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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Sep 26. 2017

일상을 다지는 힘

이젠 어디에 떨어져도 무섭지 않아

이 매거진의 원글(제주에서 육지로 다시 와 적응하는 이야기)은 아래의 브런치북으로 옮겨갔습니다. 기존 글은 브런치북에서 찾아주세요. 여기서는 육지에서도 끊이지 않는 삶의 루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번 주엔 무슨 요일에 나가서 운동을 할까 미세먼지 어플을 켜고 회사 일정을 보고 클래스 예약을 한다. 간단한 레시피를 자주 들여다보며 한 주의 식단을 어떻게 짜면 좋을까 궁리해본다. 이번 주의 피아노 숙제를 하기 위해 음악을 듣고 슥삭슥삭 필기를 해가며 좋은 화성을 찾아본다. 아침에는 일부러 조금 더 일찍 나와 10분이라도 걸어본다. 문득 '나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지에 가기 6개월 전의 섬. 돌아가서는 지금처럼 좋은 마음을 유지하며 살지 못할 거라 덜컥 겁이 나던 밤들이 있었다. 훅하고 신선한 바람을 들이마시며 점심시간에도 잠깐 햇볕을 쐬고 무언갈 소비하기보다는 나의 시간을 가지고 가끔 주말에 열리는 오일장에 들르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요리를 하고 가보지 않은 곳을 가던 시절. 이 모든 걸 놓아버려야 되다니 겁이 났다. 실패했던 북유럽의 겨울도 생각났다. 나도 참 가고 싶었던 곳이 유럽이라면, 베를린에나 가서 현지 취직이나 알아볼 것이지 무슨 로망을 가지고  3,4시면 어두워지고 하필 침대보도 푸른색이라 한없이 침잠하기 좋은 그곳으로 갔던 걸까. 일상을 꾸려간다는 감각을 놓쳐버리고는 도망치듯 탈출했었지. 또다시 그렇게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육지에서도 일상을 다지는 힘을 기를 수 있을까? 싶었다.

육지는 역시 출근길은 붐비고 미세먼지로 꽉 차있고 채도가 높은 빌딩 풍경은 어지러웠다. 더 이상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던 서핑도, 물질도, 다이빙도 없다. 부르지 않아도 오래 머물다 가는 친구도 없고. 하지만 그 틈에도 푸름은 존재했고, 마음 맞는 활동이 있었다. 육지의 유일한 낙이 될 줄 알았던 '코스트코'보다도 더 괜찮은 것들이 있었다. 되려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이면 못 가진 것이 잘 보이고 외로워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번 주에는, 오늘은 뭘 하고 싶은가 나 스스로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저지르고. 다행히도 흐른 시간만큼 나름의 근육이 길러졌나 보다. 일상을 꾸려가는 힘만 있다면 어디서든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기회만 돼봐라, 다시 지방에 갈 거다.

돌아보니 작년에도 같은 글을 썼네 낄낄. 결은 조금 달라진 것 같지만. 그때는 바깥을, 지금은 안을 향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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