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뜻 Feb 16. 2021

그건 내 조각, 이것도 내 조각

당신이 내 전부를 모르더라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나를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


    사람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밝은 사람 같다거나,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거나, 행복한 사람 같다는 말.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마음 주머니에 그 음절들을 하나하나 담아 넣는다. 도토리를 발견한 다람쥐처럼 알뜰살뜰히, 잔뜩 신나 하면서. 나중에 마음에 허기가 질 때마다 꺼내먹을 생각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주머니가 가득 찰 즈음이면, 주워 담던 손을 멈칫하게 된다.


    이걸 내가 가져가도 되나? 그런 말들이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난 사실 밝은 사람도 아니고, 사랑이 충만한 사람도 아니고, 마냥 행복한 사람도 아닌데, 이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문득 고민하게 된다. 내가 나를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은 그와 함께 찾아온다. 사실 나는 남들에게 비치고 싶은 내 모습을 흉내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억지로 밝은 부분만을 도려내어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느 날은 그래서 혼란스럽다. 지금 우울한 나 자신과 내가 꾸며내는 '밝은 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느라. 직전까지 산뜻한 기분으로 글을 쓰던 나는 사라지고 무력한 내가 찾아올 때, 나는 꼭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에게 보이기 좋은 모습만 드러내는 스스로가 못나 보인다. 누구보다 진실한 글을 쓰고 싶어 하면서 삶의 부정적인 면들은 꽁꽁 숨기려고 하는 나. 남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하면서 나의 약점은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나. 보기 좋은 미사여구 속에 자신을 감추는 나.


    하루는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친구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사람이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는 거지. 넌 뭐 우울해야만 하는 사람일까 봐?"


    맞아. 난 우울해야만 하는 사람이 아닌데. 왜 우울한 내가 진짜 나라고만 생각했을까.


    내 모든 면들을 조각조각 내서 살펴보면, 어느 조각은 빛을 잘 담는 굴곡을 가졌을 것이고 어느 조각은 그늘진 면만 가졌을 것이다. 어느 조각은 그 끄트머리가 뭉툭하고, 어느 조각은 날카로울 것이다. 또 어느 조각은 커다랗고 어느 조각은 가루처럼 미세할 것이다. 그런 조각들을 맞추고 맞추다 보면 완성되는 게 바로 나란 사람이다. 어느 조각도 나라는 존재에서 뺄 수 없고, 어느 조각도 내게서 거짓인 것은 없다.


    결국 밝음도, 사랑도, 행복도 내가 가진 수많은 조각들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억지로 흉내 내서, 또는 훔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저 많고 많은 조각 중 '이건 제가 가진 예쁜 조각이네요.'하고 자랑하고 싶은 조각들일뿐이다. 밝은 나도, 사랑을 주고받는 나도, 행복한 나도 거짓이 아니다. 그러니 타인이 내게 남겨준 다정한 말들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모든 걸 담기에 내 주머니가 너무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더 큰 주머니를 가져오면 된다. 서둘러 주머니 입구를 닫지 않아도 괜찮다.


    우울도 불안도 내가 가진 하나의 조각이라고 한다면, 나는 다만 그 조각들은 조금 더 내 안에서 다듬을 필요를 느낀다. 혹여나 무심코 다루다 날카로운 면에 내 손이 베일지 모르니, 또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으니 아주 잠깐은 품 안에서 살살 다듬어주기로 한다. 다만 숨기지는 않을 것이다. 마냥 예쁜 조각만 내내 자랑하기보다 사실은 저도 이런 조각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덤덤히 말하기로 한다.

  

    내 모든 면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말해왔는데, 이제는 나의 조각조각난 면을 사랑해주는 이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밝음이든 사랑이든 행복이든, 혹 우울이든 불안이든. 그들에게 내 조각은 어떤 조각이든 너무도 작고 가벼울 텐데, 놓치지 않고 바라봐주는 그 시선이 고맙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남겨주는 언어들이 내 조각의 끄트머리를 다듬고 다듬어준다. 모서리와 모서리를 알맞게 붙여준다. 밝음의 부스러기들을 모으고 모아 더 밝은 나를 만들어주며, 사랑의 조각들을 모으고 모아 사랑스러운 나를 만들어준다.


    나는 이제 그들이 내 전부를 모른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내 전부를 모르더라도, 나를 아껴주는 이들이라고 말하기로 결심했다. 내 작은 부분에도 마음을 나눠주는 다정한 사람들이라고. 물가의 작은 돌멩이를 보고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주는 따뜻한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참,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쏟아지는 것들을 사랑하기로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