표현과 관계 맺음?! 이렇게 나이가 드는 건가 (a.k.a. 꼰대가 되는 건가) 싶음. 그 왜 학창 시절에 멋진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어 하고 '멋짐'이 내 기대에 못 미친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가까이하진 않으려던.... 모두들 원래의 나보다 더 무리해서 발랄하려던 시절이 다들 있지 않냐고. 새삼 아닌척해서 그렇지 아 나는 천성이 고요한 사람이라 느낀다. 적응 중이라 그런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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