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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Jul 24. 2019

그놈의 월급값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의 출근길이었다.


회사가 코앞에 있으니 주룩주룩 내리는 비 정도는 문제가 될 리 없었겠지만 아침 사무실 문을 열기 위해 일찍 나서는 발걸음에 왠지 모르는 짜증이 묻어났다.


나는 비오는날을 별로 좋아하지않는다


제대로 말리지 못한 머리, 출근 준비 도중 우유를 흘리며 징징대는 딸아이를 달래느라 화장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겨우 오픈 시간을 맞춰 사무실에 도착했다.


한 시간가량 일찍 도착하여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에서 대충 구색만 맞춘 화장을 끝낸 나는 어떻게든 짜증 나는 기분을 달래 보려 애쓰고 있었다.


이런 기분으로 업무를 시작한다면 오늘 마주하는 고객에게 분명 "왜렇게 불친절하세요?!"라는 얘길 들을게 분명했다.


그러나 쉽사리 살아나지 않는 기분에 몇 번이나 오늘 아이를 핑계로 반차를 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볼까 하는 마음속의 갈등이 사그라들 줄 몰랐다.





요즘만큼 월급값이라는 단어를 자주 생각하게 되는 시기는 없는 것 같다.


이름값, 얼굴값만큼이나 나에게는 익숙한 단어인 이 월급값은 월급을 받는 만큼 그 값어치를 해야 한다는 월급쟁이 부모님의 말씀 속에 늘 등장하는 단어였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배우고 자란 탓일까 회사에 입사해서 다니는 내내 나는 월급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월급값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회사 내에서의 나의 가치나 위치를 대신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왔었던 것 같다.


그러나 회사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는 요즘.

나는 그놈의 월급값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적립하기로 마음먹었다.

되돌려 생각해보면 월급값이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가끔 업무를 무리하게 해내면서도 잘하고 있다고 착각했고 업무의 스트레스를 주말 내내 끌어안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 했었다.


아마도 내가 생각했던 월급값에는 내가 매달 받는 월급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해주는 칭찬과 회사 내에서 나를  인정해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섞여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그 칭찬과 기대감을 내려놓으니 내가 진정으로 해야 하는 나의 월급값이 보이는 듯하다.

회사가 미워졌다고 맡은 일을 소홀히 하거나 책임을 다하지 않을 생각은 없다.

나는 여전히 회사가 정하는 인사정책에 따라 맡게 된 업무와 내 책임을 끝까지 해낼 것이다.


다만, 내 월급값을 초과하는 업무와 스트레스는 이제 좀 그만 넣어달라고 얘기하고 싶다.


"최대리 이번에 승진하려면 더 열심히 해야지."


"최대리 저번에는 안타까웠지만 이번에는 되지 않겠어?!"


승진을 미끼로 더는 나에게 그런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그저 나의 월급값을 위해 일할뿐.


다른 것을 위해 일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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