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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ep 12. 2018

서른의 사춘기 II

잠 못 이루던 2017년 여름, 나의 인생은 왜 행복하지 않은거지?

그렇게 나는 독일에서 직장인이 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인격 좋으신 상사분과 동료들을 만난 덕택에 많은 사람들의 퇴사 이유 중의 하나인 사람 대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고 비록 세금을 많이 떼긴 하지만 보수도 전혀 나쁘지 않았다 (그 때는 돈을 의미있게 잘 쓰는 방법을 몰라서 꼭 필요한 돈 아니면 대부분 저축을 했다.). 독일의 수준 높은 워라밸이야 워낙 잘 알려져 있기도 하고. 업무 측면에서 얘기하자면 대부분이 독일 사람인 연구소에서 모국어가 아닌 독일어와 씨름을 하며 공동 논문 및 독일 정부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주는 보람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나면 그 것에 대한 기쁨보다는 다음 할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먼저 밀려왔다. 무엇보다 날 괴롭게 했던 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단 하루도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날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이 즐겁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나의 직장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유일한 방법은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퇴근하는 길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하루는 얼마나 나빴는지에 대해 떠드는 것이었다. 



그 날도 여지없이 퇴근하는 길에 친구에게 전화해 내일 출근하기 싫다고 징징 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친구는 갑자기 나처럼 한숨을 쉬며

 그래, 너의 맘 이해해. 근데 나 한 가지만 이야기할게. 너 지금 똑같은 그 말을 몇 개월 째 되풀이하고 있는지 알아?

라고 물었다(착한 이 친구도 참다가 참다가 터진 것이다). 그 말은 내 머리를 아주 강하게 내리쳤다. 

이런 직장 생활이 얼마 있으면 끝날 일이 아니라 이제 매일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느꼈다. 앞으로 이어질 직장 생활이 겁이 났다. 이렇게 계속 일하며 살 수 있을까? 



그러던 2017년 8월, 침샘에 작은 이상이 생겨 한국에서도 안해본 전신마취 수술을 독일에서 하게 되었다. 당시 수술 후 5 일동안 입원했던 병원에는 무선인터넷이 안 되었었는데 그 덕분에 병원 신세를 지며 오랫동안 혼자만의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 나이 스무살 이후로는 부모님 포함해 주위 사람들에게 동요되지 않고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내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오로지 나에게 있었기 때문에 나는 늘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데 득과 실을 비교하고 깊게 고려할 시간을 거쳤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신중하게 선택해서 독일에 오게 된 것이고 계속 여기에 사는 것도 나의 결정이었는데 나는 왜 지금 행복하지 않은걸까? 


그러다가 나는 겉에서 보자면 나름 특별한 인생을 살아 왔지만 너무 한 길만 내 길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온 나머지 그 옆에 잘게 나 있던 작은 길들의 가능성을 놓치면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어쩌면 비록 울퉁불퉁한 돌덩어리길일지는 몰라도 그 작은 길들로 인도하는 작은 화살표가 나의 20대 중간 중간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신호들을 무시한 채 내가 믿고 있던 사회가 닦아 놓은 깔끔한 큰 대로로만 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래도 다행인건 그 큰 대로의 끝에 수백만 달러나 엄청난 명성이 있을거라는 허영심까지는 없었다.).


2017년 여름, 그 큰 대로 중간에서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을 때, 비로소 내가 오길 바라고 있던 그 가짓길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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