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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Nov 16. 2019

후배가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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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연히 올해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후배가 사직서를 냈다는 얘길 같은 팀 차장님께 전해 들었다.


회사 후배지만 길거리에서 만난다면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만큼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소문으로 듣기에는 조용한 성격에 꽤 오랜 기간 우리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한 경험도 있는 친구라 나를 비롯한 회사 직원들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소식으로 느껴졌다.


분명 계약직으로 일하던 곳에 정규직 입사를 꿈꿨을 때에는 이 회사에 들어오고 싶다는 열의와 그 이유가 있었을 텐데 일 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그 마음이 모두 사그라져 버린 이유가 솔직히 참으로 궁금했다.


그래서 직접 물어볼 용기는 없으니 이런저런 주변 사람들의 소문들을 통해 무언가 회사에 대해 적응하기 힘든 점이 여럿 있었다는 얘기만을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용기가 너무나도 부러웠기에 그 소식에 더 귀가 솔깃했던 것 같다.


나는 십년이 걸려서야 겨우 퇴사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그 단어를 떠올린후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유로 또는 이런 시기에 나가는 것은 너무나도 억울하다는 핑계를  대어가며 제대로 용기도 내지 못했는데 그 후배는 선뜻 자신이 뜻하고자 했던 일을 실현했다는 것이 부럽고도 한편으로는 참으로 배가 아팠다.


어쩜 오늘 김대리에게 말했던처럼 회사에서 지내온 세월이 길수록 더 나갈 용기를 내지 못하는 관성의 법칙같은 것이 존재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회사는 정년퇴직을 제외하고는 중간에 퇴사를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문 곳이다.


회사가 설립된 초창기에야 회사가 자리를 잡는과정에서 생긴 이견등의 사유로 퇴사를 하신 경력직분들은 몇분되시는걸로 알고 있지만 회사에서 신입직원 채용을 시작한 이래로 퇴사를 한 신입직원은 그리 흔하지 않은 편이다.


좋은 방향으로 해석한다면 한번 입사하여 어느정도 적응이 되면 떠나기 힘들만큼의 안정적인 환경과 보수를 지급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할수도 있지만 나쁜 방향으로 해석한다면 고인물이 계속 고여있듯이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적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나 또한 이곳에 처음 입사했을무렵 나의 마지막 직장이 되겠다는 각오로 입사초기 겪었던 어려운 점들을 이를 악물고 참아냈었고 어쩜 이제는 어느정도의 안정적인 위치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올해 초 경험했던 승진인사의 비극을 겪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여기에 만족하며 우물안의 개구리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것인지 아님 나에게도 시대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것인지 최근에 입사한 신입직원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는것을 보며 회사의 다른 이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전문성을 찾기 힘든 업무, 기준을 찾기 힘든 모호한 인사제도,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로 변해가는 사람들등등..


처음에는 보지 않았던 회사의 이면들이 보이면서 자꾸 내 마음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어쩜 이런 나의 얘기들이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안정적인 직장덕분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미래도 꿈꿀수있게 되었으면서 너무 이기적인거 아니냐고 누군가는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배부른 소리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이상하게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픈건 왜일까?


더 많은 연봉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던가 동기나 후배들보다 승진이 뒤쳐져서 배가 고픈게 아닌데..


비록 살갑게 밥한번 사주지 못했던 후배였지만 퇴사라는 힘든 결정을 용기있게 한 그녀에게 참을성이 없다는 직원들의 뒷담화 속 비난의 말대신 응원의 말을 해주고 싶다.


"너의 선택을 지지하며 앞날을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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