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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ep 13. 2018

피렌체로 7주간 떠나게 된 건

나를 가슴 뛰게 만든 바로 그 것

이탈리아 피렌체(7주)

이렇듯 피렌체에 가게 된 건 상당히 즉흥적인 결정에서였다. 

순례자의 길에서 가장 깊은 대화를 했던 친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 N이였다. 포르투에서 알게 된 콜롬비아 친구 소개로 만난 N은 대화 중간 중간에 이탈리아어를 섞어가며 얘기했는데 나는 그의 이탈리아어를 듣는 것을 즐겼다. 이탈리아어가 가진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챠오(Ciao:안녕), 삐꼴라(piccola:작은), 레오네(leone:사자) 등을 들으면 내가 작은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들의 예쁜 언어가 마치 어린이들한테 하는 말처럼 들렸고 보통 어린이들에게 하는 말은 애정이 담긴 말들이 많지 않은가. 그래서 길을 걸으면서 보이는 단어들을 이탈리아어로 어떻게 얘기하는지 계속 귀찮게 물어보면서 함께 걷었다. 뭐 나도 영어를 가끔씩 가르쳐 주었으니 괜찮겠지. 그렇게 그와 함께 걷다가 다른 사람들을 만났는데 N은 본인이 초반부 순례길을 같이 했던 분이라며 다른 이탈리아 60대 남자분 세 분을 소개해 주었다 (그 중 한 분은 내가 까미노 파파라고 부를 만큼 친해지기도 했다). 그 분들은 세 명의 오랜 친구분들이고 이미 여러 번 순례길에 다녀오셨던 분들이셨다. 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한 왠지 모를 애정이 늘 있는 터라 이 분들과 중간 중간 만나면 너무 반가워 함박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지난 순례길 위를 함께 한 사람들과 따뜻한 포옹을 하며 복잡 미묘한 감정을 함께 나눈다. 그렇게 묘사하기 힘든 감정에 휩싸여 대성당 앞에서 한참 있다가 2시간 정도를 기다려 순례길 증명서를 받은 후에 저녁이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숙소에 와서 샤워를 했다. 같이 걸은 사람들 중 나 혼자만 그 다음날부터 피스테라로 여정을 더 이어갈 예정이었고 나머지 분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를 여행할 계획이 있던 터라 우리는 기쁨과 아쉬움의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저녁 8시에 대성당 앞에서 나와 N 그리고 체코 친구 V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세 이탈리안 브라더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저녁 7시에 시작한 향로 미사를 보러 가셨는데 약속된 8시가 지나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솔직히 나는 그 전 날 순례길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가 잠을 설쳐 4시간 밖에 못 잔 상태였고 25km를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 한 후 다시 무거운 짐을 들고 증명서를 받으려 2시간을 서 있다가 샤워와 빨래(옷이 몇 벌 없기에 순례길에서 매일 빨래하는 것은 필수다)만 하고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나온 상태라 몸과 마음이 너무나 피곤했다. 그 짧은 기다림의 시간조차도 너무 피곤해 아 그냥 혼자 밥 먹으러 갈까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렇게 20여 분 정도가 지나고 대성당에서 쏟아져 나오는 순례자 무리 속에 저벅저벅 걸어나오는 이탈리안 브라더스가 보였다. 다시 그들을 보니 또 반가워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도 밀려오는 피곤함에 나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덧 우리 앞으로 오신 3분 중에 한 분이 향로 미사에 대해 다른 두 분과 N에게 물론 이탈리아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그 순간 강력한 끌림을 느꼈다. 

그 분이 향로 미사에서 느꼈던 감동은 그가 입으로 내는 소리 뿐만이 아니라 섬세한 눈빛, 표정 그리고 손가락 하나하나 살아 있는 제스쳐로 표현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소리는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말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넋을 잃고 바라본 짧은 2분이라는 순간 동안 나는 피곤함을 완전히 잊고 이탈리아어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는 것이야 원래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이라는 특별한 장소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 날 저녁 나에게 이탈리아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 용솟음쳤다. 함께 식사를 한 후 우리는 따뜻한 포옹과 함께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며 헤어졌다. 


나는 그 다음날 다시 혼자가 된 쓸쓸함에 순례길 첫째날보다 심적으로 더 버거운 길을 걸었다. 순례길 친구들이 그 날 아침부터 지속적으로 Buen Camino의 기운을 보내주었지만 나에게는 산티아고 도착 후 다음날 혼자 걸은 20km의 길이 포르투갈에서 36km를 걸은 날보다 훨씬 힘겨웠다. 


그래도 다시 등산화 끈을 질끈 묶었다. 

나의 마지막 도착지인 피스테라에 도착하기 하루 전 날, 갑자기 생각난 god의 "길"을 들으며 독일 집으로 돌아가서 할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장 내일 모레 돌아가는 데 가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 지 확신이 서는 게 없었다. 물론 이것 저것 벌려 놓은 일이 있긴 했지만..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이 곡을 세 번째 반복해 듣는 순간 갑자기 내 안에서 부름이 들렸다.


이탈리아에 가야겠다. 


이탈리아에 가서 배워야겠다. 그들의 언어와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이탈리안 요리를. 


생각해보니 내 WANNA DO LIST에 "이탈리아 요리와 와인 배우기"가 있었다(리스트 작성 시 언어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추가가 된 격). 언젠가 배울거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높은 우선순위가 아니었기에 사실은 조금은 미뤄놓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그 길에서 WHY NOT NOW?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기로 했다.


아직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시는 피렌체여야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게 안 봐도 뻔하지만 내가 가게 된다면 거기는 피렌체여야 했다. 


그래서 독일 도착 다음 날, 3주 후에 날아갈 피렌체 행 비행기표를 끊었고 현지 어학원 4주 이탈리아 랭귀지 코스와 쿠킹클래스(전문 요리사 과정은 아님) 등록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피렌체로 가 이탈리안 문화에 빠져 들었다.


30년 넘게 한 곳에서 이탈리아어를 가르쳐 오신 나의 선생님과 
뇨끼(Gnocchi: 이탈리안 감자수제비) 만드는 과정
너무 즐거웠던 이탈리안 쿠킹클래스



(피렌체에 머무르던 중 나의 직장 상사분이 프로젝트 승인이 났다는 소식을 전하시며 독일로 돌아오면 회사로 돌아오겠냐는 제의를 이메일로 전해오셨다. 나를 신경 써 주시고 인정해 주신다는 점에 너무나도 감사했고

돌아갔을 때 내 자리가 있다는 것과 다시 내 생활을 받쳐 줄 경제활동을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내가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고사의 답장을 써 보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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