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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Dec 01. 2017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2러닝

내가 유산소 운동을 할 줄은 몰랐다

올 7월, Adidas Runbase Seoul 에 들른 이유는 친구의 인스타 사진이 멋져 보여서+들러보니 싸서였다. 일상의 재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호기심이 들면 어디든 문을 열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 Openrun을 들어봤다. 누구에게나 열린 거라 Open 아니겠어? 가볍게 뛰자더니 그게 코스가 남산이었고 업힐 다운힐 도합 6km였다. 평지도 뛰어본 적이 없는데. 걷지 말랬지만 많이 걸었다. 1km 무렵부터 포기하고 싶었는데 일단 다 뛰었다는데 의의를 두었다. 잠깐이었지만 여기저기서 파이팅하여주고 로우 페이스라도 자기 페이스로 끝까지 달리라고 격려해주시고 좀 신이 나기도 했다. 따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몸이 못 따라갔다. 일단은 각종 보강운동들부터 꼬박꼬박 듣기 시작했다. 퇴근 후 시간이 남는 날 예전부터 알았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runday라는 러닝 초보용 어플을 드디어 켜고 동네를 뛰어다녔다. 우선은 5km는 달릴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어 졌다. 한 3주 차까지 주 3회 꼬박꼬박 달렸던가. 친구도 몇 명 추가해보고 서로 페이스도 확인하고. 딱히 정통 마라톤을 하고 싶은 욕구는 없었다. 그냥 재밌어 보이는 것 - 가령 컬러런 같은 걸 해보고 싶었을 뿐.  

그러다가 '아이오닉롱기스트런'이라는 앱을 깔게 되었다. 60일 동안 내가 뛴 거리를 기록하고, 기록에 따라 나무도 심어주고, 경품을 응모할 수도 있는 어플. 오며 가며 키로수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다. 게다가 무선 스피커도 당첨되고 나니 욕심도 커지고. 좀 더 욕심부릴까?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주변에 경험자들이 하나같이 10km는 생각 없이 뛰면 그냥 뛸 수 있다 그랬다.(거짓말) 단골 만화방에서 '마라톤 1년 차'라는 만화책도 봐버렸다. 150cm 라이프 저자의 마라톤 시리즈 만화로 학창 시절에 무턱대고 시키는 오래 달리기 등 운동을 싫어했던 저자는 사회인이 되고 어느 순간 달리기에 빠져 무려 하와이 풀코스 대회까지 완주하게 된 이야기이다. 친구랑 약속 잡아서 같이 훈련하고 10km, 하프 대회 같이 출전하면서 맛난 거 먹고 온천 가고 마지막으론 하와이까지 같이 가서 완주하는 부분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진짜로 풀 마라톤을 해내버리다니 맘이 너무 찡했다. 풀코스를 5시간 즈음으로 주파했다길래 사람이 5시간을 달릴 수가 있는 거였어? 궁금해졌다. 나도 가능해? 이제 겨우 2분 30초 달리고 2분 걷는 인터벌 트레이닝으로 4km 남짓밖에 안 뛰어봤는데? 

그러다 회사에서 운동하는 곳까지 도보 거리가 5km가 안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중간에 산이 있긴 한데 정상을 넘는 것도 아니고 원래 러닝 코스로도 유명한 코스고 유난히 가볍게 가방을 챙기고는 퇴근하자마자 옷을 갈아입었다. 되든 안되든 일단은 가보자. 10분 뛰고 2분 걷는 걸로 딱 40분. 5.66km. 10분씩 쉬지 않고 달린 것도 첨이고 5km 넘은 것도 첨이고 산 넘은 것도 처음이라 성취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나만의 미션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강을 따라 10km 달리기.

