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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걷는길 (4) 수비리에서 사발디카까지

목표치만큼 못 걸어도 괜찮아

by 신아영


수비리 zubiri - 사발디카 zabaldika 18km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감기기운은 아직 사라지지 않아 목이 칼칼한데다 다리는 나의 것이 아닌마냥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띵띵 부어있었다. 한마디로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숙소의 사람들이 모두 쩔뚝거리면서 걷는 나를보며 걱정해주었으니 온 천하에 내가 약골임을 광고하고 다닌 셈이다.

아침을 먹는데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대로 걷다간 스페인 어느 시골길에서 비명횡사할게 뻔했다. 다음 도시까지는 버스를 타고가야지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숙소를 나서자 어제 내가 쉬느라 구경하지못한 마을 축제의 잔해들을 볼 수 있었다. 잘논다 스페인사람들

그러나 알베르게에서 나온 순간 나도모르게 까미노 조개껍데기 안내판쪽으로 향해지더라. 왜 그랬을까? 꼭 이길을 다 걸어야겠다는 마음도 없었거늘.

오늘은 그 어떤날보다도 천천히 걷겠노라고 다짐했다. 어제의 패인은 내 스피드를 찾지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무의식중에 경쟁했기 때문이었다. 어제의 반 속도로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한시간 걷고 무조건 오분씩 쉬기로 했다.

수비리에서 팜플로냐까진 22.8km


오늘 길에서 처음으로 나랑 비슷한 페이스로 걷는 사람을 만났다. 보통 나를 쌩쌩 지나가는데 이 분은 나와 비슷하다, 오히려 내가 좀 더 빠른 수준? 힘내라는 말 백번 듣는것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 힘이난다. 스페인 사람이었는데 영어를 하지 못한다고 했음에도 손짓 발짓, 짧은 영어로 서로의 마음이 통했다. 진정한 나의 동료여.

걷다가 당이 떨어져서 아침에 챙겨나온 네스퀵 한봉지 귀퉁이를 뜯어 가루를 맛보는데 천국이었다. 그 맛을 잊지못해.
여전히 내겐 버거운 내리막길. 발목에 꽤 많이 무리가 간다.



현재시각 12:31분. 걷기시작한지 5시간 경과.

딱 절반만큼 왔다. 아무래도 오늘 팜플로냐에 가는건 무리일듯 싶다. 정말 너무 힘들어서 택시나 버스라도 타고싶은데 도통 보이지도 않는다. 하는수없이 계속 걷는중.


이쯤 걸으니 지금 내가 걷고있는지도 인식이 되지 않은 상태로 발만 움직이는 영혼초탈적인 상황이 된다. 내가 이렇게까지 못걷는 사람이었나.

사진마저 지쳐보이는 고생중인 나의 발 님.




현재시각 14:00분. 걷기 시작한지 6시간 30분 경과.

팜플로냐를 약 6km가량 남겨두고 어느 성당의 알베르게가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찾아보니 이동네 이름은 사발디카 라는 곳이었다. 오늘 여기서 묵지 않으면 남은 여정동안 산티아고까지 절대 못 걸어갈 것이다.

두시 반 알베르게가 문을 열었다. 마을 작은 성당에서 하는 알베르게였다. 죽어가던 나를 구원한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달까. 심지어 기부제로 운영하는 곳이라 저녁, 다음날 아침까지 주는데도 비용을 받지 않았다.

나의 구원자 나의 알베르게.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여기서 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몰려왔다. 오늘 무리해서 팜플로냐까지 갔다면 다른 사람들과 일정은 맞았을지 몰라도 몸과 마음이 축났을게 뻔하다. 그러려고 온 산티아고가 아니니까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다 걷지 못해도 괜찮다, 이 생각을 하기까지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 이 길은 또다른 나의 성취욕을 만들어냈고, 나는 걸으면서 이를 덜어내고 또 덜어내고 있다.

잠시 쉬다가 미사가 열린다길래 성당으로 갔다. 스페인어로 드리는 미사라 무슨말인지 하나도 몰랐지만 경건해지는 마음에 왠지 눈물마저 날뻔했다. 내 죄를 사하여주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성당 내부. 바라보고 있으니 경건해지는 마음이었다


잠시 쉬고있으니 길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가 오늘 일정을 마치고 이곳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서로 눈을 마주치지마자 빵 터져버렸다. 길에서는 이름도, 출신도 웬만하면 물어보지 않는데도 이 '친구'는 왠지모르게 정이갔다. 영어를 좀만 더 잘했으면 좋았을 것을.

스페인 저녁은 무조건 빵과 스프, 메인요리, 디저트 순으로 나온다. 이곳에서는 닭을 요리해서 주셨고 맛있게 먹은 후 감기약 한 알을 먹고 휴족시간을 종아리, 발에 붙인 후 잠을 청했다. 인생의 최고 꿀잠을 이곳에서 경험한다. 이렇게 최고로 잘 잤던적이 있던가. 내일은 또 누군가의 코고는 소리를 알람삼아 일어나겠지.


몸과 마음을 축내지말고 나의 페이스를 찾기위해 내일은 오늘 못걸은 팜플로냐까지만 걸어가 쉬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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