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대리 Mar 24. 2020

그 친구의 직업정신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잘 가지도 않는 동네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특별한 날이거나 아님 친구들과 조금씩 돈을 모아 즐겨갔던 곳이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니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주 갈만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


특히 요즘같은 시기에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조심스러운 탓에 약속을 정한 친구도 만날 장소를 꽤나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우리에게 중간 지점이며 비교적 칸막이로 나눠져 있어 덜 북적거리는 그곳을 약속 장소로 선택했다.


그날 저녁 회사에서 급히 퇴근을 하고 나온 나와는 달리 집에서 나온 친구는 비교적 편한 옷차림에 마스크를 쓴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비교적 한산한 쪽으로 자리를 옮기자친구의 제안과 함께 친구는 익숙하다는 듯 잠깐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고 후 한참 동안  손 소독제를 묻혀 손 문질렀다.


"내가 너무 유난스러운가?"


그런 친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가 의식이 되었는지 친구 씨 웃으며 물었다.


"아니야 요즘 같은 시기에는 좀 유난스러운 게 낫지."


친구의 손소독제를 빌려 함께 손을 문지르던 나는 괜찮다며 미소지었다.




친구 꽤나 오랜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일을 해왔다.


주로 아이들이 많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방문하여 음악수업을 진행하거나 아이들의 집을 방문하여 피아노 레슨을 주로 해왔는데 요즘 코로나로 인해 급격히 바빠진 나와는 반대로 그 친구는 코로나로 인해 모든 수업이 다 취소되어 반백수나 다름없다고 했다.


"쉬는 건 어때? 좋아?"


"첨엔 좀 지루했는데 이제는 좋아.

생각해보니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십 년이 넘도록 이렇게 오래 휴가를 즐긴 적이 없더라고..

잠도 충분히 자고 음악도 충분히 듣고 다 너무 좋아."


요 몇 주 사람들에게 시달려 한층 푸석해져 버린 나와는 달리 친구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그리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평소와는 달리 친구는 음식을 나와 본인의 접시에 나누어 기 시작했다.


"요즘 거의 집에서 안 나와.

사람들 모이는데도 되도록 잘 안 가려고 하고..

혹시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서 다른 사람들한테 옮길까 봐.."


친구는 접시에 음식을 덜면서 자기가 유난을 떤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내가 애들을 주로 가르치잖아.

혹시 만에 하나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아이들한테까지 다 옮기게 될까 봐.

요즘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안 가지만 레슨은 간혹 하니까.."


친구는 혹시라도 자신이 슈퍼 전파자가 되어 가르치는 어린아이들한테까지 피해가 갈까 봐 더 유난스럽게 행동한다고 얘기했다.






그런 친구의 얘길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 스쳐가는 한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불과 친구를 만나기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처리해야 하는 서류들과 함께 밀려드는 전화들로 몇 주간 신경이 곤두 설대로 곤두서 있었다.


특히나 금요일인 그날은 일주일간의 피로감과 함께 뉴스를 통해 흘러나온 여러 자금지원 관련 뉴스들로 인해 사무실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려 들었다.


똑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기계적으로 수십 번쯤 반복했을 즈음 또 한통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질문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끊어버린 채 속사포처럼 그에 대한 대답을 쏟아냈다.


"저기, 잠깐만요.

귀찮다는 듯이 말씀하지 마시고 찬찬히 다시 한번 말씀해주세요."


지친 목소리로 아무 감정 없이 읊어대는 내 대답을 말없이 듣고 있던 상대방이 잠시 내 얘기를 끊으며 얘기했다.


그제야 나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찬찬히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고 그분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친구의 직업정신과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요즘 내 모습에 친구의 얘기를 듣는 내내  괜스레 마음속이 뜨끔해졌다.



이제와 되짚어 생각해보니 친구는 자신의 일에 대한 불평불만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가끔 다른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들을 상대하면서 속상한 일들 간긴 했었지만 아이들참 예쁘고 가르치는 일 자체가 정말 즐겁다고 했다.


십 년이 넘게 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일을 즐길 수 있는 친구가 그 순간 너무나도 부러워졌다.




과연 나는 내 일을 즐기고 있는가?


회사에 대한 나의 감정을 우선 배제하고 생각해봐도

나는 내 일 자체를 좋아하거나 즐기고 있지 못하는 게 사실이었다.


그저 시간이 흘러 일이 익숙해지고 요령만이 늘어갔을 뿐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성취감도 즐거움도 결국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요즘 같은 시기에 커다란 매너리즘과 함께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친구의 철저한 직업정신이 요즘의 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연.. 나는 퇴사 후 전 직장을 들락날락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