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감을 느낄 때 내가 참 못났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좀 더 노력해야겠구나 싶었다. 아니지! 왜 하필이면 이렇게 다른 우리가 만난 거야! 내 탓이 아니었다.
우연히 지역으로 묶여 갈라져 반 친구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중생 A처럼 학기 초에 애를 써서 내 무리를 지어두지 않으면 한 학기 내내 마음이 괴로웠다. 내 무리를 지키기 위해서 경계의 친구들을 배척하기도 했지. 우리가 견고한 걸 끊임없이 확인받아야지만 내가 외톨이가 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서른 줄에 들어선 우리는 어느새 세월이 흐르면서 누군가와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자연스레 멀어지기도 하고 또 의외로 갑자기 친해지기도 하고 그렇게 되었다. 난 그렇게 변한 내가 좋았다. 내가 몰랐던 나를 알게 되기도 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같이 자연스럽게 변해오지 않았던 친구들도 있더라고.
어른이 되어서 내가 선택해서 노는 무리라는 게 생겼다. 그중엔 당연히 "끼리끼리"가 더 편한 친구들도 있었다.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도 천천히 변해왔고, 누군가와 더 친한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그 사이에 내가 끼지 못했다는 건 좀 쓸쓸한 일이지만 강요할 순 없잖아. 그런데 그게 내게 상처가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끝끝내 이너서클이 될 수 없었다. 일부러 편을 가르고, 저들끼리 아는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서도 공통의 친구와 내가 더 친해지는 것도 참질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저희들과 친해질 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어쩌란 거야. 단단하게 쌓은 저희의 관계로 우월감을 느끼면서도 가끔씩은 세상에서 가장 비련한 주인공이 되어 고민을 들어달라고 했다. 내가 벽을 치고 있는 걸까. 마음이 쓰일 때가 많았다. 혹시 내가 서툴러서 그런 건가.
지나 보니 그건 그냥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었다. 좀 이기적인 방식의. 혹시나 내 얘기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신경 써온 나와는 달리 "우리"끼리 아는 이야기를 만들고 그 비밀로 더 단단해지길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끼어있는 사람이었다. 우연의 힘을 믿고 여기저기 얕고 넓게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글쎄 뭐가 뭔저려나. "끼리끼리"의 바깥에 있었던 게 먼저인 걸까. 처음부터 기질이 달랐던 걸 알아보고 거리를 둔 걸까. '소중한'것을 이미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싶었던 저희는 그럴 여지를 만들고 지키기에 바빴고 나는 세상에 영원불멸의 그런 건 없고 지금 만들어나가는 거라 믿었다.
결국 무리에는 끼리끼리의 성만 남고 그 경계에 있던 친구들은 지쳤다. 이제라도 받아들여야겠지. 호의를 가지고 싶어도 상처를 받는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안녕 즐거웠어. 우리 선을 긋고 살자. 어쩌면 우린 좀 더 오래 복작이며 재미있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혹시나, '내 얘긴가?' 싶으신 분들 이건 악의적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예요.
대부분은 초대받았을 때 감사한 맘이 큽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복작복작 너무 필요한 일이고 나에겐 너무 가끔 있는 일이라 늘 부러워하는 마음이 드는 거죠... 좀 더 자주 일어나는 일이면 좋겠단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일 년에 n번 정도?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 같은 인간은 그냥 다시 도시가 아닌 곳으로 가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차단이 되어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게 좋았어요. 그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친구들은 여전히 만나기도 했고요.
그래도 지레짐작하여 마음을 먼저 닫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사람 일 어떻게 될 줄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