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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Nov 30. 2019

싸가지 없는 후배가 되기로 했다

 회사 전화기의 벨이 울리고 내가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김 과장인데요.."


처음에는 수화기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다시 한번 누구시냐고 되묻고 나니 좀 더 또렷해진 목소리로 그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분이었다.


올해 초까지 같은 팀에서 함께 근무를 했던 그 과장님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그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 까놓고 말하면 나 또한 그분에게 싸가지 없는 후배였을 것이다.


내가 그분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그 이유들 중 하나는 나를 비롯한 여자 직원들을 부를 때면 이렇게 불렀기 때문이었다.


"@@씨."


어엿하게 직함이 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직함을 다 떼고 누구 앞에서나 이름을 붙여 누구누구 씨라고만 불렀다.

반면 남직원한테는 연차가 높든 낮든 직급의 높든 낮든 "@대리,@주임.."이라고 직함과 존칭을 넣어 불렀다.


처음에는 그 차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함께 일하던 선배와 함께 그분의 그런 말버릇이 점점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분들 중에도 나를 @@씨라고 부르는 분들은 많다.

그렇지만 그분들은 남직원이든 여직원이든 상관없이 다 그렇게 부르시거나 아님 자신의 친분에 따라 차이를 두었다.


그런데 그분은 대부분의 여직원이 그런 차이를 거슬려할 만큼 오로지 여자냐 남자냐에 따라 호칭의 차이를 두었다.


결국 나는 참다못해 그분께 여쭤봤다.


"과장님 저희보다 연차도 낮은 @대리는 꼬박꼬박 @대리라고 부르시면서 왜 저랑 @@씨는 직함 없이 @@씨라고 부르세요?"


내가 그에게 그렇게 대놓고 묻자 그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아마 나처럼 대놓고 묻는 되바라진 후배는 없었나 보다.


그는 한참 동안 대답을 찾지 못해 더듬더듬 거리다가 @대리보다 우리가 더 친근해서 그렇다는 어이없는 대답을 내놓았고 그런 그의 대답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선 배도 남자후배도 단번에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나는 결국 더 되바라지게 얘기하는 길을 택했다.


"그냥 저랑 @대리도 다 직함으로 통일해서 불러주세요.
그게 저희한테도 더 편해요."


내가 단호하게 얘기하자 그가 알겠다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씨나 @@대리나 호칭이 뭐가 중요하겠나.


다만 내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은 그분이 그렇게 나눠서 부르는 데에는 여직원을 자신보다 아래로 보는 사고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따지고 들었던 것뿐이었다.


본인은 늘 내부 직원에게든 아님 외부기관에게든 이름보다는 김 과장인데요 라는 말로 자신을 높여 얘기하면서 왜 여직원들에게는 직함을 담은 호칭으로 불러주지 않는 건지..


그 사건 이후로 다행히 그분은 나와 선배를 부를 때면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경계의 눈빛을 보다.







사람이 참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무언가가 싫으면 그 사람이  하는 행동들이 다 싫거나 다시 곱씹어질 때가 있다.


이상하게 그분이 나에게는 그랬다.


이전까지는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분이었다.

그분 또한 나를 그냥 그런 일개 여직원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팀에서 일을 하게 되고 같이 점심까지 먹 일이 잦아지면 그분의 행동들하나둘씩 다시 곱씹어지기 시작했다.


호로록 쩝쩝 소리를 내며 먹는 식사 스타일도 참을 수 없을 만큼 매너 없게 느껴졌고 잠깐잠깐 쉴 때마다 유머 게시판을 보며 낄낄거리는 모습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분의 모습이 어느 날 갑자기 변한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 그분과 처음 일했을 때도 그분은 여전히 나를 @@씨라고 불렀고 식사시간에 쩝쩝 호로록 소리를 내는 습관 때문에 팀장님께 농담 섞인 핀잔소리를 듣기도 했었다.


그리고 내가 그분에 대해 잘은 알지 못했 그분은 그때도 자기 계발 대신 유머 게시판이나 게임을 하며 낄낄 대고 계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던 모습들이었다.

눈길이 더 가거나 기분이 더 상하거나 그렇다고 나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행동 분아니었다.


단지 그분에 대한 내 마음이 바뀌었을 뿐이었

단지 회사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걸 누구한테 얘기해야 할까요?"


그분의 목소리를 전화상으로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사무실에 근무하는 그분이 별안간 우리 사무실에 등장했다.


무언가 부탁을 하러 온 듯 한참을 망설이던 그분은 나의 눈치를 흘끗거리다가 이내 내 옆에 앉은 과장님이 그나마 부탁하기에 용이했는지 그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십 분도 되지 않아 본인의 볼일을 다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는 그분의 뒷모습을 향해 예의상 인사를 건네긴 했지만 분명 무언가 예전보다는 서로가 냉랭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날의 나의 행동이 표현방식이 싸가지가 없었을지언정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거나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나는 그분에게 싸가지없는 후배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게 옳든 옳지 않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싸가지가 없는 것이 맞는 상황에서는 그냥 싸가지가 없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어쩜 험난한 직장생활에서 그나마 나를 지키는 방법이 될지도 모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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