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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Feb 13. 2020

속이 더부룩한데 이상하게 허전해


얼마 전 브런치에서 썼던 글처럼 느닷없이 반차를 낸 그날,

그날의 마지막을 난 남편과 둘이서 저녁을 먹는 걸로 했다.


늘 딸아이와 함께이거나 아님 친정식구들같이 다른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날만큼은 다른 사람들 없이 단란하게 둘이서만 밥을 먹고 싶었다.


"우리 둘이서 저녁 먹고 들어가자."


"영원이는 어쩌고?"


남편은 역시 둘이서 편히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 대신 우릴 기다릴 딸아이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지 내심 집에 가길 바라는 말투로 대답했다.


"너무 늦게 가는 것도 아닌데 뭐..

엄마 한테 내가 얘기할게."


남편과 둘이 밥을 먹은 것이 언제였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다 못해도 서너 달 이상은 되었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자 나는 결국 내 계획을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작년 가을쯤 함께 은행일을 보러 갈 요량으로 함께 먹었던 즉석떡볶이를 마지막으로 둘이 마주 앉아 오붓하게 식사를 하는 것이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평소 아이와는 함께 먹기 힘든 매운 물갈비를 저녁 메뉴로 선택한 우리는 집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간단히 소맥 한잔을 마셨다.

요즘 회사 얘기 딸아이 얘기 기타 등등의 주변 얘기들을 나누며 서로 냄비 안에 지글지글 끓고 있는 음식을 나눠먹었다.


비록 마음속에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딸아이와 그런 딸아이를 보시느라 고생하고 계시는 엄마가 남아 편치 않았지만 그래도 언제 이런 걸 편안히 먹어보냐 싶은 마음에 양껏 매운 물갈비를 흡입했다.


"솔직히 요즘 셋이서 외식할 때마다 속이 더부룩하면서도 허할 때가 많았다."


식사를 마치고 오는 길 느닷없는 나의 심경고백에 남편이 무슨 얘기냐는듯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외식할 때마다 영원이가 잘 먹을 때도 있고 잘 안 먹을 때도 있잖아.
 영원이가 잘 먹을 때는 보통 내가 주문한 걸 나눠주니까 내가 먹을 양이 부족해서 배가 고프고..
그렇다고 세 개를 시키기에는 양이 너무 많은 것 같고..

또 반대로 잘 안 먹을 때는 혹시 우리가 밥 먹을 때 괜히 찡찡거려서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가 갈까봐 급하게 먹고 나오다 보니 먹고 나면 속이 안 좋고.."


나의 심경고백에 남편이 단호한 말투로 아이 때문에 나를 너무 희생하지 말라며 언제나 내가 최우선이라고 대답했다.


"흥.. 늘 자기 꺼 먹느라 정신없이 면서.."


남편의 대답에 나는 눈을 흘기며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어느새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서서히 우리는 부모가 되고 있었다.



P.S) 집으로 돌아오는 길, 더 이상 손을 잡고 걷지 않는 우리를  발견했다.

그것 또한  우리가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은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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