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뜻 Mar 11. 2021

예쁘다고 해야하니

울딸은 항상 예쁜데


    측정 결과가 귀하의 평소 측정 결과와 매우 다릅니다. 체중계를 사용하는 새로운 친구가 있습니까?

    + 사용하는 새 친구가 있습니다
    + 당신 아니면 다른 친구가 사용하고 있습니까?


    기가 막혀. 나는 체중계에 적힌 숫자를 보고 한번, 핸드폰 앱에 뜬 메시지를 보고 한번 헛웃음을 내뱉었다. 본가에 있으면서 살이 조금 쪘다고 느끼긴 했지만 이 정도로 쪘을 줄은 몰랐다. 무려 6kg이나 쪘다. 딱 한 달 만에. 그 짧은 시간에 훅 불어서 온 내게, '헉, 무게가 평소랑 너무 다른데 너 맞아?'하고 묻는 어플의 질문에는 얼굴이 조금 빨개진다. 나는 이런 무례한 질문을 받으려고 비싼 스마트 체중계를 산 게 아닌데! 약간의 분노를 억누르면서 '본인이다'에 체크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맞다고.


    [6킬로나쪘네]

    [한달만에,,,] PM 6:07


    침대에 드러누워서 엄마에게 이 참담한 소식을 전했다. 조금 뒤 답장이 도착했다.


    [먹고 자고 결과인듯] PM 6:29


    너무 맞는 말이라 웃음밖에 안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본가에서 정말 먹고 자고만 반복했다.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 먹으라고 깨우면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는다. 들어와 다시 잠든 후 저녁 시간에 또 깨우면 다시 일어나 밥을 먹었다. 아빠는 끼니때마다 퉁퉁 부은 얼굴로 걸어 나오는 날보고 웃기 바빴다. 엄마는 내가 누워만 있으면 고개를 빼꼼 내밀어 물었다. 또 자? 그만 자.


    밤에는 엄마 아빠와 야식을 나눠먹었다. 메뉴는 치킨일 때도 있었고, 설탕을 솔솔 뿌린 튀긴 누룽지일 때도 있었고, 떡볶이일 때도 있었다. 과자는 늘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커피우유도. 매 끼니마다 식당 백반 수준의 밥을 먹고, 그 사이사이에도 간식을 빼먹는 법이 없으니 살이 안 찔 리가. 나도 먹으면서 살이 찔 것은 예감했다. 다만 이만큼이나 찔 줄은 몰랐던 것일 뿐이다.


    서울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오빠는 '어휴, 달덩이 다 됐네.' 하면서 킥킥거렸다. 뭐가 웃기냐고 으르렁대다가 같이 웃고 말았다. 거울 속에 나는 오빠 말처럼 보름달이 따로 없었다. 동글동글한 게 아니고, 둥글둥글한 보름달. 내가 봐도 좀 웃겼다. 나는 이리저리 거울을 살피면서 괜히 툴툴거렸다. 이 정도면 귀엽게 봐줄 만하네, 뭐.


    그래도 다이어트는 해야 했다. 딱히 미용 목적이 아니더라도 나는 몸이 무거워지면 그게 컨디션으로 곧장 드러나는 편이다. 평소보다 몸무게가 늘면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거나 허리가 아프다. 본가에 있는 동안 워낙 활동적인 일을 안 했던 터라 이곳에서는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한두 시간 산책도 곧잘 했던 내가 본가에 다녀온 이후로는 30분 걷기도 힘들어했다. 바닥을 친 체력도 끌어올려야 했고, 몸에 붙은 군살도 겸사겸사 없애야 했다. 나는 급찐급빠(급하게 찐 살은 급하게 빠진다)의 진리를 외치며,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그러나 한번 터진 입을 막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군것질거리를 쉽게 끊지 못했고, 역시나 커피우유를 입에 달고 산다. 본가에 있을 때에 비해 밥은 비교적 적게 먹으니 더디게나마 살이 빠지고 있지만, 정말 더디게 빠지는 중이다. 부어서 더 그래 보이는 거겠지, 싶던 얼굴도 이제는 그냥 전부 살이라는 걸 천천히 인정했다. 어휴, 이 달덩이를 어쩜 좋아. 저녁마다 거울을 보면서 한숨을 쉬는 날이 많아졌다.


