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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May 24. 2019

이런, 결혼기념일 이벤트

오늘은 남편과 내가 부부가 된 지 4주년이 되는 결혼기념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정신없이 결혼식을 치르던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네 번째 기념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 기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버렸다.



원래 연애 때부터 이벤트나 기념일에 무딘 나와 남편이었지만 남편은 오늘도 여지없이 나에게 가지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었다.



좋게 말하면 욕이 없는 성격인 것이고 현실적으로 말하면  남편 돈이 곧 내 돈인데 굳이 돈을 써서 뭐하나 싶은 생각에 매년 그렇듯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남편은 뒤끝 넘치는 내가 무서웠는지 꽃이라도 보내줄까라고 물었지만 이제까지 꽃을 별로 받아본 적  나는 먹지도 못하는걸 뭘 주냐며 됐다고 쿨하게 답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르는 나의 서운함을 대비한 것인지 남편은 퇴근길에 제과점에 들러 작은 케이크를 사 가지고 왔다.



촛불을 하나만 할걸.. 후회가 된다


그리고는 네 개의 촛불을 케이크에 꽂았다.


요즘 생일 축하 놀이(케이크 모형에 촛불을 꽂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우리 딸만의 놀이)를 좋아하는 네 살 딸이 신이 나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앞에 놓인 촛불을 호~ 하고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흥이 과했던 것이었을까



호~하고 촛불을 끈 딸아이가 얼굴을 든 순간 옆에 꽂혀있던 촛불이 딸아이의 머리에 붙어버렸다.


놀란 딸아이가 울면서 머리카락을 흔드는 탓에 불꽃이 아이의 볼을 스쳤고 결국 딸아이의 뽀얀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다행히 옆에 앉은 남편이 서둘러 아이의 머리에 붙어버린 촛불을 손으로 잡아 껐지만 맞은편에 앉은 나는 순간 너무 놀라 잠시 얼어버렸다.


남편의 놀란 목소리와 아이의 울음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물수건을 만들어 아이의 볼에 대었지만 이미 아이의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살짝 물집이 잡힐 기미가 보였다.


결국 남편과 나는 우선 아이를 달래 놓고는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열을 식히는 차가운 거즈를 붙이고 경과를 좀 더 지켜보기로 했지만 흉이 질지도 모르니 외과 진료를 한번 받아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응급실을 나오는 순간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별일 없을 거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남편은 케이크를 사 와 촛불을 켠 자신을 원망고 나는 그 순간 재빨리 대처하지 못하고 얼어버렸던 나를 원망했다.



내일이 되어봐야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남편과 인생의 파트너가 되기로 결심했던 4년 전의 오늘처럼, 우린 아직도 그 약속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것 같아 그 어떤 기념일 이벤트보다도 마음이 찡다.



"바다를 닮은 부산 남자와 인천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동안 서로가 가지고 있던 쓸데없는 아집과 편견을 버리고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결혼을 위해 새겨 넣었던 그때 그 청첩장의 문구처럼 영원을 약속했던 4년 전 오늘의 약속을 평생 동안 잊지 않고 살 수 있기를..

아이의 상처가 흉 없이 아물길 바라는 오늘의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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