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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Apr 07. 2017

신세계

에이전시 출신의 실력자들

사람들이 어떤 커리어 패스를 만들어가는지 관찰하고 게 중 내 것으로 만들 게 있는가 살피는 걸 좋아한다. 어쩔 수 없는 사회과학도... 그중에 취할 것을 취해서 성장하면 서로서로 좋잖아. 새 조직에서는 늘 그전까지는 못 봤던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오늘 정리할 이야기는 내가 2010년대에 서비스 회사의 기획자로 발을 들인 꼬꼬마라 미처 몰랐던 한 시대의 이야기.

2001-2003 요맘때가 에이전시 정점이었다고. (링크는 누군가가 정리해 둔 에이전시의 종류. 지금도 엄청 많나 보다) 여기엔 기획/디자인 외주계의 프로들. 소위 '선수'들이 모여있었고 큰 회사들의 조직이 생기거나 늘어날 때 막 몇십 명씩 옮기고 그랬다고 한다. 제안하고, 외부의 개발팀이랑 일정 맞춰 구축해주고, 유지 보수계 약도 하고. 그땐 대기업에서 외주를 엄청 굴리던 때라 일도 엄청 많았고. 그러다 지금은 차차 대기업에서 슬슬 내주 화하기 시작하면서 회사 규모도 작아지고 뭐 그러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대기업"에서는 서비스 기획만 잡고, 일감을 넘겨주기도 한다는데.... 쭉 듣는데 숨겨진 몰락한 왕조랄까 아틀란티스의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었다. 우리나라 얘긴 하니지만 구글링 해보니 이런 글도 있고

안 그래도 오자마자 내공들이 장난 아닌 것 같더라니. '배울게 많아 좋다' 그랬더니 여기가 무슨 학교녜. 네 무슨 의도인 줄은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제 전전 회사는 동질 집단이라 썡신입부터 시작한 사람들끼리만 모여있어서 뭐 새로이 배울 게 없었다고요.. 그래도 꿋꿋하게 말씀드리자면 배울 게 많아서 좋아요. 얘기해주시는 분들 모두 '누구누구에게 일 많이 배웠지'라고 말씀하시는데 전 이제껏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느낌이라... 지금 내 사수는 '네 말씀해보세요'가 입버릇인데 요구사항을 파악하는 게 몸에 배었나 싶었다. 또 다른 분은 하드웨어까지 맡아서 진행했었다고... 와... 신세계


외부 모임에서 또 웹에이전시 출신 사람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서비스 회사에서 운영 프로젝트만 쭉 맡아왔으면 내세울 프로젝트가 별로 없어서 나중에 커리어 패스에서 불리하다고 했다. 최신의 기술을 많이 써봤다? 포트폴리오에 써낼 수 있는 프로젝트가 많다? 그것만이 꼭 기획자로써 갖추어야 되는 장점일까. 근데 그 사람들 다 서비스를 맡고 싶어서 여기 와있잖아. 그렇다고 전직하기엔 그간 내 경력이 너무 다르고 익히 알고 있듯이 에이전시는 근무환경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하락세라며. 난 어디로 가야 하나 혼란스러워졌다. 

지금까지의 내 장점은 글쎄. 내부 인원으로 소속되어 서비스의 운영을 많이 해봤단 거? 스펙을 줄여서 어떻게든 구현할 수 있도록 관리했다는 거? 빨리빨리 쳐내는 거? 잘 알아듣고 잘 전달하는 거? 그래서 여러 가지를 고려할 줄 안다? 웹에이전시? 디자인 에이전시? 디자이너? 프로덕트 디자이너? 기획자? 뭐가 뭔지. 한창 고민 중에 다른 에이전시 출신의 지인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거 다 저마다의 self-defence라고. 물론 대단하지만, 그래서 정작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그게 중요한 거 아니겠냐고. 뭐, 그것도 그렇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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