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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Mar 02. 2021

윤지에게

어떤 형태로든 빛이 나는 너에게




    언젠가 널 보면서 꼭 진주처럼 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하얗고 동그랗고, 반질반질 빛나는 게.


    아무리 나라도 친구에게 '너는 진주 같아.'라는 말을 직접 건네기에는 면역이 없어서, 생각만 하고 말았지만. 아마 너는 내가 이 이야기를 꺼냈다면 '엥, 갑자기?' 하고 웃음을 터트리거나, 뭔 소리 하냐면서 머쓱해했겠지. 나는 어쩐지 보지 않아도 그 장면이 그려지고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그럴 만도 하지. 함께 한 시간이 결코 짧지 않으니까 말이야.


    스무 살 때 새내기 새로배움터라는 행사에서 처음 만났잖아, 우리. 서로 다른 조였는데 우연찮게 바로 옆 조였었고. 그때 사회자의 말에 호응을 하던 네가 웃긴 말을 해서 내가 널 쳐다봤고, 너도 날 쳐다봤어.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었는데도 그때 서로의 팔을 막 때리면서 웃었는데, 혹시 기억해? 워낙 찰나였다 보니 기억을 못 할 것 같아. 그 순간이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이유는, 아마 그때 그런 감상이 들어서일 거야. 와, 얘는 웃는 게 반짝반짝 빛난다. 그 비슷한 생각을.


    우리는 같은 학교 방송국원이 되었고, 2년이란 시간 동안 편집실에서 서로의 시간과 고통을 공유했지. 그 사이에 낀 어느 여름에는 둘이 같이 멋진 영화 한 편을 만들어냈고 말이야. 나는 원래 내 창작물에 좋은 수식어를 붙이는 성격이 못되는데, 우리 함께 만들었던 그 영화에 대해서는 항상 뻔뻔한 태도로 말하게 되는 것 같아. 멋진 영화, 잘 만든 영화라고. 내용이나, 촬영 구도나, 편집에서 좀 어색하고 엉성한 부분은 있겠지. 그래도 참 멋진 작품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우리의 스물한 번째 여름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너무 귀한 경험이었다 생각하고 있어. 그 시간을 계기로 우리는 보다 가까워졌으니까. 같이 방송국을 졸업하면서 눈물바람을 쏟기도 하고, 봄이면 같이 연례행사처럼 서울숲 나들이를 가고, 네가 교환학생을 가고, 또 돌아오고, 인턴을 하는 그 모든 과정과 시간까지 지켜보았지.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나니까 세상에, 우리 벌써 졸업한다 소리가 나오는 거야.


    진짜로 졸업을 하는 날이 오네, 우리가. 스무 살에 만난 우리가 벌써 스물다섯이 되고, 학교 이야기가 아니라 취업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나는 아직도 면접이니, 자소서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를 보면 낯설다는 생각을 해. 내 앞의 너는 새내기 행사에서 꺄르륵 웃던 그때의 너랑 꼭 같은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다고.


    엊그제 너는 한 장의 무드등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냈잖아.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거 완전 데일리템이라고. 선물 받기 전 밤에는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라고. 네가 사진을 보내줘서 곰곰이 떠올려봤는데, 그게 2년 전 네 생일에 선물한 물건이더라고. 문득 고맙다고 생각했어. 2년 동안 내가 선물해준 것을 꾸준히 아껴준 너에게. 그리고 또 생각했지. 은은하게 빛이 나는 그 유리알이, 또 너를 닮았다고.


    살다보면 가끔 앞길이 어둡고 막막하게 느껴져.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길도 종종 컴컴하고, 두렵게 느껴지지. 나는 그럼 그 자리에 멀뚱히 서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곤 했어. 이 상태로는 도무지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 어두컴컴한 길 한가운데서 나는 내 발밑도 보이지 않으니까. 어디에 서있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래도 윤지야. 그런 어둠 속에서 나는 너를 봐. 반질반질 빛나는 너를, 반짝반짝 빛나는 너를, 은은하게 빛나는 너를 봐. 네가 너도 모르게 뿜어내는 그 반짝임, 그 빛깔을 봐.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 이제 내 곁에는, 꺼지지 않을 빛이 있음을 아니까. 네가 같이 걸음을 아니까.


    너는 항상 빛이나. 너무 뻔한 말 같지만 정말 그래. 너는 진주일 때도 있고, 무드등일 때도 있고, 가로등일 때도 있고, 그냥 별일 때도 있지. 매번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 빛의 색깔과 크기는 조금씩 변하지만, 너는 항상 밝아. 그렇게 항상 빛나.


    그러니까 잊지 마. 네가 머리맡에 두고 자는 무드등의 빛만큼이나 아름다운 빛이 너에게도 있다고. 그 작은 물건이 없을 때가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난다 말했던 것처럼, 너 또한 네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크고 소중하게 남아있다고.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빛나는 널 발견하고 말 거라고.


    윤지야. 내내 빛나 주어서 고마워. 또 오래 함께 걷는 길을 밝혀주어서 고마워. 나는, 가끔 어둡더라도 네 빛을 돋보이게 하는 어둠이 될게. 종종 밝더라도 네 빛과 어우러지는 그런 빛이 될게. 힘내서 같이 걷자. 어두운 밤길이라도. 끝이 어딘지 모를 길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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