아 아직이다 싶었다. 6킬로부터는 걷다 뛰다를 반복했으며 자세는 당연히 엉망이었고 마지막엔 정말 많이 걸었다. 안 되겠네. 일단 50분이라도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몸을 만들어보자. 그래도 이즈음엔 이미 5km는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고 애초의 목표는 넘어선 거라 신난 상태였다. (제가 기대치가 낮습니다. 지속 가능한 게 중요하지 뭐.) runbase에서 월요일마다 열리는 초보를 위한 프로그램인 SOR도 두 달 참가하고, 잘 뛴단 소리도 곧잘 듣곤 했는데 음, 아직 싶었다. 그래서 AR 프로그램도 나가고 자세와 요령을 배워갔다. 왜냐면 나는 이제 10km 대회를 앞두고 있었거든. 내 페이스대로 안 걷고 뛰는 게 목표였다. 동시에 나 나름대로 일상에 나 혼자만의 미션을 심고 그걸 깨는 재미를 붙였다. 제일 뿌듯했던 나만의 미션은 퇴근런(8.5km) "운동은 돈을 주고 하는 게 아니다, 돈을 벌면서 하는 것이다 그뤠잇!" 신호를 제외하곤 쉬지 않았고 업힐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오호라!

퇴근런하는 법:레깅스를 신고 힙색과 일반 가방을 챙긴다. 달리기에 필요한 운동복, 이어폰, 카드는 힙색에 넣고 출근에 필요한 기타 물품은 일반 가방에 넣는다. 퇴근 시 일반 가방은 자리에 두고 힙색만 가지고 집에 간다. 화장실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입고 온 옷은 힙색에 넣는다. 그대로 달려서 집에 간다.

그러고 나니 어딜 가도 뛸 수 있는 데가 없나 눈독을 들이게 되었는데, 이 즈음 런데이는 자주 안 하게 되어서 NRC로 갈아타게 되었다. 좋았던 점은 대회에 대비해서 플랜을 짤 수 있는 거. 하라는 대로 트레이닝 다 지켜서 하진 못했지만 마라톤을 나가려면 무엇이 필요한 지 감이 옴. 어디서든 내가 필요한 운동을 찾아서 할 수 있음. 추석 연휴 때 본가에 가서도 여행을 가서도 틈만 나면 뛰었다. 끔씩 느슨하게 참여할 수 있는 나의 러닝 크루도 찾아보았다. 아직 소속은 없지만 게스트로 여기저기 달려보았다. 가끔 예쁜 사진도 건질 수 있어서 좋다.

드디어 다가온 내 인생 첫 번째 대회. 아이오닉런. 왜 이게 첫 번째냐면 공짜였기 때문에... 작정하고 대회라기보다는 축제 느낌이었는데 어린이도 많고 개(!)도 있어서 장애물 경기인 줄 알았다. 2km가량 요리조리 피해가며 달린 후 그다음부터 냅다 뛰었다. 내년에 또 간다면 앞쪽 그룹으로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서울대공원 업힐이 장난 아닙니다. 고백하자면 좀 걸었어...

10km 공식 기록을 가져보고 싶었다. 그래서 참가한 대기업 주최 행사. 풍선 터널을 지나가는 데서 정체가 좀 있어서 사람들이 짜증을 냈다. 하지만 그 구간을 지나니 제법 마라톤이었던 것이다. 업힐도 꽤 있었다. 그렇게 얻은 첫 10km 기록.

그리고 다가온 시즌 마감. 하프. 사실 올해 하프를 할 생각은 없었는데.. 애초에 7월만 하더라도 5km나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였다. 그런데 런베이스에서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이 하프를 등록한 걸 알게 되었고 까짓 거 뭐하면 걷지라는 마음으로 등록했다. 마침 집에서 애인네까지 15km라 시험 삼아 뛰어봤는데 오호라? 뛰어지잖아. NRC에 하프 일정 등록해보니 트랙 연습이랑, 장거리랑, 필요한 스케줄이 촤라라 나오더라. 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개인적인 목표는 10km까지 걷지 않기) 마침 코치님이 주말마다 인터벌 트레이닝도 해주시고(그래 봤자 총 3회였지만)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우비와 마스크와 핫팩을 쥔 나

