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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Apr 19. 2019

더 아픈 손가락은 분명 있다

- 때론 더 아픈 손가락이고 싶었다


"너희 오빠 승진했단다."


한참 업무를 보던 중 엄마의 메시지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추었다.


"잘됐네요.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직접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요즘 승진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내현실에 쉽사리 오빠에게조차도 먼저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다.


반면 메시지를 보낸 엄마는 매우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오빠의 승진이 뭔가 자신의 성취가 된 마냥 행복해하셨다.


현재 딸이 승진에 연속 물을 먹고 엄청 속이 쓰리다는 사실을 전 알지 못하신 채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와 연년생이었던 오빠는 엄마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자식이었다.


늘 오빠만 좋아한다며 투덜거리는 나에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냐며 내 열 손가락을 직접 다 깨물어 보이시는 장면까시현 보이셨지만, 그날 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열 손가락 중 유난히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빠와 나는 같은 엄마의 뱃속에서 나 얼굴이 약간 닮았다는 공통점 외에는 닮은 구석이 별로 없는 남매였다.


우린 사이좋지만 무심한 남매사이였다


오빠는 신생아 시절을 빼고는 평생을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을 가지고 살았던 반면 나는 그 시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작은 키에 살집이 있는 통통한 몸로 삶을 살아왔다.


성격 또한 확연히 달랐다.


남자치고는 깔끔하고 예민한 타입이었던 오빠와는 달리 나는 여자치고는 무던하고 털털한 성격이었다.


그런 오빠가 엄마의 더 아픈 손가락으로 등극한 건 아마 몸이 약한 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체질이라는 것이 있는지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곳에서  생활했음불구하고 오빠는 어린 시절부터 이상하리만큼 잔병치레가 잦다.


툭하면 원인 모를 고온에 시달리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었다.


반면 나는 감기나 소화불량은 연중행사 정도 될 만큼 건강한 체질이었고  택시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했음에도 작은 타박상을 얻었을 뿐 무난한 시을 보냈다.


그렇기에 엄마의 시선은 언제나 오빠를 향해 있었다.

아프면 아파서, 아프지 않으면 다음에는 또 어디가 아플까 싶어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까지도 엄마는 오빠에 대한 걱정을 쉬지 않고 계시는 편이다.



그런 상황 때문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관심을 끝없이 질투하고 갈구했었다.


"왜 오빠만 줘?
 오빠 입만 입이고 나는 입이 아니야?!"



명절날 노릇하게 운 전을 부지런히 오빠 으로 밀어 넣 엄마를 본 순간에도 그랬고, 가족과 함께 떠난 대만 여행에서  오빠의 승진을 소원으로 적어 날리는 엄마를 본 순간에도 그랬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그러셨다.


"너는 알아서 잘 먹잖아.  

너는 알아서 잘하잖아. 그래서 걱정이 안 돼."


나를 믿는 엄마의 솔직한 심정이셨겠지만 어린 시절 제일 눈물 나는 꿈이 오빠에게만 잘해주는 엄마를 보는  꿈이었다는 걸 엄마는 과연 아셨을까?



막상 아이를 낳고 이제 엄마가 되어보니  아이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참 모르는 것들이 많다.


평소 낯가림이 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의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높은 곳을 서슴없이 올라갈 때나 모르는 아이의 손을 덥석 잡을 때면 자식이니 다 안다는 생각이 큰 착각임을 깨닫는다.


아마 엄마도 삼십 년을 넘는 시간 동안 나의 엄마 노릇을 하셨지만 나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계셨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 아픈 손가락인 오빠를 더 어루만지셨을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때로는 더 아픈 손가락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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