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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Jun 13. 2019

나쁜 선배인걸 인정해



좋은 선배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좋은 선배의 정의가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시절, 무작정 후배를 돕고 그들의 편에 서는 것이 멋진 선배, 좋은 선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나는 과연 좋은 선배라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부터 무조건 좋은 선배인 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동안 난 그리 좋은 선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누굴 심하게 괴롭히거나 내 일을 막무가내로 떠밀 만큼 나쁜 선배도 아니었다.


아마 후배의 입장에서 보면 뭐라 정의 내리기 애매한 그런 선배였을 것이다.


무작정 잘해주며 살갑게 구는 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험담을 할 만큼의 이야깃거리가 있는 선배도 아니다.


아마도 그냥 존재감이 없는..  거기다 없고 표정 쌀쌀맞아 보이는 선배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내가 갑자기 좋은 선배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은 건 최근 함께 일하게 된 후배 때문이었다.


몇 달 전부터 새로운 팀에서 호흡을 맞추게 된 후배는 나와 꽤 나이 차이가 나는 직원이었다.


당연히 신입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실수도 잦은 편이었고 무언가 정신이 없어 보이는 그의 자리는 늘 폭격을 맞은 것처럼 각종 서류들로 넘쳐날 때가 많았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나의 신입시절이 떠올라 안타깝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의 여유도 어쩜 상황이 허락해야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우리 팀은 다른 팀에 비하면 인원이 적은 편에 속다.

거기다 책임자급에 해당하는 직원들을 제외하면 실무자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이제 막 입사한 그와 이제 십 년 차가 된 노땅 대리, 나뿐이었다.



그와 이렇게 손발을 맞춰 즐겁게 일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각자가 맡은 본연의 업무들을 제외하고 팀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수적잡무들을 둘이서 나눠야 하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래도 업무처리에 익숙한 내가 그를 대신하여 처리하는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업무처리가 서툴고 느긋한 성격의 그를 기다릴 여유가 회사에는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그런 경우가 반복되다 보니 나의 마음속에 존재했던 나쁜 마음과 꼰대 기질이 조금씩 부글되기 시작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빈정이 상했다는 말이 맞을거다.


이렇게 대신 해주고 있음을 그가 안다면 커피 한잔이라도 사주는 센스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맙다라는 말한마디라도 해주길 기대했는데 그는 눈치없이 그저 하하하 웃기만 할뿐이었다.


그런데 더 결정적인 한방은 몇일전 다른팀과의  회식자리에서 터져나왔다.


식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전 부지런히 밑반찬을 나르고 마지막순간까지 회식비 결재를 챙기는 다른팀의 후배직원과는 달리 그저 묵묵히 앉아 구워진 고기를 열심히 집어 먹고있는 그를 본순간 괜시리 분통이 터져나왔다.


이번에도 그를 대신하여 법인카드를 챙겨 들고는 이번 회식비 결재를 어떻게 나눌것인지를 고민하는 나를 보며 지금 내가 이런걸 할 연차는 아닌것 같은데라는 꼰대같은 생각이 마음속을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나 요즘 매일 고민해. 내가 후배들한테 이 말까지  해야하는걸까 말아야 하는걸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으면 내가 진짜
 꼰대가 된 것 같다니까."



얼마전 본점에서 만난 동기도 요즘 후배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묘한 세대차이를 느낀다며 나의 고민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나도 분명 센스없고 눈치없던 신입시절이 있었을것이고 그저 그의 사회생활 스킬이 부족한거라고 좋은선배인척 쿨한선배인척 이해하며 지나갈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난 그정도까지 좋은선배가 될만한 그릇은 아닌가보다.


자꾸 그동안 무심하게 잊고만 있었던 나쁜 선배 노릇을 하고 싶어지는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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