하필이면 영하 5도의 강추위였다. 중무장을 하고 가선 우비로 갈아입었다. 몸을 풀고 핫팩을 쥐고 마스크를 끼고 단단히 맘을 먹었다. 3킬로쯤부터는 핫팩 마스크 우비 다 집어던지고 반팔로 달렸다. 한겨울에 반팔로 뛰어 댕기는 사람이 대체 누군가 했더니 나야나... 초반엔 어제 훈련의 여파로 정강이가 아파와서 아 망했네 싶으면서 훈련하지 말걸 그랬나 온갖 생각이 들었는데 (몸 풀 땐 괜찮았는데!!!) 슬슬 몸이 풀리더니 반환점을 돌아 코치님 무리에 안착해서 기차 타고 무사히 들어왔다. 사람들 목표가 2시간 언더길래 개인적인 목표는 2시간 10분이었는데 덕분에 2시간 밑으로 드로와 써!!! 이렇게 시즌오프.

이제 뭘할까. 하프 준비하면서 NRC를 내년 동아마라톤 대비 풀 마라톤 일정을 세팅해봤다. 안 나갈 수도 있고 하프를 할 수도 10km를 할 수도 있지만 뭐가 필요한지 좀 보려고! 아니 이게 되니까 자꾸 다음을 생각하게 되잖아. 가이드는 되겠지 뭐. 주워듣기론 거리 늘려가면서 30km까지 늘리고 15km 정도랑 번갈아가면서 준비하면 충분히 갈 수 있다는데 말이야. 동아마라톤! 중앙마라톤! 춘천마라톤! 다 풀 완주하면 엄청 뿌듯하겠다. 아 트레일 러닝도 하고 싶어졌다. 마라톤 하면서 기분 좋을 때가 힘이 들 때 고개를 들어서 바라본 풍경인데 트레일 러닝은 풍경이 너무 멋질 거 같더라. 그러려면 백팩도 사고 헤드랜턴도 사야 되는 거 같던데 잘 모르겠네. 트레일 러닝은 어디서 배울 수 있지! 알고 싶은 세계.


에필로그로 적어보는 뛰면서 배운 것들.

생각보다 걷는 게 경제적이고 가깝다. 도시의 인간으로 자라나 생각을 안 해봤던 지점인 것. 만약 도보-러닝 생활을 관에서 지원하고 싶다면 도로정비도 정비지만 뭣보다 샤워실/탈의실/사물함 비치란 생각이 들었다. 주요 지점에 샤워실/사물함만 비치돼도 걷고 싶은 사람은 걷고 뛰고 싶은 사람은 뛰고 또 나인봇 같은 걸 활용하고 싶은 사람은 활용하고 할 듯. 지금은 너무 자차 아니면 대중교통의 옵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자세가 안 좋은 줄은 학생 때부터 이미 자각하고 있었으나 설마 이게 러닝에 해가 될 줄 몰랐다. 전통적인 팔자걸음러인데 아치를 세우고, 뒤꿈치 쪽으로 무게 중심을 잘 잡고 발 끝까지 밀어 똑바로 정성스레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런지, 스쿼트도 (아마 자세 때문에)에 쥐약인데 뒤쪽 근육으로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자세를 잡아야겠다. 집에 폼롤러, 마사지 볼도 있는데 스트레칭도 꼬박꼬박 해줘야지. 앞쪽 허벅지 스트레칭이 중요하다고 했다.

런베이스프로그램, School of Running
런베이스. 하루 시설 이용비가 3000원. 하루에 어떤 프로그램이든 다 들을 수 있다. (현장 예약/온라인 예약이 있고 온라인 예약은 일요일 2시에 열린다.) 한번 시설 이용할 때마다 코인이 1000원 쌓이니 4번에 한 번은 공짜. 무엇보다 한 주 한 주 내 스케줄에 맞춰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는 게 제일 맘에 든다. 시간 될 때 신청하고, 모여서 운동하고 그러는 거 이거 되게 치앙마이 같다(안 가봤음) 싶었다. 12월엔 서울숲으로 이사 간다. 개인적으론 동선과 멀어져서 아쉽다. 그러니 대신들 가주세요. 물론 저도 가능한 한 쭉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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