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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Mar 17. 2017

사소하고도 참 지속적인 소외감

치사해서 어디서 말도 못 하는

이건 평생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아 안고 가는 의미로 기록. 더 이상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관계를 지속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레 멀어지는 것을 억지로 붙잡아두지 않는 게 멘탈에 이롭다는 것을 배웠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환경에 일부러 놓이는 건 미련한 짓이라는 걸 알았다. 자연히 남아있는 관계는 주로 행복한 관계 거나, 살아가려면 끊을 수 없는 관계 거나. 그렇지만 남아있는 관계에서도 순간순간 박탈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가 없는데.

내가 객원가수냐고

알고 보니 같은 그룹에 여러 소모임이 있었고 어쩌다 게스트처럼 초대받았는 데 그다음엔 또 나 빼도 진행되겠구나 싶을 때

좋아하는 친구들이지만, 딱히 이너 그룹까진 들어갈 수 없고 그렇다고 외부인도 아니고. 이따금 그 구성원 중 누군가의 호의에 의해서 모임에 초대받을 때

부르던가 나중에 알려주질 말던가

연락이 오지 않은 상태로 번개가 있었고 추후에 사진으로 후기를 통보받을 때

그리 많지도 않은 같이 아는 친구들을 굳이 쪼개서 만나는 친구. '아 나 누구랑 누구랑 만났는데'.... 어 그럼 그때 나도 부르지 왜 따로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계속 봐야 되는데 거참 애매하게도

지들끼리 공유된 히스토리 얘기를 한참 나누며 뻘하게 유령 취급당할 때

그 히스토리를 옆에서 듣다 보니 앞으로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지 않는 한 낄 일이 없겠다 싶을 때

그렇게 한참 자리에 같이 있었는데 결국 나만 빼고 어딜 갈 때

그걸 나중에 알게되었을 때. 알고 안가는거랑 모르고 못간거랑 기분이....


그러니까 이것은 "나도!"로 해결되는 사소한 소외감. 그리고 설마 의도적이었겠냐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일, 그리고 인지하고 있지도 않을 가능성이 높은. 하지만 치사하게 매번 "야 너 왜 나는 안 불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실 애초에 정보가 나에게 오지 않으니 미리 선수를 치는 것도 불가능. "왜 그때 안 불렀어"하게 되는데 사실은 이게 한층 더 치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새로운 모임을 시작할 때 즈음이었다. 같은 구성원이라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정보 공유하는 게 맞는 거 아니냐고. 박탈감 느끼지 않겠냐고. 그때 지인이 그랬다. 이게 자연스러운 거 아니냐고. 끼리끼리 뭉치게 되고 더 친하게 되고 누군가완 더 잘 뭉치게 되고. 맞는 말이지만 씁쓸한 거지. 아마 내가 그 사이에 못 들어서 질투 났던 거일 거고.

세상 모두와 "가장" 친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문득문득 생각해줬으면 하는 이 사소하고 치사한 욕심은 평생 지속될 듯. 연애를 하고 안정적인 관계가 생겨도 이 욕구는 도무지 해소가 되질 않네 문득문득 뭔가 올라옴.


그래서 말인데 처음 SNS가 나왔을 때 얼마나 반가웠든지.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고(정보가 나에게 온다!!) 비슷한 정서의 지인에게 관심도 더 쉽게 표현할 수 있고. 치사한 말도 맘껏 할 수 있고. 근데 이미 그 SNS들도 너무 비대해져서 작은 커뮤니티의 역할을 전혀 못하게 되었다지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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