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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Jun 06. 2019

그날, 왜 지하철역 안을 서성였을까


한참을 지하철역 승강장 벤치 위에 앉아 있었다.


마침 휴대전화의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은 터라 무언가 시간을 때울만한 것이 없을까 싶어 가방을 뒤적이다가 늘 가지고 다니는 노트 하나와 펜을 꺼내 끄적끄적 못 그리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후 네시. 한참 그날의 업무를 하나둘씩 마무리할 시간이었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지하철 승강장 벤치에 앉아있는 일은 흔치 않은 일상이었다.






그날은 회사 본점에 가는 날이었다.


우리 회사기획과 인사 관련 부서가 있는 본점과 곳곳에 나뉘어 있는 몇 개의 지점으로 이루어져 있는 회사였는데 우리 지점에서 본점까지의 거리는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에 있었다.


그날은 대리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사에 제출한 제안서를 발표하는 날이었는데 늦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사무실을 나선 탓에 생각보다 일찍 회사 근처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지하철편의점에서 커피를 하나 사들고는 무작정 승강장 안에 있는 벤치 위에 눌러앉아버렸다.



 갑자기 내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오랜만에 만난 다른 직원들과 즐겁게 얘기나눠도 되는 일이었는데 나는 그 10~20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회사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고 얘기를 나누는 것이 불편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사람들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질것 같았다


사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각종 핑계를 대며 참석하지 않을까도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러기에그럴듯한 핑계가 나에게는 없었고 그래도 나름 매달 월급을 받고 있는 인데 무조건 불참을 선언하는 것도 바람직한 행동은 아닌 것 같아 결국 잘 옮겨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겼다.



"진짜 월급의 노예네. 노예."


나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지 김대리도 오늘 아침부터 월급의 노예라는 격한 표현으로 참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나도 그런 그녀의 발언에 맞장구를 치며 까르르 웃었지만 결국 회사를 코앞에 놔두고 어쩔 수 없이 드는 불편한 마음에  아무도 없는 승강 장안에 앉아 혼자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그렇게 마음을 다스려가면서까지 어렵게 참석한 제안서 발표회는 생각보다 빨리 끝이 났다.


나는 끝이 났음을 알리는 차장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직원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는 재빨리 회사를 빠져나왔다.


아마도 그 모든 건 나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집에서 거리가 먼 본점까지 가야 되는 수고로움도 싫었겠지만 그보다는 승진에서 누락되어 의도치 않게 최고 선임이 되어버린 내 처지가 빤히 보일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던 게 더 컸을 것이다.


거기다 나보다 먼저 승진해버린 후배들을 마주치는 게 나도 그들도 편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더더욱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어쩜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일 수도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못난 사람인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회사에 상처를 받은 나는 한참 동안은 이런 상황들이 싫어 앞으로도 본점으로 향하는 지하철역 안 벤치를 서성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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