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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ep 13. 2018

서른에 순례자의 길을 걸은 이유

순례길에서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바로..

포르투갈 순례길(15일)

WANNA LIST를 적은 후 하나 하나 이뤄가면서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WANNA LIST의 꿈들을 다 이루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의 동기부여를 어떻게 해야 할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내가 찾은 답은 이거였다.

무서움과 망설임은 무지에서 나온다. 


분명히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치도 못한 흥미로운 일들이 세상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알게 된다면 나는 내 WANNA LIST를 더 채워넣고 지금처럼 계속해서 나를 성장시키며 살 수 있겠다는 믿음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알 수 있을까?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얘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오래 대화하며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작게는 나의 WANNA LIST를 업데이트하고 크게는 앞으로 살아갈 나의 인생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싶었다. 그런 곳이 있을까?

있다. 순례자의 길. 

그래, 순례길을 걸어야겠다. 순례길에서는 (가끔 가다 있는 하루에 40km씩 걷는 초인들을 제외하고는) 보통 비슷한 루트로 오랜기간 함께 걷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다르게 더 가까이에서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순례길이 더 특별한 이유는, 모두의 경우는 아니겠지만 그 길 위의 많은 분들이 인생의 다양한 고민 그리고 어떤 경우 상상조차 안되는 어려움을 이유로 걸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서로의 아픔과 고난을 더 잘 이해해 준다는 것이다. 또 내 나이 또래의 경우 나처럼 퇴사를 직전에 두거나 혹은 이미 퇴사를 한 사람들이 많아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 더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살짝 앞서나가거나 살짝 한걸음 뒤로 물러나 걸어도 실례가 되지 않는 그 곳. 


나는 제일 유명한 프랑스길 대신에 포르투갈 길을 걷기로 했는데 아직 프랑스길보다 덜 상업적이고 순례자 수도 적은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냥 포르투갈 길이 더 맘에 끌렸다. 살다보면 이유없이 끌릴 때가 종종 있고 나는 그 끌림을 믿었다. 


그렇게 나는 발리에서 돌아온 며칠 후 리스본과 포르투 여행을 일주일 정도 하고 나서 포르투(Porto)에서 받은 첫 번째 순례길 스탬프를 시작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지나 묵시아(Muxía)와 피스테라(Fisterra)에 이르는 350km의 길을 15일에 걸쳐 걸었다. 


순례길 위에서 만난 천사 같은 사람들의 주옥 같은 얘기들과 인생 경험담은 나를 발리에서보다 더 한 단계 성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스페인의 한 슈퍼마켓 앞에서 휴대폰을 도난 당했다가 다시 찾은 기가 막힌 사연(스페인 지역 신문에도 실린 그 사연)은 순례길을 더 다이나믹한 경험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 얘기는 차차 풀기로.

혼자 그리고 함께 순례길을 걸은 친구들


그리고 순례길 마무리 하루 전, 가르시아 한 지역의 하늘과 곱게 맞닿은 한 길 위에서 나는 결심했다. 이탈리아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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