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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Mar 02. 2017

동아리 같을 수 있어요

성숙한 조직과 구성원을 바라며

처음 스타트업에 기웃거리려 맘을 먹었을 때 "동아리 같을 수 있다"는 글을 많이 봤다. 감이 잘 안 잡혔다. 일 처리하는 게 서툴다는 건가, 프로답지 못하다는 걸까. 와서 보니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빨리빨리 일을 쳐내고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하고 속이 다 시원하더라. 이제껏 내가 일하면서 답답했던 건 의사결정에서 렉 걸리고 아무도 결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거였으니까.

그렇게 만족하면서 지낼 때, '동아리 같다'는게 이런 건가 싶은 순간이 왔다.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어리다 보니 서툴고 사려 깊지 못하다. (구성원도, 조직도)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이 좋은 생각으로 으쌰 으쌰 똘똘 뭉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 스타트업의 '체계 없음'이 빛을 발한다.

어느 정도 역사와 규모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면 HR도 따로 있고, 세세히 체계가 갖추어져 있어서 지켜야 할 일들이 있다. 말도 안 되는 규칙들이 쌓이는 것도 문제지만 덕분에 1차적인 필터링이 된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의 가벼움이나 재기 발랄함으로 포장된 무모함이 때로는 당연히 지켜야 할 선을 넘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내부에선 의미 있는 공유도 없고 '그럴 수도 있지' 넘어가게 된다. 당장 눈 앞에 넘어가야 할 일이 산더미다 보니 하나하나 챙기지 못하고 그게 문화가 되어 쌓이다가 터진다. 요즘 국내외 스타트업에서 사건이 하나 둘 터지는 게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고가 터지면 어떻게 되느냐. 그래도 별로 크게 생각을 하질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 데 일일이 어떻게 다 신경 쓰냐. 조직 분위기가 한번 이렇게 잡히면 문제제기 하기는 더 곤란해진다.

열정적인 분위기 정말 좋은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봐야하지 않을까

지금, 그리고 앞으로 내가 속할 조직이 소수자/약자/여성 등의 이슈를 중요치 않다고 생각할거라면 끔찍하다. 그냥 "나중에"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점점 더 상식이 통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과거에 머무르는 조직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아래는 위에서의 Uber 사태에 대한 해시태그 운동이다.)

합류하기로 한 게 내 선택이었던 만큼, 불편한 지점이 생겼을 때 열심히 얘기하고 정면 공격이 힘들다면 측면 공격도 할 거다. 결국 그게 수포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설마). 만약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오래 있을 곳이 아니었던 걸 테고, 다음의 조직에서는 조금 더 잘할 수 있겠지.



나는 어쩌다가 불의를 보면 그냥 못 넘어가고 한마디라도 얹어야만 되게 되었나(=인생이 꼬였나) 싶다가도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게 나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은 것...

속상해서 관련 주제로 벌써 두 번째 글인데 쓰면서 생각이 정리가 된다. 글쓰기는 나의 힘.

IT기업에서는 자주 '문송합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어지지만 내가 사회과학도였던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보는 렌즈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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