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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Feb 23. 2021

나의 무책임한 위로를 사과해

너에게 건넸던, 그리고 나에게 건넸던




   친구가 선물해준 책에서 그런 문장을 보았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행동을 넘어선 말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하는 문구였다. 책임질 말만 하라는 이야기는 이전에 TV 프로그램이나 여러 서적에서 충분히 보았는데도,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이 문장을 가슴 깊이 새겨 넣으며 다짐했다. 사려 깊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자고 말이다. 대다수가 귀에서 죽겠지만, 어떤 말은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가 살게 될지도 모르므로.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다짐의 효력이 오래가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를 험담하거나 탓하거나 미워하는, 그런 날카로운 말들은 물론 덜해졌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내 말의 책임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때로는 점점 무책임한 말만 늘어놓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괜찮아.'라는 말과 '잘 될 거야.'라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실수를 한 친구에게, 걱정하는 친구에게,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위로'라는 이름을 붙여 가벼운 말들을 건넨다. 지금도 괜찮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때때로 그런 내 말은 어쩐지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친구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슬픔의 감정을 담아 이야기를 하는 데도 성의 없게 들리곤 다. 나는 그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어쩐지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이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괜찮다'는 말이나 '잘 될 거야'라는 말에 주술적인 힘 같은 게 걸려있어서, 내뱉음과 동시에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우리를 둘러싼 험난한 상황들도 정말 괜찮아진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사실은 그런 말들이 조금의 위로도 되지 않을 만큼 괜찮지 않은 날들이 너무나 많고, 앞으로 잘 될 거라 보장할 수 없는 날들은 그보다 더 많음을. 그럼에도 마땅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결국 또 비슷한 말을 꺼내게 될 뿐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속이 상한다. 세상에 많고 많은 단어들 중에, 그 마음을 위로할 단어 하나 쉽게 끄집어내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 그래서 또 가벼운 위로를 던지고 말 때.


    나는, 마음에 살아남는 위로를 건네고 싶다. 귀까지만 겨우 닿고 죽어버리는 위로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에 살아남아 그의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위로를. 그러나 이를 위해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정확히는, 앞으로도 모르고 싶다. 내가 그걸 알게 되는 순간에는 그것만을 또 위로랍시고 건네게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어한다. 같은 모양의 아픔이나 슬픔은 없으며, 꼭 퍼즐처럼 올록볼록 다 다른 모양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하나의 퍼즐 조각만을 들고 억지로 붙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조금 더 샅샅이 찾아보아야 한다. 그 아픔에 잘 들어맞는 위로의 조각을.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 이름 모를 이들이, 그리고 나 자신이, 때로는 내 무성의한 위로에 마음이 허기졌을까 겁이 난다. 그들에게, 혹은 과거의 나에게 무책임한 위로를 건넨 것을 사과한다. 정말 미안하다고. 조금 욕심내자면 그래도 함께 아파한 마음만은 진심이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곁에 가까이만 있다면, 언어만이 우리의 통로가 아니라면, 나는 기꺼이 두 말 없이 당신을 안아주었을 거라고. 백 마디 말보다 더한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이제부터 나는 책임질 수 있는 위로를 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을 웃게 할 수 있는 말보다, 내 앞의 한 사람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말을 하기 위해 더 고민하기로 한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아픔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기로 한다. 퍼즐을 잘 맞추기 위해서는 퍼즐의 전체 그림을 꼼꼼히 관찰하면 되니까. 잔뜩 어그러진 퍼즐 조각들 사이에서도 언젠가는 당신에게 꼭 맞는 위로의 퍼즐을 찾아낼 사람이 나임을, 당신이 알아줄 때까지. 그리고 그것이 또, 당신에게 위로가 될 때까지.




* 이 글은 '괜찮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의 가치를 무시하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제가 화자인 경우만을 고려한 글임을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디 누군가를 향한 위로를 망설이게 하는 글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편하게 위로해주세요. 여러분의 언어는 여러분을 타고 더 단단해지니까요! 항상 다정하고 따스한 여러분들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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