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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길 (5) 나헤라에서 부르고스까지

88km 버스를 타고 이동해 부르고스에 도착하다

by 신아영

나헤라 Najera - 부르고스 Brugos 88km



오늘은 산티아고 걷는길이 아니라 가는 길이다. 순례길 시작 후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걸으려고 온 곳에서 버스를 타기로 결정하기까진 꽤 많은 고민이 있었다. 마치 문제를 다 풀지않고 시험지를 제출하는 찝찝함과 비슷하달까. 그러나 몸 상태가 약을 먹어도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고, 속옷을 비롯해 사야할 생필품들을 조달해야 했다. 무리해서 걷기보다 더 나은 까미노를 지속하기 위해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나처럼 때로는 이렇게 교통수단을 이용해 구간구간을 점프하는 순례자들도 많다.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가볼까

버스를 타고 어디로 이동할까. 나헤라 다음 큰 도시들은 산토 도밍고, 벨로라도, 그리고 좀 더 가면 부르고스 등이 있었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걷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버스 시간표에 내 목적지의 운명을 맡겨보기로 했다. 운명은 나를 어느 도시로 이끌까?

나헤라 버스 정류장에는 많은 버스가 정차했다. 정류장에 붙은 시간표를 보니 산토 도밍고까지 가는 버스가 제일 먼저오겠다 싶어 이를 기다리는데 이보다 더 먼저 내 앞에 나타난 부르고스 행 버스. 운명이다 싶어 버스를 잡아 탔다. 뭐 이런것도 나름 소소하게 재미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나헤라에서 부르고스까지는 약 88km 떨어져 있었다. 버스비는 6.20유로. 내가 4-5일에 걸쳐 걸었어야 하는 거리를 이 버스는 한시간 반만에 나를 데려다 준다.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다 금세 잠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유럽을 여행할 때 가장 꿀잠을 자는 장소 중 하나는 버스다. 왜 이렇게 버스만 타면 그렇게 잠이 달수가 없는지.

웰컴 투 부르고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니 어느덧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졸린눈을 비비고 버스터미널을 벗어나는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부르고스 대성당의 위엄. 잠시 넋을 잃고 있다 무니시팔 알베르게를 찾아 짐을 풀었다.

이 곳 부르고스 알베르게는 대도시답게 내가 여지껏 묵었던 숙소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내가 배정받은 침대가 무려 건물 6층에 위치해 있었으니 종잡아 200-300명까지도 거뜬히 수용 가능해보였다. 시설도 낄끔하고 침대도 오랜만에 일층을 배정받아 기분이 좋았다.

짐을 풀고나선 아까 못다한 부르고스 대성당 구경하러 나섰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스페인 3대성당 중 하나로 꼽히는 웅장함을 자랑하는데 처음으로 내부를 구경하는데 비용을 지불한 성당이다. 운 좋게도 순례자들에겐 금액을 반으로 할인해주어 3.5유로를 내고 내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성당 내부는 창문 하나, 벽돌 하나까지 전부 예술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였다. 예술혼이 담긴 대성전에서 경건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웅장한 부르고스 대성당

이어 부르고스 대성당 앞 광장의 한 Bar에 자리잡고 맥주 한 잔을 시킨 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렇게 큰 도시에 오면 자연스레 나는 관찰자가 된다.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천진 난만한 아이들, 그 속에서 또 눈에 띄는 관광객, 그리고 순례자들까지. 광장은 도시의 얼굴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좋은 장소다.

이 곳 순례길에서는 종종 나도 관찰의 대상이 되곤 한다. 키 작은 동양 여자가 버거워보이는 배낭을 메고 혼자 걷는 모습이 신기한지 많은 사람들이 말을 건다. 여기서 나는 과묵한 편인데 유난히 말이 잘 통하는 연령층이 바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라했던 덴마크 할머니를 이 곳 부르고스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났다.

마리아 라는 할머니는 덴마크에서 왔는데 나와는 첫 날 오리손 산장에서 만났던 인연이다. 종종 길 위에서 나를 볼때마다 괜찮냐며 진심어린 걱정을 해주셔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는데 정말 우연치않게 어느 길 위에서 마주친것이다. 만날 인연은 어떻게든 만난다는데, 좋아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을 땐 기쁨이 더욱 배가되는 것 같다.

덴마크 할머니 마리아 덕분에 각국의 사람들과 수다떨 기회가 생겼다.

잠시 Bar에 자리해 덴마크 할머니의 친구들과 맥주 한잔했다. 한 분은 프랑스에서, 또 한 분은 아일랜드에서 왔다는데 짧은 영어로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을 했다. 북한 문제부터 프랑스 니스 테러까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대부분 North korea? South Korea? 를 물어보는데 우리 생각보다 분단국가라는 사실 자체에 관심갖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알고보니 덴마크 할머니 마리아는 우리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이 길 위의 스타였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녀를 슈퍼스타로 부르기로 했다.

즐겁게 수다를 떨다 알베르게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프랑스 여인과는 처음으로 볼 키스 인사를 나누었다. 내 생에 첫 볼 키스 인사! 부르고스의 밤은 이렇게 깊어간다.



숙소 들어가기 전 아쉬워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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