* * *


    서울에 온 김에 안경을 새로 맞췄다. 시력이 전보다 더 나빠지기도 했고, 쓰던 안경이 워낙 오래된 거여서 교체해줘야 할 시기이기도 했다. 새 안경을 쓰고 나온 나는 얼른 카메라를 들어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후다닥 카톡을 켜 사진을 보냈다. 수신인은 엄마와 아빠였다.


    [뉴 안경!] PM 9:14


    엄마로부터 곧장 답장이 왔다.


    [예뻐] PM 9:14


    엄마다운 심플한 답장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마저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아빠와의 대화창을 확인했다. 카톡을 보내자마자 1이 사라진 아빠는 한참 답이 없었다. 나는 괜히 입을 삐죽였다. 뭐야, 왜 답장 안 해! 조금 서운했지만 시간도 늦었고 하니 별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뒤끝으로는 빠지지 않는 게 나라서, 아예 아무 말도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날 나는 아빠한테 카톡으로 쫑알쫑알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빠 안경 쓴 것두 이쁘다고 안해줬잖아여! 흥] PM 1:36


    타자가 조금 느린 아빠로부터는 그제야 천천히 답장이 왔다.


    [예쁘다고 해야하니 울딸은 항상예쁜데.] PM 1:39


    뭔가 뒤늦게 수습하는 감은 없잖아 있지만, 또 엎드려 절 받는 느낌도 있긴 하지만, 아빠의 무심하고도 다정한 대답에 절로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럼 그렇지. 아빠 눈에 내가 예쁘지 않을 리가!


    한 달 사이에 6kg나 찐 게 말이나 되냐면서, 빨리 원상복구 시켜놓겠다고 씩씩거리는 내게 엄마 아빠는 가장 먼저 밥 굶지 말라는 소리를 했다. 끼니 안 챙겨 먹으면 안 된다면서. 한 달을 데리고 살며 두 끼는 꼬박꼬박 챙겨 먹였던 딸이 그새 또 귀찮답시고, 살 뺀답시고 끼니를 거를 게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나는 밥은 굶지 않으마 호언장담을 했다. 끼니는 최대한 챙기되 양만 줄일 것을 약속했다. 물론 그조차도 쉽지가 않으니, 여전히 오동통한 채로 있지만.


    몸에 살이 잔뜩 찐 것만큼, 한 달 새 마음에도 살이 오동통하게 찐 게 분명하다. 본가에 머무르다 올라오니 전보다 더 여유로워지고 사랑이 풍족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앙상했던 마음에 살이 가득 차올라서, 그 어느 때보다 용감해지고 씩씩해진 나를. 나는 어쩐지 어딘가에 마음을 부딪혀도 퉁, 하고 가볍게 튕겨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 마음이 보다 둥글둥글해지고, 보다 푹신해져서. 그리고 그 살을 열심히 찌워준 게 나를 세상에서 누구보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와 아빠였음을 알고 있다.


    나는 근래 들어 친구들을 만나면, '요즘 너무 기분이 좋다', '행복하다'라는 말을 한다. 전에 없던 변화이다. 이전에는 누가 내 뒤를 쫓아오는 것 같아 마음이 급하고 초조했다면, 이제는 등 뒤에서 나를 힘껏 밀어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 여유로운 것 같다고. 그건 아마 본가에서 지내는 동안 함께 떡볶이를 먹으며 아빠가 해주었던 말들, 누룽지를 튀기며 엄마가 해주었던 말들 덕분인 것 같다. 매 끼니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하나씩 해주던 엄마의 마음, 밥을 남기면 한소리씩 하면서도 대신 먹어주던 아빠의 마음, 그것들 덕분인 것 같다.


    보름달이 된 내 얼굴도, 언젠가 볼품없이 말랐던 내 마음도 사랑으로 예뻐해 주어 고맙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너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마 언제나 나를 향해 두 팔 벌려 서 있을 것임을 안다. 내가 빈털터리로, 혹은 흙이 잔뜩 묻은 맨발로 집에 들어서도, 언제나 가장 따스한 품으로 날 안아줄 것임을 안다. '어서 와'하고 말하며. 갓 지은 밥을 내 앞에 놔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