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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ep 12. 2018

서른의 사춘기 III

WANNA LIST

하지만 그 작은 길들의 정체가 매우 불분명했다. 또 큰 길만 보고 달려온 터라 그 일이 아닌 다른 일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겠고 그게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20 대 후반에 새로 시작할 생각을 하니 덜컥 겁이 났다. 



어쨌든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후 나는 퇴원을 했다. 그리고 편한 나의 집으로 돌아왔지만 내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몇날 밤을 설쳤다. 10대 때 겪지 않은 사춘기가 서른이 다 되어서야 발현이 되는 것 같았다. 머리만 대면 딥슬립이었던 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에 며칠 잠을 설치다보니 원래 좋아하지도 않던 일에 대한 집중도는 더 떨어졌다. 


그러다가 문득 지금까지도 열렬한 팬인 꿈 전도사 김수영 언니와 자아실현 코치 알렉스 씨가 추천하는 방법이 생각나 책상에 앉아 내가 죽기전에 한 번이라도 해 보고 싶은 일 (What I wanna do)을 적어 보았다. 새로운 언어 배우기, 채식 식단 유지하기처럼 일상 생활에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들을 그저 떠오르는 대로 적었다. 그것 외에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What I wanna be), 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싶은지(What I wanna have)에 대해 써 보면서 내 나이 서른에 생애 처음으로 나에 대한 깊은 관찰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세 가지에 WANNA LIST라는 이름을 붙였다. 버킷리스트라는 단어는 사뭇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일"의 거창한 느낌이라 그것보다는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고 싶어 다른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다 적어보고 나니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 속에 흐트러져 있던 나의 자아들이 월요일 아침 학교 운동장 조회시간처럼 한 곳에 옹기종기 모인 느낌이랄까. 많은 목록에서 공통적으로 눈에 띄는 점은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나는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생동감 있게 사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하나를 끈질기게 하는 성격은 못된다. 사회적 성공보다는 내면의 행복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렇게 그동안 외면해왔던 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면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날 밤 달빛보다 더 빛나는 종이 한 장에 오랜만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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