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뜻 Feb 19. 2021

엄마의 잔소리는 사랑소리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새벽 세시. 올빼미족인 나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하고 있었는데, 대뜸 안방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자는 척을 할까, 말까 고민하길 3초. 방에서 나온 엄마가 내 침대를 향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오면 자는 척해봤자 걸릴 게 뻔하니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때 머리 위로 손이 훅 지나가더니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멀어진다. 엄마는 볼 일을 마쳤다는 듯이 비척비척 등을 돌린다. 화장실에 가려던 참에 잠깐 들른 모양이었다. 나는 휴대폰 불빛으로 머리맡을 살펴본다. 꺼두었던 전기장판에 불이 들어와 있다.


    "아, 엄마! 나 더운데~"


    막 문을 나서던 엄마가 발끈하면서 한소리 한다.


    "덥긴! 공기가 차구만. 감기 걸리려고."


    씨잉. 진짜 더운데. 나는 일단 잠자코 놔두기로 한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엄마는 안방으로 직행하지 않고 다시 내 침대로 걸어왔다. 내가 대충 다리 사이에 껴둔 이불을 쫙 펴서 다시 덮어주고, 등허리를 팡팡 손으로 친다. 자세. 자세! 너 이렇게 자니까 소화가 안 되는 거야. 나는 엄마 말에 '네에'하고 자세를 고친다. 새벽 세시에 갑자기 잔소리를 듣는 이 상황은 뭐람. 내 이부자리를 정돈해주고서야 다시 잠을 청하러 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휴대폰을 하다가, 나는 다시 전기장판을 끄고 잠들었다.


     와, 더워. 한겨울에 더워서 깨는 사람이 어디 있냐면, 여기 있다. 나는 이불 밖으로 이리저리 다리를 내놓다가 결국 더위를 참지 못하고 잠에서 깼다. 이상하다. 분명 전기장판은 끄고 잤는데. 습관처럼 머리맡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전기장판이 다시 켜져 있었다. 아, 엄마…. 엄마가 아침에 나가면서 또 전기장판을 켠 게 분명했다. 다시 끈 건 또 어떻게 알아가지고. 나는 전기장판을 다시 끄고 이부자리를 정리한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침 먹을 시간은 한참 지난 뒤였다.


    1층으로 내려가자 식당에서 뒷정리를 하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아. 한껏 말끝을 늘이며 다가서자 '깼어, 딸~' 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반겨준다. 뒤로 돌아 퉁퉁 부은 내 얼굴을 확인한 엄마가 내 차림새를 쓱 훑는다. 그 시선이 발끝에 닿으면, 엄마의 다정한 기상 인사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양말 신어, 양말!"


    벼락같은 잔소리와 함께. 가만있다가 혼이 나버린 내 안쓰러운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나는 짐짓 못 들은 척을 한다. 그러나 엄마는 포기하는 법이 없다.


    "밖이 이렇게 추운데 맨발로 다녀, 다니길! 빨리 가서 양말 신고 와."


    누가 들으면 영하인 바깥에 맨발로 나선 줄 알겠다. 여기는 서울에 비하면 따뜻한 남쪽이고, 그것도 실내다. 몸에 열까지 많은 내 기준으로는 실내복을 입어도 전혀 춥지 않다. 그러나 엄마에게 여기는 남극에 버금가는 곳임에 틀림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양말 타령을 하는 것을 보면. 나는 익숙하게 '이따가 신을게~'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엄마의 새초롬한 눈길이 닿지만 다년간 쌓아온 말 돌리기 스킬로 무마한다.


    엄마의 잔소리 퍼레이드는 끝이 없다. 공깃밥을 들어 옮기고 있으면 저 멀리서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말이 들려온다. 쟁반 위에 여러 개를 한 번에 옮겨도 안 된다. 가다가 엎으면 큰일 난다고. 설거지를 같이 하려고 서있으면 물이 뜨거워서 안 된다, 차가워서 안 된다 매번 거절을 당한다. 고무장갑을 끼고 있으면 그나마 그 잔소리 폭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엄마가 잔소리를 하면 나는 부러 인상을 쓰며 '아휴, 또 그런다!'하고 대꾸하지만, 사실은 그 말들이 싫지가 않다. 


    덥다는데 전기장판을 굳이 굳이 켜는 엄마, 양말이 답답한데 매번 양말을 신으라 말하는 엄마, 맨손으로 해도 된다는 데 꼭 장갑을 던져주는 엄마,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항상 물 온도를 맞춰주느라 여념이 없는 엄마. 잔소리가 많은 엄마. 그렇게, 날 사랑하는 우리 엄마. 


    엄마의 잔소리에는 나를 향한 걱정과 사랑이 가득 배어있음을 이제는 안다. 새벽 내내 마른기침을 하는 딸이 걱정되어 전기장판을 몰래 켜는 것이고, 빨개진 딸의 발가락을 보면서 양말을 신으라 하는 것임을. 틈만 나면 '엇, 뜨거워!' 하면서 화상을 입곤 하는 딸 때문에 뜨거우니 조심하라 이르는 것이고, 두 손이 부르틀까 싶어 찬물, 더운물에 손이 안 닿게 하려는 것임을. 엄마의 수많은 잔소리에는, 이렇게 나를 위하는 마음이 숨어 있음을.


    때문에 이제는, 그와 같은 말들에 다른 이름을 붙여주기로 한다. 잔소리 아닌 '사랑소리'로. 내게 자질구레한 말들이 아니라, 사랑을 남기는 말들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방을 슬쩍 본 아빠로부터 와다다 사랑소리가 쏟아진다.


    "방 불 켜고 써! 눈 나빠지려고. 어이구."


    아, 나는 흰머리가 잔뜩 난 할머니가 되어서도, 엄마 아빠에게만큼은 늘 염려스러운 어린아이일 게 분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바구니 속엔 사랑이 담겨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