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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걷는길 (5) 사발디카에서 팜플로냐까지

만날 인연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있다

by 신아영

사발디카 zabaldika - 팜플로냐 pamplona 8km

은혜넘치는 알베르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은 팜플로냐 까지만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고, 관광도 하면서 쉴 예정이다. 어젠 3km 남은줄 알았는데 다시 살펴보니 8km 남았다. 하하. 이 동네 이정표는 제각각 남은거리 표시하는게 달라서 종잡을수가 없다.

다행히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다리가 어제보다 훨씬 괜찮았다. 아무래도 휴족시간을 종아리에 붙이고 잔게 효과가 있었나보다. 휴족시간 강추 최고의 발명품!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걸음을 뗐다.

애초에 내가 여기에 온건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증서를 받기 위함이 아니기에 매일 25km씩 강행군을 지속할 이유가 없어졌다. 내 템포에 맞게 걸으면서 주변의 경치들도 구경하고 쉬엄쉬엄 가려고 마음 먹으니 한결 부담이 덜하다. 수비리에 도착했을 때 어지러움을 느꼈던것도 오늘 꼭 수비리까지 가야한다는 긴장감이 도착하자마자 탁 풀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왕 온거'라는 마음을 계속 비워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쉬엄쉬엄 걷다보니 두시간반 정도 걸려 팜플로냐에 도착했다. 도심으로 들어가기 전 공원에 자리를 잡고 여유를 만끽했다. 스페인의 햇살은 뜨거우면서 끈적거리지 않아 기분이 좋다. 잠시만 방심해도 금방 얼굴을 태워버리는게 함정이지만.

팜플로냐 진입 전 만난 공원.

곧이어 진입한 팜플로냐의 도심은 과연 말 그대로 대도시였다. 얼마만에 보는 대도시인지. 계속 산 속에서 지내다가 zara같은 매장도 보이고 약국도 보이고 그러는데 문명의 이기들이 그새 낯설면서도 또 반가웠다. 오늘은 내게 휴식을 주고 싶었기에 적당한 가격의 호텔을 찾아 몸을 뉘였다.

도심 곳곳의 건물들은 보란듯이 아름답다

스페인 사람들은 느긋하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뭐랄까, 악착같이 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없어 보인다. 점심을 먹고 필요한 것들을 사러 약국에 갔더니 한시반부터 무려 다섯시반까지 쉬는거다. 시에스타를 이렇게 철저히 지키다니. 물론 게중엔 십분의 일 정도로 시에스타 시간에도 문을 여는 상점들이 있지만 그들도 소위 말하는 '돈독'이 오른 느낌은 아니다. 이렇게 살 수 있는 여유가 정말이지 부러웠다.

자리잡은 호텔 옆의 bar가 마침 트립어드바이저 2위에 빛나는 맛집이길래 타파스 몇개와 맥주를 시켜먹고는 슈퍼에 들러 내일 아침 간단히 먹을 것들을 사왔다. 그리고는 다시 팜플로냐 광장에 나가 사람들을 구경했다.

거리의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담소를 나눈다.

이건 비아리츠에서도 느꼈던 감정인데 도시의 낯선 사람들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굉장히 많이 쓸쓸해진다. 순례길 위의 사람들은 계속 나를 스쳐지나가고, 도심의 사람들은 알수없는 언어로 그들만의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고, 나는 덩그라니 혼자 남아있다.

군중속의 고독이 이런 느낌이구나. 인생사 통틀어 이토록 외로웠던 시절이 있었을까. 나는 무얼 얻고자 이 길 위에 서있나. 답도없는 질문들이 스물스물 터져나온다.

그러던 중 정말 반가운 얼굴을 마주했다. 예전에 길에서 나와 속도가 비슷해 반가웠다던 그, 스페인 친구 말이다. 뜬금없이 팜플로냐의 어느 약국 앞에서 마주친 것이 아닌가. 우리는 너무 반가워 소리질렀다. 만나게될 사람들은 어떻게든 만난다더니. 그녀를 기억하려고 이름을 묻고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녀의 이름은 멜리사였다.

안녕 내친구 멜리사!

뜻밖의 만남이 가져다준 기쁨이야말로 순례길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내일은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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