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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Oct 04. 2019

아이스크림이 맛있어서 그래


남편과 나는 부부싸움이라 할만한 사건이 거의 없는 편이다.


연애 때는 웬만하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하는 성격 때문에 그러했고 결혼을 한 후에는 이제 저 사람한테서 무엇을 건드리면 안 되는지에 대한 선을 깨달았기 때문었다.


그런 우리에게 잊지 못할 부부싸움의 기억이 하나 있었는데 오늘은 그것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때는 바야흐로 내가 육아휴직을 했던 시기였다.


육아가 곧 일상이고 일상이 곧 육아였던 그 시절

나는 몸과 마음이 이래저래 많이 지쳐있던 상황이었.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감기 기운 때문에 그랬었는지 하루 종일 칭얼대기 시작했다.


마침 남편은 회사 이전 때문에 주말출근을 한 상태였  지친 몸과 마음으로 이른 아침부터 애를 보는데 그날따라 아이는 순간도 나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쉴 새 없이 보채는 아이를 달래다 지친 나는 울컥 화가 나다가도 순간 덜컥 걱정러운 마음이 들었다.

결국 감기가 악화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일요일 오후, 나는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일요일에 문을 여는 병원이 큰 병원의 응급실 말고는 있을 리 만무했 주말에 문을 연다는 병원을 겨우 수소문한 끝에 무작정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채  발걸음을 돌렸다.


역시나 병원에는 미처 진료를 보지 못하는 환자들로 가득했고  대기시간은 한 시간이 넘었다.

나는 그 긴시간동안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야만 했다.


그렇게 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 아이의 유모차를  끌고 가는 데 가는 내내 하염없 눈물이 르기 시작했다.


일을 마치고 사람들과 술 한잔 하러 가는 중이라는 남편의 메시지에 화가 나서이기도 했겠지만 하루 종일 내 시간도 없이 아이와 씨름을 하고 있는 내가 서글프고 서러웠다.


오는 내내 펑펑 울고 돌아와 겨우 아이를 재우고는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서 훌쩍이는데 그때 지친 표정이 역력한 남편이 집으로 들어왔다.

살짝 취기가 오른 얼굴로 아이는 괜찮냐고 는 남편을 본 순간 너무 미운 마음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  남편 또한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말라며 날을 세운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는 오랜 시간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침묵시위라도 하듯 며칠간 남편에게 말을 지도 대답을 하지도 않았고 남편 또한 그런 나에게 화가 났는그만 입을 닫아버렸다.


그런 시간이  흘렀을까?


회사 소장님술 한잔을 하고 왔다는 어느 날 남편의 손에 31가지의 맛 판다는 브랜드의 아이스크림 봉투가 들려있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작은 밥상 위에 가져온 아이스크림 봉투를 올려 내 앞에 가져다 놓고는 얘기했다.


"내가 회사 때문에 와이프랑 싸웠다고 했더니 이거 먹고 빨리 화 풀어주라고 하시면서 사주시더라.
그러니까 이제 이거 먹고 그만 화 풀어라. 미안해.
엄마도 힘들었겠지만 나도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우리 이제 말 좀 하고 살자. 그동안 답답해서 너무 힘들었어."


남편의 한마디에 그동안 섭섭했던 나의 마음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나도 당신과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답답하고 두려웠었다는 속마음 대신 "아이스크림이 맛있어서 화 풀어주는 거야."라는 말로 화해를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 생각해보 참 별거 아닌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몸과 마음이 힘드니 작은 마음의 틈에도 괜스레 증이 스며들었고 서러움이 폭발했었다.


이제 결혼 5년 차.

시간이 흘러 서로에게 많이 익숙해졌음에도 우린 여전히 별거 아닌 일에 투닥거리고 별거 아닌 말에 서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린 믿고 있다.

이 위태로울 수 있는 결혼생활도 별거 아닌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한 방법으로 잘 넘기다 보면 더 좋은 인생의 추억들이 쌓일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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